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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갱신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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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은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전환점으로서, 세계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5백년이 다가오는 이 시점에서 과연 종교개혁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종교개혁의 결과는 성공적인지를 진지하고 겸허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신교회는 수많은 분파로 분리되어 천차만별로 대립됨으로서, 과연 로마교회나 동방교회와 구별하며 개신교회 전체가 공유하는 개신교회의 독특한 본질과 정체성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초래하였다. 과연 개신교의 정체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개신교의 정체성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항의 로마교회 비판문을 게시함으로서 시작된 종교개혁의 중심적 주장은 무엇이었는가? 루터의 경우, 그것은 칭의 교리였다. 그러나, 1999년 마르틴 루터의 후예인 루터교회와 로마 교회가 칭의의 본질에 대해 의견을 일치하고 ‘칭의교리에 대한 공동 선언문’을 발표함으로서 그것이 상당한 오해에 근거하였음을 자인하였다. 물론 칭의교리의 모든 요소에 완전히 일치한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결론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칼빈의 예정론이 개신교의 공통적 본질인가? 그것은 예정론을 반대하는 웨슬리파의 탄생과 발전으로 거부되었다. 오순절운동과 영성운동도 신구교에 공통적으로 발생하였다. 기독교의 중심교리인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물론, 흔히 제기되는 로마교회의 차이로 마리아 무죄설, 연옥설, 교황무오설, 성례론 등이 있는데, 그 본질적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경적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혁자들은 성경과 전통의 이중 권위를 따르는 로마교회에 대항하여 성경의 유일권위, 즉 ‘솔라 스크립튜라(sola Scriptura)’를 외치면서 교회의 정화를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로마교회는 성경 외에 자기 교회회의들의 결정사항이나 교황의 교칙서들에도 결정적 권위를 부여하지만, 성경이 중심적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신구교가 둘 다 성경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규범적 권위를 부여하지만, 그 구성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신약 27권에서는 동일하지만, 구약에 있어서 로마교회는 46권을 인정하는 반면, 개신교회는 외경 7권을 제외한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한다.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소집된 트렌트회의에서는 외경 7권을 포함한 73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만일 누구든지 그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읽어왔고 역사적인 라틴 벌게잇 역본에 포함된 여기 열거한 책들 전체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앞에 말한 전통을 업신여기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외경을 부정하는 개신교도를 향한 저주였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혁자들이 외경을 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외경을 거부한 이유

 

실로 외경은 긴 전통이었다. 주전 2세기경에 헬라어로 번역된 70인경에 외경이 들어있었으며, 이 성경이 그리스도의 활동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라파’, 즉 성경이라고 부르고 인용한 책도 바로 이 70인역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초대교회에서는 외경들이 자연스럽게 읽혀졌다. 신약성경을 포함하여 성경 전체가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잇 성경에도 외경이 들어있었다.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확정한 히포와 제3차 칼타고회의에서도 성경 목록에 외경을 포함시켰다. 비록 초대교회에서 외경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외경을 완전히 제외한 교회의 결정이나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종교개혁시까지 교회는 자연스럽게 외경을 읽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개혁자들이 외경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인가? 루터교회와 영국교회는 외경을 경건서적으로 읽도록 허용하였으나 진리의 기준이나 교리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한편, 칼빈파는 외경을 철저히 거부하였다. 그런데, 루터의 95조항에 외경에 대한 언급이 없고 칼빈도 기독교강요에서 외경문제를 집중적으로 논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이 일차적인 관심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은 오히려 극도로 오염된 교황권과 로마교회의 미신적 의식주의를 보면서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를 절감하였고, 그것을 위해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교회의 모든 전통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기를 원하였다. 전통은 축적되는 것으로서 일부만 제거하면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오염이 축적된 천오백년의 교회전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사도들의 증거 위에 다시 교회를 재건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선한 전통도 모두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모두 사도적 기반에서 검증하여 진위를 판단할 필요가 있었다.

 

전통과 성경

 

개혁자들이 전통을 성경과 상반된 것으로 간주하여 거부하였는데, 여기서 전통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인간의 지혜와 철학, 그리고 제도와 의식 등을 의미한다. 로마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절대화하여 신격화함으로서 성경적 기반 없이도 영속화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신적 권위를 교황과 교회회의를 통해 부여하였다. 복음서(마 15, 막 7)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적 전통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유대교회의 결례 전통을 위배했다고 도전하였을 때, 예수님은 고르반의 전통을 예로 들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된다고 지적하였다.

 

‘파라도시스’, 즉 전통이란 특정 신앙공동체 안에서 단순히 과거로부터 전수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유전(遺傳)’이라고 번역하였다. 예수님이 ‘장로들의 유전’, ‘너희 유전’, 혹은 ‘사람의 유전’이라고 규정한 유대교의 전통은 비록 신앙적 동기에서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여 성경과 동격화 혹은 심지어 상위화함으로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게 만들고, 나아가 말씀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불순종하도록 만들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인간의 집단적 전통을 세상의 초등학문과 동치시키고, 그것을 따르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는 반정립성(antithesis)을 강조하였다.

 

물론, 모든 전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떤 신앙공동체이든 역사가 누적되면 전통도 누적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잘못된 전통도 있고 아름다운 전통도 있다. 문제는 전통을 절대화하고 성경적 검증을 거부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긍정적 의미의 ‘파라도시스’를 가르친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전 11:2), 또는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 3:6)는 언급은 사도의 전통을 절대적 권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도의 전통은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살후 2:15)으로서, 초대교회의 유일한 규범이었다. 그것은 결코 사도들을 인간적으로 절대화하는 전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받은 전통을 의미한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라고 그리스도의 전수자와 증인으로서의 사도와 인간으로서의 사도 자신을 철저히 구별하였다.

 

개혁자들은 바로 이 사도의 전통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교회가 천오백년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비사도적 전통이 교회로 들어와 누적됨으로서 교회를 심각하게 오염시켰으므로 이를 추방하고 교회를 정화하려고 하였다. 외경의 도입은 비사도적 전통의 대표적 산물이었다. 신약은 사도적 전통 자체이며, 구약 39권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인정하는 구약시대 신앙공동체의 경전이다. 그러나, 유대교가 인정하지 않는 외경이 슬며시 기독교 경전에 들어온 것은 유대교의 한 분파이며 70인경을 편집 번역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헬라파 유대교의 작업에 휘말린 결과이며, 그 후 로마의 팔레스틴 정복과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외경을 방관하다 결국 전통주의적 사고에 빠져 천오백년을 수용해온 로마교회의 잘못이었다. 개혁자들은 비록 늦었지만 이것을 바로잡고 오로지 사도의 전통만을 순수하게 회복하려고 하였다.

사도의 전통

 

왜 사도의 전통이 그토록 중요하였는가? 그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며 기반이기 때문이다. 정경의 범위를 결정할 권리가 교회에 있다는 로마교회의 주장에 대하여, 칼빈은 그것이 전후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반박하였다. 엡 2장 20절에 의하면,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건설되었다. 따라서, “만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이 교회의 기초라면, 바로 이것이 교회가 존재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후에 생긴 교회가 그 기초를 결정하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것은 마치 자식이 부모를 결정하겠다는 망상과 같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를 결정하였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에 순종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마음대로 운영하고 신앙의 내용과 예배 의식과 신자들의 생활을 마음대로 규정하였던 로마교회는 성경의 해석권을 빙자하였다. 그들은 교황과 감독들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으며, 평신도들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고, 그것은 전문적이기 때문에 소수의 교권자들과 신학자들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들의 판단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인지 말할 수 없다고 개탄한다. 더욱이, 소위 ‘해석’의 이름으로 성경에 한 자도 없는 연옥이나 성자의 중보, 또는 고해성사는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성경이 명시하는 성찬의 필수적인 두 요소 대신 평신도에게는 잔을 주지 않고 사제들만 마신다든가, 또는 결혼 금지를 규정할 수 없다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성직자들의 결혼을 금지시키는 것도 성경적이라고 하는 비합리성을 한탄한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성경에 있어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을 철폐하고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모두 함께 읽고 함께 이해하고 함께 순종하도록 하였다. 성경은 어려운 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된 책이라는 성경의 평이성(perspicuitas)과 성령의 보편적 조명(illuminatio)을 주장하여 사실상 교회의 해석권을 일반화하였다. 나는 한국의 한 유명한 성경신학자가 일평생 고전 15장을 연구했어도 거기서 육체적 부활을 가르치는 것을 한 자도 보지 못했다는 말을 직접 듣고 개탄한 적이 있다. 신학적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정당화에 눈이 가려 평신도가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신학자나 교권가들의 맹안을 지금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정당화는 성경을 왜곡하는 결정적 동기가 된다. 로마교회가 수많은 제도와 의식을 마음대로 도입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해석과 신학을 이용하였으며, 개혁자들이 외경을 거부한 것도 이러한 로마교회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특히, 로마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배와 성례가 사도적 전통을 너무 멀리 이탈하였다는 것이었다.

 

예배의 정화

 

교회역사상 가장 큰 예배의 위기는 중세에 발생하였으며, 종교개혁은 이러한 예배를 회복한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며 예배개혁이였다. 칼빈이 1544년 로마제국회의에 제출한 “교회 개혁의 필요성” 제하의 변증서에서 그가 왜 교회개혁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분명히 설명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너무나도 많은 잘못된 의견들에 의해 손상되었고 너무나 많은 불경하고 부정한 미신들로 왜곡됨에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이 흉악한 오만무례로 모욕당하고 그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혀졌으며 그의 영광이 발아래 짓밟히고 있다. 오호라, 모든 기독교 세계는 공개적으로 우상숭배에 의해 오염되었고, 사람들은 그 대신 자기들의 허구를 숭배하고 있다. 수천의 미신들이 지배하고 있다!”

 

칼빈은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데, 예배가 타락하고 오염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한다는 단순하고도 명백한 원리에 따라 예배의 회복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 회복에 그의 생명을 걸었다. 그는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예배와 비성경적인 그릇된 예배를 구별하면서, 로마교회의 우상숭배가 그릇된 예배의 전형이라고 비판하고, 그릇된 예배의 세가지 유형을 소개하였다. 첫째는 사람의 생각을 가르치는 예배이다. 사람의 계명을 가르치는 예배,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가르치는 예배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실질적으로 그 시대의 정신과 민족적 전통, 또는 교파적 전통 등 인간의 생각을 가르치는 예배의 왜곡이다. 특별히, 그는 골 2장의 “자의적 숭배”를 가장 전형적인 그릇된 예배로 규정하였다. 그들은 혹독한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종교적 철저성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전혀 주님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종교성이다. 자기의 종교성과 영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추구하는 종교적 노력과 예배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철저하고 인간적으로 존경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는 그릇된 예배인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인들의 종교적,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그 민족의 종교적 전통을 반영하며, 그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할지라도, 올바른 예배가 아니며 인간중심적인 자기예배일 뿐이다. 둘째는 바리새인의 예배이다. 칼빈은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계한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율법의 해석자로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권위를 주장하며 무리한 실천을 강요하고,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지식만 팔고 있는 삯군이 인도하는 예배가 바로 그릇된 예배라고 규정한다. 예배를 좌우하는 것은 예배 인도자라는 점에서, 이 지적은 중요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경배하지 않는 형식적이고 지식적인 차가운 죽은 정통의 예배가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연극적 예배다. 분위기와 의식은 우아하고 화려하며 음악과 설교는 장엄하지만, 인도자는 연극 배우와 같이 연기를 하고 신의식과 외경심이 결여된 멋있는 예배다. 교인들은 예배를 즐기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없다. 정열적이고 감성적인 예배이지만, 연극을 관람하거나 음악회에 참석하거나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강의를 들은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순간적인 엑스타시가 있지만, 삶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그 경험 자체를 소중히 생각하고 흠모할 뿐이며, 그 체험은 마음의 열기를 고조시키는 종교심리적 조작에 의한 유사경험일 뿐이다.

 

칼빈은 이러한 거짓 예배를 교회에서 정화하기 위하여 성상철거, 미신타파, 단순한 성경적 예배로의 복귀, 말씀에 대한 강조, 예배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서민적 언어사용을 통하여 경건하고 순수한 영적 예배를 드림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물론, 성경에는 구체적인 예배 순서나 형식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단지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성례와 말씀이 명령되었으며, 예배시 연보가 관례화되었다. 이에 따라, 개혁자들은 사도적 기반이 없는 요소들을 과감히 예배에서 폐지하는 한편, 그 문화적 형식은 과감히 동시대화하였다. 로마교회가 성경적 근거도 없이 로마문화를 절대화하여 모든 교회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고 정서에 맞지 않아도 로마의 노래를 부르고 로마의 언어로 성경을 듣고 로마의 옷을 성직자들에게 입힌 특정 문화숭배를 거부하고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읽고 자국어로 기도하며 각기 자기 정서에 맞는 찬송을 만들어 불렀다. 또한 비사도적인 미신 타파에도 전력을 다하였는데, 이는 외경 거부와도 관련이 있다. 외경들은 한결같이 미신적이고 마술적이며 세속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도적 예배는 보다 단순하면서도 진실하고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경건한 예배였다.

 

한국교회는 초기에 사도적 예배가 유지되었으나 교회성장주의와 개교회주의가 경쟁적으로 확산되면서 예배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기호를 중시하고 예배의 중심이 사실상 헌금으로 이동하여 수많은 헌금들이 발생하고 심지어 비성경적인 일천번제나 기복적 감사헌금들이 범람하고 있다. 아예 헌금을 위해 집회를 구상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헌금에 대해 마음대로 축복을 남발하고 있다. 예배가 헌금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되고 예배 인도자들은 연기자들이 되며 교인들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코메디가 연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예배의 자본주의적 변질은 중세의 면죄부나 축복헌금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교권의 청산

 

루터를 직접적으로 자극한 것은 면죄부였다. 돈을 내면 죄를 용서해주며, 면죄증서까지 준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이었다. 로마교회는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는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라는 종교상품을 개발하였고, 이것을 통하여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헌금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종교상품은 면죄권, 구원권, 축복권, 저주권 등과 같은 종교적 이권들을 이용하여 개발하는 것으로, 모두 돈과 관련되어 있다. 주고받기식의 자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발상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과 사죄와 축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기인한다는 성경적 가르침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다른 복음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구제와 사역을 위해 헌금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것이 결코 제도적으로 강요되거나 기복의 방편으로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에서 신유나 축복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것은 관행이 되었다. 세계에 유례없이 한국교회에서 개발된 비성경적 종교상품들과 헌금종목들은 과감히 폐지되어야 한다.

 

또한, 교권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회생활에 얽매어 교회 주위를 맴돌도록 만들었으며, 이는 결국 적극적인 세상의 개혁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보다는 내세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자세로 끝없는 교회의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수많은 의식들과 종교적 규정들을 준수하기 위해 분주하였으나 율법주의적 외식에 그칠 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평화에 이르지 못하였다. 개혁자들은 성경적 근거 없이 로마교회가 제정하여 부과한 수많은 종교적 의무들의 폐지를 주장하였으며, 특히 과도한 성례의 확장과 기도 제도를 비판하였다. 그리스도가 제정하여 명령한 세례와 성찬 외에, 로마교회가 추가한 고해, 견진, 혼배, 종부, 신품의 성례적 의무를 부정하였다. 그 외에도, 온갖 종류의 미사를 거부하였다. 실로, 성경이 규정하는 것 외의 종교적 의무나 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갈수록 축적되기 마련이며, 결국은 그것들을 준수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그것은 교권을 강화하고 성직자주의를 결과하며 평신도들을 무지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모든 것을 성직자에게 의존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모두 간접적이 된다. 이에, 루터는 만인제사장설을 주장하고 성자나 마리아뿐 아니라 성직자를 경유할 필요 없이 하나님에게 모두 직접 기도할 수 있으며, 성직자와 평교인의 기도에 아무 효력상의 차이가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같이 성직자들의 전유물로 되어 있었던 수많은 성례나 의식이나 권리를 폐지하고 평신도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실상 성직자들의 자살행위와 같은 것이었으나, 개혁자들은 그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에 과감히 추진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은 한국의 기복적 종교문화에 힘입어 확보한 많은 종교적 권리나 전유권을 평신도들에게 환원해 주어야 한다.

 

신학 이데올로기로부터의 자유

 

교회와 성경이 직접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이로니하게도 교파와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본질상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Ideology)란 흔히 ‘주의(主義, ism)’라고 표현되는 절대사상으로서, 특정한 이념(Idea)을 중심으로 모든 사고를 재편성한다. 이러한 사고는 전투적이어서, 자기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적으로 간주하고 전투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칼 바르트가 ‘성경적’ 자세에서 ‘성경주의적’ 자세로 넘어가게 되면 불가피하게 이성주의에 종속된다고 지적하였는데, 이는 신학의 이데올로기화를 의미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허용하지 않으며, 개념이나 사상의 신봉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인격적 화해와 관계를 그 본질로 한다. 따라서, 특정한 개념이나 교리나 사상을 절대시하고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의 도입은 기독교를 세속화시키고 급기야 분열을 결과하게 만든다.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회중교회는 정치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교파들이다. 성경은 특정한 정치체제를 명령하지 않는다. 장로정치나 감독정치나 회중정치 체제는 모두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가능한 방식들이지만 결코 배타적으로 절대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정치체제를 절대화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종속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분열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또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도 교회를 분열시키는 이데올로기들이다.

 

한편, 특정한 개념을 중심으로 분열하는 경우도 있다. 침례교회는 침례를 절대화하여 완전히 몸 전체를 물속에 담구어야 유효하다고 믿고 대다수의 교회가 행하는 세례를 무효라고 주장한다. 성결교회는 성결을 중심적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성결교인이 다른 교파의 교인보다 더 성화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개혁교회는 끊임없는 개혁이라는 이념을 중시하지만, 사실은 새로운 개혁을 거부하고 과거의 개혁을 절대화하는 모순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오순절교회는 특정한 신앙방식을 절대화한 것이다.

 

그리고, 특정인의 신학을 절대시하고 추종하는 것이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루터교회는 루터의 신학사상을, 칼빈주의는 칼빈의 신학사상을 절대화한다. 훌륭한 신학자는 교회에 필요하지만, 그의 신학을 절대화하여 무오의 경지에 올려놓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신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된다. 모든 신학은 인간의 작업으로서 불완전하며 신앙에 보조적인 역할을 감당할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칼빈주의’나 ‘개혁주의’ 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될 언사가 아닐 수 없다.

 

교회들의 집합으로서의 교단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배타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한 필요하며, 교회의 연합과 협동을 위해 유익하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개신교적이지도 않다. 실로, “니케아회의 이전의 초대교회에서는 ‘솔라 스크립튜라’도 ‘솔라 트라디티오(sola traditio, 유일한 전통)’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 신약 정경이 확정되지 않아서 교회마다 성경의 내용이 다소 달랐으며, 하나의 신앙전통만이 옳다는 독선도 없었으면서도, 교회사가 흠모하는 순수한 신앙과 헌신적 실천이 가능하였다. 신약 27권의 수용은 각기 약간씩 관심과 강조가 다를지라도 복음의 본질에 위배되지 않는 다양한 전통을 인정한다는 선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종교개혁은 복음의 본질을 홰손하지 않는 비본질적인 면에서는 다양한 해석과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호인정한 사건이다. 그래서, 헤르만 바빙크는 성경의 평이성 교리가 종교개혁 사상의 최고봉으로서 로마교회의 유일한 해석만을 절대화하지 않고 모두가 해석할 수 있으며 상대화함으로서 복음 안에서 다양한 해석과 이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물론 이것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을 야기하기도 하였으나 “불이익이 유익을 따르지 못한다”고 옹호하였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한 분명한 통일성을 요구하지만, 신앙방식이나 정치형식이나 비본질적 사안에 대해서는 다양성을 허용하고 있다. 성령은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하고 인도하기 때문에 교회가 모두 획일적으로 동일할 수는 없다. 이단이 아닌 한 분리해야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올바른 후예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머리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기도를 명심하고, 교파교회를 믿지 말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una ecclesia)만을 믿으면서, 진보와 보수의 대립적 양극화를 회개하고 하나됨과 형제됨을 회복하여야 한다. 실로, 교파분열을 전혀 죄악으로 인정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며 하나의 교회가 회복되도록 노력하지 않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날드 블래쉬가 지적한 대로, “우리 시대에서 교회의 재연합 없는 진정한 개혁은 없다.”

 

실천적 무신론의 극복

 

클락 피녹이 오늘날 ‘성경의 원리(Scripture Principle)’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통탄하였을 때, 그것은 비록 성경이 여전히 애독되고 선포되지만 그것이 직간접적으로 부인되고 있는 실천적 무신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실천적 무신론(practical atheism)’이란 이론적으로 유신론을 인정하지만,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적 전제와 구조에 따라 사는 신앙 형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신앙인들도 성경을 중시하고 애독하지만 성경의 본질을 오해하고 자의적으로 사용함으로서 결국 참된 성경적 신앙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실천적 무신론의 성경관은 무엇인가? 첫째, 삶에 유익한 도움을 주는 영감된 책으로 보는 실용주의적 견해이다. 성경은 잠언과 같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천상적 지혜를 주며, 사랑에 근거한 고상한 도덕적 규범을 가르치고, 정신적 세계를 조명해주는 영혼의 양식이며, 고통스럽고 불안할 때 마음에 평안을 주는 진정제와 같다. 이러한 낭만적이고 심리적이며 영성적이고 도덕적인 성경관은 실제적으로 삶에 많은 유익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참된 성경적 신앙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보다 생활의 필요에 도움을 받으려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뿐 아니라, 비록 탁월하지만 심리학이나 의학이나 철학이나 문학과 같은 세속적 도움과 같은 범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락시키고, 나아가 세계관이나 인생관과 같은 근본적 구조는 사실상 세속적이고 무신론적인 구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둘째, 삶에 통찰력과 결단력을 부여하는 신적인 책으로 보는 실존주의적 견해이다. 성경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이 원시적 세계관과 비과학적 신화들로 가득 찬 고대의 종교문헌이지만, 그것의 상징적이고 실존적인 가치는 신적이라고 평가하였다. 현대인들, 특히 지성인들은 성경에 들어있는 탁월한 통찰력과 실존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 세계관이나 사건들의 역사적 진실성은 수용하지 않는다. 오강남이나 김용옥, 또는 종교다원주의자들의 성경관이 그러하고, 많은 지성인들이 기독교 상대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읽고 이용한다.

 

셋째, 성경의 불변성만을 강조하고 성령의 구속사적 적용을 거부하는 근본주의적 견해이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한 시대나 한 문화에 고정되지 않으며, 과거 성경시대에 말씀하신 하나님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그들은 구속사적 진보나 성령의 현재적 인도를 거부하고 이천년 전의 성경시대에서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노예해방을 반대하였으며 왕정폐지도 반대하였다. 성경시대에 노예제도와 왕정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단교파들도 성경을 내세우지만, 최초에 채식만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영원히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자기들만이 참으로 성경적이라고 고집하는 안식교도나 구약에 일부다처제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도 가하다고 주장하며 성경적임을 옹호하는 몰몬교도가 이런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외적으로는 가장 성경적인 것 같지만, 실제는 성령의 활동이 이천년 전에 끝났다는 실천적 무신론으로 전락하는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성경을 통해 창조적으로 말씀하시며, 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솔라 스크립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지혜나 철학과도, 이데올로기나 신학과도, 심지어 교단의 신앙노선이나 총회의 결정과도 혼합하지 않고, 성경의 자명하고도 상식적인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그 이외의 어떤 권위도 상대화하는 용기 있는 신앙이었다. 한국교회는 성경이 명시하지 않는 모든 제도와 규정과 의식을 비판적으로 재검증하고 성경이 명령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순종하는 개혁자의 성경적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

 

(목회와 신학,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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