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석 교수의 신학 문답 Q&A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2-18)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서론
어느 나라에나 추수감사절이 있다. 그것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미풍양속이다. 비록 우리가 씨를 뿌리고 땀흘려 키우고 추수의 노력을 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이 단지 우리 자신의 성취라고 생각하지 않고 신의 축복이라고 믿고 감사한다. 그것이 인간됨의 축복이다. 비록 이제 많은 사람들이 농경문화 속에서 살지 않지만, 미국이나 한국이나 추수감사절이나 추석이 되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 해를 감사하며, 현대생활 속에서 교만해진 우리의 마음에 겸손과 감사를 회복하는 아름다운 시간을 가진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그것은 부모가 영광을 받으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자녀에게 인간됨의 미덕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즉,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르친다. 하나님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도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인해 상실한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본래의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기 원하신다. 하나님을 떠나 감사할 줄 모르는 교만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추하게 타락한 모습이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되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본론
1.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세가지 열쇠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이 세가지는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세 가지 열쇠와 같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한 뜻으로서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어서, 이 세 가지 하나 하나는 다른 두 개의 열쇠로 열 수 있는 신비한 자물쇠들이다.
2.항상 기뻐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그런 일이 없으면 우울해지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낸다. 하나님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고 나아가 죄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중심적이고 환경에 지배 당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이 기쁘지 않은데 억지로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불안한 성질과 연약한 감정을 극복하도록 두 개의 신비한 열쇠를 주셨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 인간은 지정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 세 가지는 상호 연결되고 상호 영향을 미친다. 기뻐하는 것은 감성의 문제인데, 이것은 지성과 의지가 조절할 수 있다. 즉흥적인 기쁨이나 말초신경적인 기쁨은 감성 자체의 행위이지만, 보다 깊은 기쁨은 인간성에서 나오며 그의 지성과 의지로부터 연원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두 가지 열쇠를 주신 것이다.
3.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항상 기뻐하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즉 올바른 기도생활은 기도할 때는 많이하고 또 얼마동안은 하지 않는 그런 불연속적 기도가 아니라, “쉬지 말고” 계속 기도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심지어 불신자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한다. 신자들은 달라야 한다. 물론 신자들도 어려운 일이 있고 긴급한 필요가 있으면 더 열심히 더 많이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쉬지 않는 기도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명령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우리의 이기적인 자아를 치유하고 성화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고치려고 노력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제목에서 많은 것을 지우라고 명령하셨다. 우리의 의식주와 같은 일상생활의 필요는 기도하지 말라고 금지하셨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줄을 아시느니라.” (마6:31-32) 예수님이 금지한 것은 단지 의식주 문제 만이 아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강한 신뢰와 믿음이다. 그것이 없으면 기도가 아니다. 우리와 개인적으로 무관한 부처나 산신령에게 매달리고 애원하여 무엇인가 얻어내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될 그런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랫동안 애걸복걸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그런 분이 아니다. 사실은 부모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나가시는 분이다.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생각하고 주실 생각을 하시는 분이다.
실로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며, 그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기도는 내 자신을 비우고 내 자아를 죽이는 훈련소와 같다. 내가 이기적인 동기로 나아왔다가도 기도를 통하여 그런 욕심과 불신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변화의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을 바꾸려 왔다가 나를 바꾸는 신비스러운 은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제목을 보시고 많은 제목들은 지우고 우선 순위를 바꾸어 주셨다. 항상 우리 기도제목 1번은 하나님의 나라여야 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6:33)
이와같이 우리 기도가 바뀌면, 그런 기도는 우리 상황이나 필요와 관계없이 쉬지 않고 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불신과 욕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과 그의 나라에 헌신하는 기도는 우리가 쉬지 말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고 그의 나라에 충성하게 된다. 즉, 쉬지않는 기도는 변화된 기도를 의미한다. 이방인의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 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의 염려와 걱정이 사라지고 우리의 기쁨이 회복된다.
4. 범사에 감사하라
또한 항상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범사란 모든 일이라는 뜻인데, 영어 셩경에서는 in all circumstances, 즉 모든 상황 혹은 환경에서라고 번역하였다. 죄인은 모든 상황에서 기뻐할 수 없다. 자기가 모든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로지 모든 것을 다 가질 때만 기뻐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서도 일부를 갖지 못하면 불만과 분노를 느끼고 슬픔과 우울에 빠지게 된다. 왜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내가 못 가지느냐는 울분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오해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권리가 있으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오해이다.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으며 사실도 아니다. 또 하나는 소유와 행복이 비례한다는 생각이다.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부자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다.
우리가 모든 환경과 모든 상황에서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 불신자들은 감사할 대상이 없다. 모든 것이 운이고 우연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고마워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감사한다. 심지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한다. 나에게 생명과 존재를 주셨기에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이며, 내가 무엇을 얻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살핌과 은혜가 중단되면 그 순간 나는 능력과 생명을 상실하고 멸절하게 된다. 따라서 심지어 어려서 혹은 젊어서 죽더라도 하루살이와 같이 단명하는 존재나 아예 존재의 은혜를 받지 못한 무존재와 비교할 때 여러 해를 살 수 있는 은혜를 받았기에 감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절대은혜를 알고 믿기 때문에 절대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간됨의 본분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영어의 thank라는 말은 think에서 유래하였다.
성경주석가 Matthew Henry는 어느 날 강도를 당해서 모든 것을 잃었으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네 가지 감사를 드렸는데, “첫째는 오래 살아왔지만 한번도 강도를 당한 적이 없었고 처음으로 강도를 당했기 때문에, 둘째는 모든 소유를 잃었지만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세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그게 그리 많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네째는 내가 강도를 하지 않고 강도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신뢰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해도 감사할 수 있다. 극한 가난이나 고통스러운 질병이나 참기 힘든 고난을 당할 때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가 힘들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서 감사와 기쁨을 회복할 수 있다. 어떤 성도가 이렇게 말했다: “기쁨은 나의 왕이 내 마음의 성에 계실 때 흔들리는 깃발과 같습니다.” 주님이 나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어떤 상황과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소유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과 신앙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선조들로부터 전수받은 Thank You라는 말을 아직도 즐겨 쓰지만, 그 정신은 상실하고 있다. 현대를 사는 미국인만큼 풍요를 누리는 사람이 없지만 감사를 상실하고 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은 부모가 아주 적은 것만 주어도 아주 기뻐하고 고마워하지만, 부유한 아이들은 잘 고마워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문둥병자 10명을 고쳐주고 제사장에게 확인하러 보내셨는데, 오로지 한 사람만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셨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는냐?” (눅17:17) Charles Brown은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 아홉가지를 이렇게 풍자하였다:
첫번째는 정말 치유되었는지 확인한 다음에 오려고 하였다.
두번째는 그 치유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기다린 다음에 오려고 하였다.
세째는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감사하려고 미루었다.
네째는 이렇게 쉽게 낫는 것을 보니 문둥병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다섯째는 그가 고쳐주지 않아도 어차피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섯째는 그 영광을 제사장에게 돌렸다.
일곱째는 예수님이 별로 수고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여덟번째는 랍비는 누구나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홉번째는 나는 이미 거의 나아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기쁨은 고마움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다. 자기 아내나 남편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라고 감사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자녀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남에게 자그마한 것을 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기다린다. 그런데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으면 후회하고 다시는 주지 않으려 한다. 적은 것이라도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주고 싶으실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의 감사 제목은 한이 없다.
비록 지금 미국이 힘든 상황과 환경에 처해 있고 그래서 우리가 경제적인 고통을 받지만, 지상의 수많은 후진국들과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선조들은 1620년 8월15일 두 배로 영국을 떠났으나 배 하나가 심하게 새는 바람에 다시 돌아와서 두 배에 탔던 102명이 Mayflower호에 비좁게 타고 9월16일 출발하여 66일의 험난한 항해를 거쳐 미국에 도착하였고 12월11일 Plymouth에 상륙하였으나 매서운 겨울을 지나면서 반이 죽고 그 다음 해 1621년에 생존자 53명이 최초의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다. 모든 것이 순조롭고 형통할 때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결론
이 은혜스러운 감사의 계절에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의 삶에서 실현시켜 드리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행복하기를 원하시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이 세 가지 행복의 열쇠를 주셨다. 이 세 가지 열쇠를 버려두지 말고 항상 사용하여 여러분의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고 항상 행복하시기 바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2008.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