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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갱신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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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회는 1885년 선교가 시작된 이래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급성장하여 1,200만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동양 최대의 교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세기가 지난 현시점에서 한국교회는 성장을 중단하고 정체상태에 직면하여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 한국교회는 급성장이 정지되었는가? 그 질문에 대해 다양한 진단과 답변이 제시되고 있으나,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창설자인 손봉호박사는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만약 한국교회가 이런 도덕적 타락을 막을 힘이 되지 못하면 한국교회와 사회가 누릴 수 있는 황금기는 단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교회가 한 사회를 위하여 해야 하는 역할은 빛과 소금이 되어 그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막는 것인데, 만약 그 역할에 실패하면 적어도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의 존재의의는 없어지며, 그 사회 자체도 파멸에 이르고 만다.1

이는 Karl Barth가 세속화(Säkularisierung)란 "전혀 아무 실천적인 의미도 없는 종교영역의 하나로 전락하는 과정"이며 "소금이 그 맛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맛을 잃은 교회는 짓밟혀 마땅하다고 비탄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과연 윤리적 실패가 교회의 수적 성장을 중단시키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이거나 거짓된 것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윤리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고 정의할 때, 그 실천은 그리스도인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실행하는 것이며 공동체적으로는 교회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설립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순종하도록 권면하며, 한편으로는 교회적으로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를 시행하도록 명령되었다. 그러나, 교회역사상 사회나 교회가 극도로 퇴폐적이거나 타락하는 비윤리적 상황이 발생하면 윤리가 강조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운동으로 발전되기도 하였다. Jacques Ellul은 교회사에서 크게 세 번에 걸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분석하였으며, 그것은 윤리주의(moralism)라는 문제를 결과했다고 보았다.2 필자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윤리운동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발생 배경과 신학적 원리를 분석하고, 지난 10년동안의 사역을 평가하며 다가오는 21세기에서의 기윤실운동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기윤실운동 발생의 역사적 배경

교회는 항속적으로 존재하지만, 기독교 단체나 운동은 시대적 필요에 의해 발생하였다가 그 필요가 감소하면 사라지게 된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 교육과 의료봉사, 그리고 사회정의를 실천하여 사회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일제의 침략과 통치하에서 기독교신앙은 점차 내면화되고 개인화되는 경향을 띠기 시작하였고, 한국교회 안에 급격히 내세지향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대두되면서, 기독교는 사회의 비판을 받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1917년 이광수는 "금일 조선야소교회의 결점"제하의 글에서 교회를 비판하였고, 동아일보는 1922년 1월 7일 "종교가여, 가두에 출하라"는 사설에서 교회가 세상으로 나와 사회혁신과 불의추방에 앞장서라고 요구하였다. 그후 다양한 기독교 사회운동단체들이 출현하였고, 한국사회가 어두운 시절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일제의 탄압과 한국교회의 내면화로 오래 존속하지 못하였으며, 해방후에는 6.25동란의 고난 속에서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구제사업을 시행하는 대리자로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비롯한 약자들의 친구로 한국사회를 봉사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사회의 비난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기독교인이었던 이승만대통령의 정치적 부패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며, 경제적으로는 순수한 구제자선활동이 교회의 치부와 오만을 동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그 이후로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거의 30년동안 계속된 군사독재하에서 더욱더 심화되었다. 정치적으로는, 50년대말 한국장로교회의 대분열을 기점으로 한국교회가 NCC계열과 비NCC계열로 분단되면서 군사독재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하였기 때문이다. 진보측은 반군사독재투쟁을 전개하였으나, 보수측은 친정부적인 입장을 지속하였다. 한국사회는 양측 모두에게 정치적 비판을 가하였다. 정치신학의 영향을 받아 민중신학을 형성한 진보측은 운동방식과 사상적 과격성 때문에 보수적인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고, 무조건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보수측은 의식있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교회가 이 기간동안 급성장하면서 사회봉사에는 인색하고 개교회주의에 빠져 거의 모든 재정을 자체에서 사용해버리는 교회의 사치와 치부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이러한 1980년대말의 역사적 상황에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1987년봄 서울대에서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교수 몇사람이 처음으로 구상하였으며, [빛과 소금] 편집인과 투고자들을 중심으로 평신도 38명이 발기인이 되어 그해 11월 2일 발기총회를 가지고 12월 중순 창립되었다.3 발기인들은 주로 대학교수들이었으며 의사, 법조인들도 참여한 엘리트그룹으로서, 기윤실은 창립과정에서부터 윤리적 비판의식을 가진 복음적 평신도 지성인들의 단체라는 성격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손봉호교수는 당시 한국기독교의 도덕적 상황을 아래와 같이 개탄하였다:

지금 도덕적 영향에 관한 한, 한국기독교는 참으로 부끄러운 위치에 있다. 기독교회 스스로가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회봉사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사회가 교회로부터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도덕적 영향력마저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행사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서 사회의 도덕적 타락에 공헌하는 경우까지 없지 않다.4

1987년은 오랜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성취되어가는 전환기적 시점이었다. 발기인들은 한국교회내에 존재했던 3가지 정치적 입장, 즉 진보측의 과격한 반독재투쟁, 보수측의 독재협조,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복음적 지성인의 고민중 마지막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5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얻게된 민주화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보수적 기독교 지성인들로서 실로 "부끄러운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교회의 도덕적 무력과 타락을 보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지성인들로서의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계몽운동에 앞장서기로 나선 것이다. 그들이 작성한 [행동지침]은 개인과 교회, 그리고 사회 및 국가의 3영역에 기독교윤리를 적용하고 실천하자는 14개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리스도 앞에서 바로 서기를 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 사회와 인류의 평화에 공헌하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해 주기 바란다"는 격문으로 끝맺는다.

그 발생시기에 대하여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적절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말하는데,6 어떤 의미에서 1987년이 적절한 시기라는 말인가? [취지문]에 나타난 이유는 그 당시 한국사회에 윤리적 타락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민주화나 경제성장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이 운동을 시대적으로 요청하였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것이 모든 이유일까? 나는 그 시점이 보다 정치적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적 타락은 그 이전에도 일어났으며, 개인윤리나 교회윤리의 실천만이 그 목표였다면 그 이전에도 설립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가 실현되는 시점에서 그동안 군사독재상황에서 선지자적 사명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데 대한 자책감이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제 민주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무기력을 벗어버리고 적극적으로 교회와 사회를 위해 공헌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며, 특별히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 하는 시민운동이 독재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민주화되는 시점에서 발기하였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손교수는 시민운동의 필요성으로 정부제도의 불공정성, 권력의 부패경향, 정부의 의지나약, 그리고 시민들의 무지라는 네가지 이유를 들었는데,7 그렇다면 군사독재가 끝나가는 87년말에 창립된 것은 너무 늦은 일이다. 오히려, "독재하에서는 정상적인 시민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그의 판단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8 그렇기에, 기윤실은 국가에 대하여 "시민불복종운동"까지 전개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9 실로, 그때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전환기에 있어서 아직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고착되지 않았으므로 기독교인들이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되어 사회적 주도권을 잡고 한국사회에 기독교문화를 정착시킬 결정적 시점이라는 것이었다.10

2. 기윤실운동의 윤리사상

모든 운동은 그 원리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기윤실운동은 대학교수들에 의해서 주도된 시민운동으로서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행동강령은 3부 14조의 [행동지침]에 표명되어 있지만, 그 배후에 있는 운동원리는 그 대표적 지도자인 손봉호교수(1938)의 윤리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신학자이며 철학자이고 서울대 사회윤리학 교수인 그의 사상적 발전을 그가 귀국한 197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추적함으로서 기윤실운동의 원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기윤실은 38명의 발기인에 의해 시작되었고 지금 1만여명의 회원과 전국적인 조직망, 그리고 다양한 전문위원회를 가지고 있으며, 상당수의 실무간사, 실행위원, 기획위원, 여러 분과위원 등에 의하여 운영되는 거대한 단체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이 기윤실을 대표할 수 없으며 실제활동에는 여러 사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의 사상적 지도력은 지배적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사상가운데 기윤실운동과 연관된 몇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선지자적 비관주의

그의 학위논문인 Science and Person(1972)은 Kant와 Husserl의 인간관과 과학관을 분석한 작품으로서, 그는 지도교수였던 C. A. van Peursen교수의 기독교적 문화비판을 따라 인간과 과학에 대한 낙관론을 비판하고 구약시대의 선지자인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에서 보여지는 "선지자적 비관주의"를 결론으로 채택하였다.11 그것은 비록 그 외침이 거부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심판을 외치는 자세로서, 현대문화에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되리라는 그의 결의가 암시되어 있다. 이러한 역설적 자세는 귀국한 후 발표한 일련의 글들에서도 발견된다. 1974년에 발표한 "기독교 사회윤리 문제"라는 논문에서 그 사상을 한국사회의 윤리적 개선에 적용함으로서 기윤실운동을 예감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하나님만이 악한 사회를 개혁하실 수 있다.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개재되어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헛된줄 알면서도 사회개선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역설을 용납하지 못할 때, 우리는 무기력하게 앉아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 없이 사회를 개선하려는 인본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성경적 태도는 아니다.12

그는 여기에서 보수주의적 정적주의와 진보주의적 행동주의를 둘 다 비판하고 제3의 노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생존환경문제와 기독교"(75)에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가능성은 없지만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역설적 입장을 피력한다.13 그리고 막시즘적 정치신학에 대해서도, "기독교와 공산주의"(77)에서, "기독교의 인간관과 사회관은 끝까지 비관적이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이 선해지거나 사회가 개선된다고 기독교는 믿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기독교가 사회개혁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는 '선지자적 비관주의'(prophetic pessimism)라야 한다"고 주장했다.14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가질 때에만 기독교 사회운동이 낙관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이 개인의 윤리적 행동이나 사회윤리운동에 의한 사회구조 개혁을 통하여 이상사회를 이룩하려고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완전한 이상사회는 결코 인간에 의하여 이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이상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은 최선을 다 하여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일견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고, 이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은 기독교신앙의 한 중요한 일부다. 그리고 그런 신앙만이 기독교가 역사적 종교로 남아있으면서도 하나의 피상적으로 낙관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역설을 수용하지 못하면 기독교는 하나의 열광주의적 이데올로기로 변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숙명론적 무관심이나 현실과의 무비판적 타협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이 두가지 위험은 역사상 계속해서 기독교를 유혹했으며, 지금도 매우 현실적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해방신학과 같은 진보주의적 사회윤리가 전자의 위험을 보인다면, 근본주의와 같은 보수 기독교는 후자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15

그래서 기윤실이 출범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환상"을 가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 운동은 결코 독선적이거나 열광주의적이 될 수가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16 바로 이러한 선지자적 비관주의라는 초연한 자세가 윤리운동을 전개하면서도 율법주의나 윤리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였으며, 그는 그런 원칙 때문에 기윤실운동은 일반적인 윤리운동이 아니라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이라고 주장하였다.17

(2) 사회적 복음주의

그가 귀국할 당시 한국교회는 유신체제를 두고 진보측과 보수측이 서로 대립된 견해를 보이고 있었으며,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관계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보수측은 개인구원 없는 사회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구원받은 개인이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사회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진보측은 사회가 독자적인 사회악을 가지고 있어서 개인구원과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며, 나아가 사회구원이 더 우선적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런 논쟁에 대하여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1974년 12월에 발표한 "선교와 사회정의"라는 논문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만 전한다고 해서 사회정의가 자동적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해다"는18 입장을 표명하였다:

불의를 보고, 즉 가난한 자, 억눌린 자, 병든 자들이 압제 당하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무는 선교사나 기독교인은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어떤 정권이든 어떤 정당이든 불의하면 불의하다고 비판해야 하며 고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19

그것은 유신을 지지하며 불의와 압제를 외면하는 보수교회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지자적 비관주의와 복음주의 신학사상은 동시에 진보측의 낙관주의적 사회복음주의를 비판하여, "오늘날 성경보다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Utopia) 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 없이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개인들의 사고방식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경고를 보냈다.20 그는 원칙적으로 보수측의 원리가 성경적이지만, 그 내용은 잘못되었다고 분석하였다. "복음전파 자체가 정의의 구현을 위한 활동"이지만, 만일 선교가 사회정의를 결과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잘못 전해졌기 때문이다"는21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약한 자, 가난한 자, 불쌍한 자의 해방을 뜻한다면, 복음이 전파될 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사회구조가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도된 내용이 성경적으로 되어 있지 않든지 복음을 전하고 받는 사람들이 복음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22

이것은 그가 신학적으로 근본주의자도 자유주의자도 아닌 복음주의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계의 복음주의자들은 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 모여 [로잔언약(Lausanne Covenant)]을 작성하고 서명함으로서 양극을 배제하는 복음주의운동을 세계적으로 확대하였다. 거기에 참여한 한국대표들이 돌아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구성하였으며, 손교수는 오랫동안 그 사회위원장을 맡고 있다. [로잔언약]의 제5장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동안 전도와 사회적 관심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여겨왔던 것을 회개"하고,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가 우리 기독교인 의무의 양면임을 확신"한다고 천명하면서, 따라서 이제부터는 "모든 종류의 억압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구원의 메시지가 모든 형태의 소외와 억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도 포함하므로,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 존재하든지 악과 불의를 비판하는데 두려워하지 말아야 된다"고 선언한다.23 비록 Athol Gill이 지적하는 대로, "그러나 그것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정치적 참여가 취해야 할 형태를 밝히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남겼으나,24 [로잔언약]은 기윤실운동의 신학적 배경이 되어 설립배경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양극을 배제한 제3의 노선, 즉 복음주의적 입장을 선택했다고 설명하도록 만들었다. 복음주의적 입장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세계교회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였으며, 따라서 그의 복음주의적 사회참여론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있는 다수 그리스도인의 입장과 일치한다. Alister McGrath는 Evangelicalis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1995)에서,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공동연대(cobelligerence)"는 복음주의적 전술로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에 반대하여 형성된 복음주의적 사회참여론은 "세계 기독교의 미래경향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논평하였다.25 그런 의미에서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기윤실의 미래는 밝다고 볼 수 있다. 맹용길교수도 "21세기를 준비하는 윤리"에서, 이제는 지식신학이나 행동신학의 양극단을 지양하고 그 둘을 통합하는 윤리적 신학 수립이 21세기를 대비하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는데,26 이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3) 정치적 보호주의

그가 73년 귀국하여 직면한 한국정부는 유신을 선포한 군사독재정권이어서 정부를 부정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의 비관적 국가관은 보다 신학적이며 보편적이었다. 74년에 이미 그는 "지상의 모든 정권은 불의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교회와 선교사는 항상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27 이러한 국가관은 주로 Reinhold Niebuhr에게서 영향받은 듯하다. 78년에 소개한 "R.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서평에서, "국가란 가장 위선적이며 부정직한 단체"이며 특별히 국가의 특권계급이 그러하다는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28 그러므로, "사회정의란 절대 투쟁 없이는 성취되거나 개선될 수 없다"는 명제아래 "비폭력저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극복하고 도덕적 가치를 도입하는 니버의 용기를 가리켜, "현실의 냉혹함에 겁을 먹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신앙인의 용기"라고 찬사를 보낸다.29 이러한 투쟁의 적극성은 후일 기윤실운동을 창립할 때 만든 [행동지침]에도 반영되어 "시민불복종운동"의 결행도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국가에 대한 비관적 견해는 일관성있게 대정부관계의 기조를 이루고 있어서, 88년에 출간된 [교회와 국가] 서문에서도 "국가란 그 자체가 비도덕적이고, 그 비도덕성은 자연히 그 경제적 힘의 강도에 비례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30

그렇다면, 교회가 국가에 대해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에게 있어서, 국가는 윤리적 의지가 약한 자식과 같아서 부성적인 보호와 지도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국가가 도덕적이 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으며,31 이는 국가를 감시하고 부도덕성이 발견되면 "그 개선을 설득, 권고, 경고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평화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하는 압력을 가함으로서 수행된다.32 그러나, 정부는 도덕적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정의를 시행하려다가도 "기득권세력이나 어떤 일부 세력이 정부에 심한 압력을 넣으면 정부가 그 일을 하지 못"할 때, 기윤실과 같은 "시민운동이 정부를 도와주어야 한다."33 경찰이나 검찰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경찰을 도와야" 한다.34 우리 사회의 악을 감시하고, 범죄를 보면 신고하고 고발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절대적인 동조나 반대입장을 취하지 말아야 하며, 정치적인 문제는 관여하지 말아야 된다는 비정치적 입장을 표명한다. 단지 국가에 대한 간섭은 윤리적 차원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기독교신학이 특별히 피해야 할 것은 기존 이데올로기에 신학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다. 오늘날 소위 자유민주주의 이데올로기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요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우상숭배다... 모든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신학이 사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중요한 공헌이다. 정치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간섭은 윤리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으면 위험하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은 사회정치에 대하여 보편적인 도덕적 이상을 요구하고, 결과로 나타난 잘못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고, 그 방법에 관해서는 비도덕적인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한정해야 할 것이다.35

이와 같이 정부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힘을 실어주는 협조적인 자세는 분명히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정부도 그러한 시민단체를 필요로 하고 환영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윤실은 그동안 정부의 호감을 얻었고 손교수는 정부의 공직자윤리위원, 정보윤리위원장 등을 맡아 정부의 윤리적 노력을 도와주고 있으며, 단체적으로도 정부와 비교적 원만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 경제적 금욕주의

비록 그가 사회윤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에 동의하지만, 그의 출발점은 항상 개인윤리에 있다. 77년에 기고한 "종교와 사회정의"에서, 손교수는 기독교윤리의 원리를 사랑으로 규정하고 "종교가 해야 할 일은 모든 학문과 사회활동에 사랑의 기초를 제공하는 일이다"고 주장하면서,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내적 변혁에 관심을 쓰고 사랑을 가르치되, 사랑이 사회정의에까지 확대 적용되어야 함을 가르치는 종교로 남아있어야 할 것이다"고 결론지었다.36 이러한 윤리적 접근은 그로 하여금 개인적 윤리실천과 모범적 생활을 강조하게 하였고, 심지어 그를 금욕주의자로 만들었다.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이며 고난의 종교라면, 오늘날에 있어서 거룩한 고난과 희생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적 금욕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사랑과 정의의 실천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기독교가 한국사회를 위하여 오늘날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는 진정한 기독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물질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금욕적 생활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금욕적인 생활 없이 제도적으로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시도는 인간의 존엄성에도 어긋나고 기독교신앙에도 위배된다.37

그는 물질적 절약으로 실천되는 금욕은 오늘날과 같은 물질주의 시대에서 "경제적인 차원을 떠나 윤리적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8 공해와 환경문제도 절약과 금욕만이 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39

(5) 문화적 개혁주의

손교수가 8년동안 머물며 그의 사상을 완성한 화란의 자유대학교는 신칼빈주의의 본산이다. 그는 거기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권이 통치하게 하자는 설립자 Abraham Kuyper와 그 실천적 철학을 정립한 Herman Dooyeweerd의 기독교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기독교신앙이 내면적이며 영적인데 그치지 않고 모든 영역에 적용되어 그 분야를 개혁해야 된다는 적극적인 신칼빈주의 문화관을 확립하였다. 또한, 그의 지도교수였던 C. A. van Peursen교수의 문화철학의 영향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대문화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기윤실과 같은 시민운동에 참여해야 되는가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궁극적 이유로 기독교문화의 건설을 들었다:

이러한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사회 전체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변화와 개혁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 문화가 기독교적인 문화가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이 기회를 놓쳐 버려 모든 것들이 안정되어 버리면, 그 때는 뚫고 들어갈 틈이 없어지게 된다. 지금이 적기라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변화와 개혁의 주체가 되어서 우리의 문화를 성경적으로 이끌어야 한다.40

그는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라는 글에서, 현대문화를 대중문화라고 규정하고41 대중문화를 "대중이 만들어내고 대중이 즐기는 문화"라고 정의한다.42 그러면, 대중이란 누구인가? 그는 Ortega y Gasset, Martin Heidegger, D. Riesman등의 대중과 대중문화 비판을 근거로, 대중이란 "대부분의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성격을 가진 인간군을 뜻한다"고 말하면서,43 이 거대한 인간집단은 현대산업사회에서 대량생산과 대중매체에 의하여 생겨난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소외된 인간군"이요, 대중문화는 "소외된 문화"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한다.44 그리고, "기독교인은 대중에 속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 기독교인이 대중문화를 수용하거나 향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45 왜냐하면, 현대의 대중문화는 "향락중심이요 피상적인" "퇴폐적 문화"이기 때문이다.46 그가 문화를 비판하는 주된 관점은 윤리적 문화관이다. 윤리적인 문화가 좋은 문화이며, 비윤리적인 퇴폐문화는 나쁜 문화, 소외된 문화이다. 이러한 퇴폐적 대중문화의 창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로 작용하는 것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상업적인 동기"라고 분석했다.47 기독교인이 대중문화에 대해 해야 할 일은 대중과 대중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그런 세속적인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순화시키고 성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48 그러한 작업은 소극적인 문화비판과 적극적인 문화창조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독교문화의 창조를 위해서는 같은 분야의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모이고 협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그의 소망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모든 문화활동이 그렇듯이, 이런 기독교적 문화창조는 결코 혼자서 이룰 수 없다. 같은 달란트를 가진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같이 모여서 서로 도우려고 격려하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고운 시를 쓰고, 훌륭한 소설을 지으며, 깊이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문학이나 미술계에는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 같으나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찾아볼 수 없는데,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으면 한다.49

 

손교수는 1981년부터 한국 칸트철학회 회장을 맡아오고 있지만, 이론적인 상아탑 속의 철학보다는 실천적인 철학활동에 헌신하였다. 기윤실을 이끄는 외에도, 76년 서울 영동교회를 세우고 설교하기 시작한 이후 끊임없는 설교와 성경공부, 그리고 강연을 통하여 교회를 더 윤리적이 되도록 하는데 진력하였으며, 정부를 더욱 더 윤리적으로 만드는 일에도 공직자윤리위원과 정보윤리위원장으로서 협조하여 왔다. 그리고 TV와 신문등 대중매체에도 적극 참여하여 대중의 윤리적 교화에 힘썼다. 경제윤리의 실현을 위해 경실련, 공명선거를 위해 공선협을 대표하였으며, 유산 안남기기운동이나 장기기증운동에도 앞장섰다. 그 외에도, 그는 기독교윤리를 증진하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바쳐 수많은 운동과 단체를 이끌고 도왔다.

그가 1995년에 [고통받는 인간: 고통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라는 학술적인 저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이기도 하다"고 서술하였다.50 그는 서문에서, 삶의 후반에 와서 고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이는 7,80년대에 사회정의문제로 고민하면서 성경연구를 통하여 "정의란 사회의 약자들,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술회하였다.51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가장 약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바로 장애자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장애자를 위한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시민운동에 뛰어든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라고 천명한다.52 "사람들이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제도에 의하여 다른 사람들이 고통 당하는 것을 막고, 줄이고, 제거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53 윤리는 단순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고통의 경험을 통해서만 실천될 수 있으며, 비도덕적 행위는 고통을 결과한다. 오늘날과 같이 제도나 구조가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아진 사회에서는 사회윤리가 절실히 요청되며, 고통에 동정하고 분노하는 양심세력들이 결집하여 시민운동을 일으킴으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고통 당하는 사람의 호소하는 눈길이 우리에게 윤리적 의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54 고통의 경험에 직면한 윤리적 실천만이 이론적인 윤리적 상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Christian Belief in a Postmodern World(89)에서 윤리적 행동을 통해서만 무윤리적인 포스트모던시대에 선악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한 Diogenes Allen의 견해와도 일치한다.55

3. 기윤실운동 10년의 평가와 제언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기독교사회단체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단체"라는 평판을 받고 있다. 처음에 정직과 검소를 중심한 개인윤리실천운동으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사회개혁운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정치가 민주화되는 시대적 상황에서 기윤실은 정부의 민주화와 개혁운동에 동참하여 협조적인 비판자의 입장을 견지하였으므로, 운동의 방향은 주로 비정치적인 사회적 부패현상에 대한 견제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신문방송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윤리적 타락을 감시하는 전문적인 문화소비자운동으로 부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비판과 감시 일변도의 부정적 운동의 성격을 극복하는 긍정적 운동으로서 건강가정운동이나 상담활동, 그리고 밝은 문화운동과 한국기독교 재난구조협의회 등의 건설적 활동도 다양하게 전개되었으며, 다른 시민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을 통하여 폭넓은 가능성도 시도되었으나, 기윤실의 대중적 인식은 보다 윤리적인 문화비판과 효율적인 견제기술이 탁월한 기독교의 대표적 시민단체라는 것이다. 기윤실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자와 유능한 실무팀, 그리고 풍부한 전문인력을 가진 복음적인 시민단체로서 막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희망적 상황에서, "비기독교인도, 도덕적으로 빼어나지 않은 소시민도, 의식문제보다는 제도개혁문제에 관심이 큰 사람도 참여하거나 또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보다 보편적인 운동으로 승화"시키자는 이승종교수의 제안도 있었고, "사회개혁단체로서의 실질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권장희총무의 주장도 있었으며,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일을 벌이기 보다 음란문화 감시활동에 힘을 집중"하자는 유해신 전총무의 권고도 있었다. 이와 같이 기윤실의 전문화, 사역의 집중화, 그리고 심지어 기독교적 배경을 가진 일반 시민단체로의 전환이 제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우리는 기윤실운동 10년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다가오는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 기윤실의 사명과 효과적인 전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1) 기윤실운동의 성격

지난 10년간 기윤실이 벌인 사업과 업적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혁혁하고 위대하다. 한국교회 역사상 이와 같이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이토록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운동이나 단체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윤실운동은 그 성격을 분명히 하지 못함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오해와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고, 안정적인 발전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여, 권장희총무는 96년 사역평가에서 "지난 수년동안 기윤실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고 평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이승종교수는 95년 사역평가에서 그 문제점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간 기윤실의 운동방향과 관련하여 개인윤리 내지는 의식차원의 운동에 과도한 비중이 있다는 문제제기가 점철되어 왔음. 이는 정직운동과 기독교운동이 갖는 내생적 한계로 인식되어 왔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개혁을 위한 제도개혁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기존의 운동방향에 대한 자기성찰은 유익하다고 봄.

이제 1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기윤실은 계속 제기되어 왔던 이 문제를 과감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연 기윤실운동은 개인윤리를 우리끼리 실천하자는 운동인가, 아니면 사회윤리를 함께 실현시키자는 운동인가? 그동안 상당수의 기윤실회원들은 모범적으로 기독교적 개인윤리를 실천하려고 노력해 왔으나, 솔직히 대부분의 회원들은 자신의 개인적 윤리실천보다는 교회와 사회와 정부의 비윤리성을 비판하거나 그것을 개선하려는 간사들의 노력에 협조하는 것을 회원의 의무로 생각해온 것이 아닌가? 발기인들이 주로 대학교수들이었고, 회원들도 대부분 대학출신의 지성인들이다. 지성인들의 특징은 스스로 실천하기보다 비판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윤실은 테레사수녀가 이끄는 단체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윤리의 실천자들의 모임이라기 보다는 기독교적인 윤리의식을 가지고 사회의 비윤리성을 비판하며 개선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윤실회가 아니라 기윤실운동인지 모른다. 기독교윤리를 말없이 몸소 실천하는 분들은 아마도 기윤실 외부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윤리적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윤리적 비판과 개선운동을 한다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러한 개인적 실천은 교회생활과 개인적 경건생활로도 가능한 것이며 반드시 기윤실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윤실이 이제 전략적인 윤리운동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21세기의 효율적인 사역을 위해 사회윤리운동으로서 전문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윤리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지만, 그것은 내적인 자기확인정도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지난 10년은 기윤실이 활동패턴과 전통을 수립하는 기간이었다면, 시행착오를 통하여 활동방식을 조정하고 윤리운동의 메카니즘에 적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창립당시 마련한 [행동지침]의 3부 14조가 10년이 지난 현재에는 대표적인 5분야, 즉 정직운동, 문화소비자운동, 절제와 나눔운동, 건강가정운동, 그리고 교회를 돕는 운동으로 정착되었다. 특히, "문화의 생산과 소비행위에 책임있는 반응"으로서 "올바른 소비문화의 형성을 통해 문화생산을 건강하게 이끌어 가는 운동"이라고 정의된 문화소비자운동은 문화브레이크운동이라고 불리는데, 이 기윤실의 문화윤리운동은 크게 발전하여 한국사회에서 상업적인 음란폭력문화에 대한 효과적 제동장치로서 자리를 잡았다. 특정집단의 개인윤리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실천주장은 결국 윤리주의나 외식에 빠질 위험이 많으며, 그것은 오히려 교회에 위임된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기윤실운동은 이제 사회윤리운동으로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21세기에는 그렇게 정착되리라고 전망한다.

(2) 기윤실운동의 조직

기윤실은 87년 38명의 발기인으로 시작하였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1만여명의 회원을 가진 거대한 단체로 성장하였으며, 실행위원회에서 시작하여 기윤실내에 수많은 모임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조직되었다. 그 외에도, 전국적인 조직망과 해외지부, 그리고 부설기관들이 설치되었다. 10주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기윤실은 효과적인 운영과 활동을 위하여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는 실행위원회와 기획위원회, 그리고 사무국이 중심이 되어 운영되어 왔으나, 전문성이 약하여 모든 업무가 주로 간사들에게 부과되는 실정에 있었다. 보다 전문적인 제도개선을 예고하는 두 개의 조직이 구성되었는데, 그것은 95년에 출범한 문화전략위원회와 금년에 조직된 신학위원회가 그것이다. 기윤실운동의 사령부는 여전히 실행위원회여야 할 것이지만, 실행위원회는 명예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전문적인 위원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실행위원은 소수의 대표적인 상임위원과 전문위원으로 구성하되, 전문위원은 모든 부속위원회의 위원장들로 구성되면 효과적일 것이다. 최근에 신학위원장이 직책상으로 실행위원에 임명된 것은 이러한 제도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실행위원회는 전문적인 자문을 위해 신학위원회와 기획위원회, 그리고 법률위원회를 두면 좋을 것이다. 이미 앞의 두 위원회는 설치되어 있으나, 기획위원회는 현재보다 그 기능을 축소하고 전문화하여 기윤실운동 자체의 기획문제만을 자문하도록 하여야 분야간의 중복을 피할 수 있다. 법률위원회는 지금의 법률가모임을 격상하여 조직할 수 있다. 그리고, 실행위원회는 윤리분과마다 그 분야의 인사들로 구성하는 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각분야의 윤리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구체적인 개선안들을 마련하며 그 실행을 주도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분과위원회로는 정치윤리위원회, 경제윤리위원회, 문화윤리위원회, 생명의료윤리위원회, 환경윤리위원회, 교회윤리위원회, 그리고 가정윤리위원회 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기윤실운동의 실제적인 사역은 사무국에 달려있으며, 따라서 사무국이 확장되고 강화되어야 실행위원회가 자문위원회의 자문과 분과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결정한 사역이 효과적으로 실행되고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사무국을 구성할 실무간사들은 유능하고 헌신된 윤리운동가들이어야 하며, 그에 부응하는 대우와 여건조성이 필요하다. 간사들은 자문위원회를 비롯하여 모든 위원회에 담당간사로 배치되어 전문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전문간사들의 모임인 사무국이 결정기관인 실행위원회와 준하는 실행기관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사무국은 또한 회원과 후원교회를 교육하고 동원하는 일과 시민단체, 정부기관, 및 언론기관과의 관계를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사역을 담당할 간사들이 필요할 것이다. 사무국의 강화를 위하여, 총무는 사무국장으로 격상하여야 하며 전반적으로 간사들이 장기사역할 수 있도록 하여 년령과 경륜 및 지도력을 상향시키고 전문적인 훈련과 연수를 통하여 고급화하여야 한다. 회원들과 후원교회들은 사무국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필요시 회집하여 간사들의 사역을 도와야 한다. 나는 21세기의 기윤실이 일사불란하게 가동하는 대표적인 윤리운동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에 걸맞는 조직정비방안을 제시하였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폭넓은 논의를 통하여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직이 정비되고 사무국이 강화되기를 희망한다.

(3) 기윤실운동의 교회봉사

21세기에 있어서 기윤실의 계속적인 발전은 교회와의 관계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동안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기윤실은 하나의 교회병설단체(para-church organization)로서, 교회의 한 기능을 전문화하여 교회를 돕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그 교회론적 사명이다. 기윤실이 담당한 기능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윤리의 실천이지만,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지도하기 때문에, 기윤실은 그 기능을 교회를 중심으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양도할 수 없는 기능을 침범하였기 때문에 비난과 배척을 받게된다. 비록 한국교회와 교인들이 많은 면에서 개혁되어야 하지만, 성령님께서 매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교회를 계속 고치고 개혁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기윤실의 존재와 활동은 분명히 한국에서 기독교윤리의 실천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개혁에 힘을 쓰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도 사회개혁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지만, "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고 비판하기보다는 교회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안들을 제시하고 호소하기로 했다"는 기윤실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실로, 기윤실이 전문적인 교회지도자들을 무시하고 직접 평신도들을 계몽하여 기독교윤리를 실천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교회지도자들을 통하여 교회개혁과 윤리실천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기윤실이 그 교회론적 정체성과 정당성을 올바로 인식하여, 교회의 한 기능을 전문화하여 보조하는 길이다. 이는 기윤실이 기독교윤리 자체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연구와 자료발간, 그리고 신학교에서의 윤리교육에 대한 지원 등을 통하여 가능하다. 그리고 보다 효율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윤리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목회자와 기독교윤리학교수들의 참여가 요청된다. 기윤실이 창립 10주년을 맞는 올해 각교단의 기독교윤리학자들로 신학위원회가 조직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앞으로 교회 안에 기윤실운동을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교회협력위원회도 구성되었는데, 교계의 지도적인 목회자들로 교회윤리위원회를 조직하게 되기를 바란다. 처음에는 "어떤 분은 윤리적이고 어떤 분은 비윤리적이라고 판단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발기인으로 교역자를 전혀 초청하지 않았으나, 90년 홍정길목사가 실행위원에 취임한 이래 목회자들이 상당수 참여하였으나, 아직도 기윤실이 반성직자주의(anti-clericalism)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윤실운동은 배타적인 평신도운동이 아니라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협력운동으로 발전된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96년 사역보고서 서문에서, "많은 교역자들이 이미 한국 기독교계의 윤리적 타락에 대해서 개탄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힘을 결집하면 교회개혁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손교수의 생각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교회는 우리 사회의 윤리적 부패를 염려하며 기도하지만, 이를 구체화시키거나 실현할 수 있는 열심과 능력이 약하다. 기윤실은 전문적인 윤리기관으로서 교회들의 윤리적 의지들을 파악하고 집합하여 교회전체의 뜻으로서 사회에 반영하고 실현하는 실무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은 이미 문화소비자운동 등을 통하여 상당한 신뢰를 형성해 나가고 있으나, 보다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자본주의, 통일, 환경, 문화 등 다가오는 21세기에 제기될 ?양한 윤리적 이슈들에 대하여 기윤실은 민첩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 교회들이 방향을 잡지 못할 때, 기윤실은 수시로 제기되는 이슈에 대하여 분과위원회에 지시하거나 특별연구위원회를 조직함으로서 신속히 전문적인 보고서를 작성토록 하여 사회적으로 기윤실의 입장을 발표하고,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유용한 단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자료는 정부가 정책을 형성하고, 교단이나 교회가 입장을 결정하는데 유용한 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기윤실은 지난 10년동안 여러 가지 유용한 문서들을 간행함으로서 기독교윤리실천에 공헌하였다. 앞으로도 전문화되고 활발한 문서운동을 기대한다. 스스로 윤리적이라고 자만하기보다는 교회를 위하여 그 사회윤리적 기능으로서 교회를 섬기고 일하는 단체가 되어야 모든 교회가 그 존재의의에 인정하고 적극 도와주게 될 것이다. 기윤실의 업적에 비해 교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하며, 회원은 겨우 기독교인의 0.1%정도에 머물고 있다. 물론 연합운동에 무관심한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1만명 회원의 확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분야의 대표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은 홍보와 회원가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회의 기관지원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윤실은 개인회원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함께, 후원교회를 증가시키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기윤실의 소식지를 보다 전문화하여 전국교회에 배포함으로서 교회와 지도자들에게 윤리의식을 진작하며 기윤실의 활동에 대한 공감대와 폭넓은 인정 및 참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기윤실은 교회와 사회의 인정을 받는 일이 중요한데, 그것은 윤리적 모범보다는 전문적 능력이라는 면에서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아시아가 세계무대에 부상하는 시기로서 한국교회가 아시아 선교에 성공한다면 세계의 영적 판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선교의 성패는 한국교회가 그 정체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하는데 달려있으며, 이는 교회가 세속화를 정화하고 한국사회의 도덕적 부패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21세기에서 기윤실운동의 사명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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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봉호, "2000년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 {기독교적 관점에서} (나비출판사, 1989), 160.

2. Jacques Ellul, The Subversion of Christianity (Grand Rapids: Eerdmans, 1986), 84-6.

3. 손봉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시작", {약한쪽 편들기} (한국밀알선교단 출판부, 1991), 89;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기독교인의 책임", {기독교적 관점에서}, 141.

4. 손봉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시작", {약한쪽 편들기}, 93.

5. Ibid., 90-2.

6. 손봉호, "1991년을 내다보며", {약한쪽 편들기}, 117.

7. 손봉호, "교회와 시민운동", {현대사회와 기독교}, 정훈택외 5인저 (생명의 말씀사, 1994), 55-61.

8. Ibid., 61.

9. Ibid., 54-5.

10. Ibid., 67.

11. 손봉호, Science and Person: A Study on the Idea of Philosophy as Rigorous Science in Kant and Husserl,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Ph.D. 학위논문 (Assen: van Gorcum & Comp., 1972), 164-5.

12. 손봉호, "기독교 사회윤리 문제", {신학지남} 74년 9월호;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성광문화사, 1978), 260.

13. 손봉호, "생존환경문제와 기독교", {신학지남} 75년 3월호;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303.

14. 손봉호, "기독교와 공산주의", {정경연구} 77년 4월호;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369.

15. 손봉호, "사회윤리와 종교: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인의 정치의식과 민주화}, 백종국 편저 (생명의 말씀사, 1994), 29-30.

16. 손봉호,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기독교인의 책임", {기독교적 관점에서}, 144.

17. 손봉호, "한국사회와 기독교윤리", {약한쪽 편들기}, 106.

18. 손봉호, "선교와 사회정의", {신학지남} 74년 12월호;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270.

19. Ibid., 271.

20. Ibid., 270.

21. Ibid.

22. Ibid., 270-1.

23. C. Rene Padilla, ed., The New Face of Evangelicalism: An International Symposium on the Lausanne Covenant (London: IVP, 1976), 87-8.

24. Ibid., 101.

25. Alister McGrath, Evangelicalism and the Future of Christianity (Downers Grove, Illinois: IVP, 19995), 172-5.

26. 맹용길, {기독교윤리학} (쿰란출판사, 1994), 303.

27. 손봉호, "선교와 사회정의",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271.

28. 손봉호, "R.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정경연구} 78년 9월호;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281-2.

29. Ibid., 285.

30. 손봉호, "서문", {교회와 국가} (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 1988), 16.

31. Ibid., 19.

32. 손봉호,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기독교인의 책임", {기독교적 관점에서}, 143.

33. 손봉호, "교회와 시민운동", {현대사회와 기독교}, 60-1.

34. 손봉호, "한국사회와 기독교윤리", {약한쪽 편들기}, 112.

35. 손봉호, "한국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전망", {기독교적 관점에서}, 80-1.

36. 손봉호, "종교와 사회정의", {대학신문} 77년 6월 20일자;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266.

37. 손봉호, "한국사회에 대한 기독교적 전망", {기독교적 관점에서}, 83.

38. 손봉호, "오늘의 사회현실과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기독교적 관점에서}, 99.

39. Ibid.; 손봉호, "생존환경문제와 기독교",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 303.

40. 손봉호, "교회와 시민운동", {현대사회와 기독교}, 67-8.

41. 손봉호, "대중문화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 {기독교적 관점에서}, 161.

42. Ibid., 163.

43. Ibid.

44. Ibid., 163-7, 169.

45. Ibid., 169.

46. Ibid., 167-8.

47. Ibid., 167.

48. Ibid., 171.

49. Ibid.

50. 손봉호, {고통받는 인간: 고통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 (서울대 출판부, 1995), iv.

51. Ibid., iv-v.

52. Ibid., v.

53. Ibid.

54. Ibid., 206.

55. Diogenes Allen, Christian Belief in a Postmodern World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89),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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