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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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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

 

(i) 그리스도의 직분(officium Christi)에 대하여 그의 삼중직(munus triplex) 연구가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성경적이고 결실이 풍성한 방법으로 인정되어 왔다. 그의 세 직분은 성경에 보고된 그의 사역의 세 가지의 주요 범주이다. 이 방법의 주요한 제안자인 존 칼빈은 “우리의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여되는 구원의 견고한 기반을 발견하고, 그리하여 그 안에서 평안을 얻기 위하여, 성부가 그리스도에게 부여한 직분이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는 원리가 확립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이 되도록 직무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II.xv.1)

 

(ii) 이 개념은 예수의 종합적인 칭호, 즉 하나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자 또는 공식적으로 임명된 자를 의미하는 Christus에 기초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신정 사회에서 이 세 직분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름 부음 받고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4:18-21에서,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의 오심을 예언한 이사야 61장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였다. 예수님은 기름부음 받은 자, 즉 그리스도로서 삼중직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오토 베버는 그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의 권위에 의존하여 행동하지 않으셨다. 그는 위임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은 성부와 그의 백성에 대해 공식적이며, 우연이나 자의적이지도 않고, 하나님 공동체의 대표적 수행으로 확정된다. 그것은 그를 스스로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인간과 차별화한다. 그는 성부 하나님의 위임에 철저히 순종한 분이었다.

 

(iii) 그리스도의 사역은 임직된 인간들과 같이 세 가지의 직분들로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혹자는 3직보다 3중직이라고 서술하기를 선호한다. 세 직분의 통일성은 그의 인격의 통일성에 근거한다. 왜냐하면 그의 인격과 그의 사역이 불가분리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참 신과 참 인간 (vere Deus vere homo)이 된 그의 성육신이 그의 속죄사역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세 직분의 비인격적 분리는 그리스도의 오해를 결과한다고 베르카우어가 경고하였다.

 

(iv) 이러한 그리스도의 이해는 교회와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위한 종합적 사역을 인식하며 균형있고 풍요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있어서 의미심장한 은택을 부여한다.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머리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인정하는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사업이 아니라, 그의 사역을 계속해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에게 지침을 제공하며 동시에 경각심을 야기 시키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직

 

(1) 완전한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

 

(i) 행 3.17-26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 18.18-19에서 모세에게 준 예언의 실현임을 설교하였다: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그것은 예수님이 종말론적이며 완전한 선지자이심을 의미한다. 성부 하나님이 예수님의 세례와 변화에서 친히 나타나 그 사실을 이렇게 확증해 주셨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5)

 

(ii) 예수님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a),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마 13.57),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 13.33)고 말씀 하셨을 때, 그는 자기가 선지자라는 강한 자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비록 그것들이 간접화법을 사용하였지만, 선지자라는 그의 자기 정체성은 의문의 여지없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마23.29-30에서 참된 선지자에 대한 유대인들의 모순되고 위선적인 행동을 지적하셨을 때, 그것은 진정한 선지자인 자기 자신을 그들이 죽일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 당시의 유대인들에 의해 랍비로 부름 받았으며 선지자로 인정되었다(마 21.11, 46, 눅 7.16, 24.19, 요3.2, 4.19. 6.14, 7.40, 9.17)

 

(iii) 참된 선지자로서, 그는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도록 위임하신 것만을 말하였다: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 8.28),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요 12.49).

 

(iv)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메시아의 오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예언의 성취이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선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1-2) 그리고 선지자들 배후에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가 계셨으며, 그가 바로 그들을 통해 예언하신 분이다."(벧전 1.11). 그리스도는 말씀을 말하는 말씀이시기 때문에, 그는 완전한 선지자이다. 모든 다른 선지자들은 그의 그림자와 예표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말한 말씀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달랐다. 비록 그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지만, 그것은 삼위일체적 합일에 근거한 성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미한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예수님은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말하는 말씀과 행동의 통전적 선지자이시다.  말과 행동 또는 인격의 분리가 그에 의해 극복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른 형식으로 말씀하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내가 말하노니"라는 문구로 시작하였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 14.6)이며 "세상의 빛"(마 4.16, 요 1.4-9, 8.12, 9.5, 12.35-36, 46)이라고 선포하셨다.

 

(2) 선지자의 사역

 

(i) 구약에서, 선지자와 제사장은 종교 생활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었다. 삼상 9:9에서 보는 대로,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seer)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prophet)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선지자는 상대적으로 후대에 개발된 것이다. 선견자(<  > roeh)는 본다 <  > (raah)에서 유래한 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시각적인 형태로 계시를 받은 반면에, 선지자(nabi)는 대변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였다. 신약에서, 그리스도가 완전한 계시로 예언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적인 의미의 선지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지자 (pro-phetes)는 이제 미래일을 말한다기보다 힘차게 말한다(speak forth)는 의미를 가진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요엘의 예언은 모든 성도가 선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였다.

 

(ii) 선지자의 의무는 교지, 권면, 훈계, 그리고 영광스러운 약속과 준엄한 책망의 형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것이었다. 레온 모리스는 참된 선지자의 7가지 특징을 이렇게 열거한다: 하나님의 소명, 역사의식, 사회윤리적 관심, 정치적 비판, 상징적이며 의식적인 표현, 하나님과 사람들의 중재, 그리고 선지자적 선포. 그러므로, 그것은 흔히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는 죽임을 당하게 되는 위험한 소명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기능을 완전하게 수행하셨으며, 그가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정죄와 죽임을 당하셨다.

 

(iii)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는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계속 선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의 머리이며 주님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할 때, 교회는 성도들에게 대한 설교와 교육에서 말함으로서, 그리고 전도와 선교에서 증거함으로서 선지자적 기능에 충실하게 된다. 또한, 선지자적 사명은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향하여 정치적 참여, 경제적 투쟁, 문회적 비판 등을 통한 사랑의 용기있는 목소리를 포함한다.

 

(3) 거짓 선지자

 

(i) 선지자가 하나님에 의해 개인적으로 소명을 받고 사탄이 유사한 형식으로 모방함에 따라, 유대 종교 안팎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선지자적 열광과 직업주의가 거짓 선지자의 주요한 표징이며, 구약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분명한 기준을 신 13장과 에레미아 23장, 그리고 에스겔 13장에서 제시한다: 영적 우상숭배로의 인도, 도덕적 악행, 자기의 상상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 그리고 무조건적 평안의 예언이다.

 

(ii) 신약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진보함에 따라, 사탄은 교회를 파괴할 목적으로 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일으킨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의 종말론적 출현이 경고와 함께 예언되었다. 거짓 선지자는 그들의 말이나 능력보다 그들의 열매, 즉 그들의 삶과 실천을 통해 인식될 수 있다(마 7.15-29). 예수님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경고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희생을 멀리하고 이기적 자연종교와 신비종교를 부추긴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은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을 것이다."(벧후 2.1-3a) 그들이 악령의 힘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지시되었다(요일 4.1-3).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육신의 부인이 거짓 선지자의 명백한 증표이다. 또 다른 시험방법은 동료 선지자들의 통제, 특히 사도들에게 순복하는지를 보는 것이다.(고전 14.29-33, 36-38). 구약 선지자들이 모세에게 복속하였다면, 신약 선지자들은 사도들에게 복속하여야 한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

 

(1)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i) 구약에서, 메시아는 왕으로 오신다고 예언되었다 (민 24.17, 삼하 7.16, 시 2.6, 45, 72, 110, 사 9.6-7, 단 7.13-14, 미 5.2, 슥 9.9):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천사는 이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이루어졌다고 공표하였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그는 족보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인정되며,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ii)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그의 출현은 왕국의 출범이었다(마 4.17. 23, 12.28 et al). 그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심지어 그가 아기 였을 때에도 핍박을 받았으며, 그리고 결국 로마 총독에게 처형 당하셨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 비록 그의 왕권은 지상의 왕과 다르고, 지상의 왕이 되는 것은 거부하셨지만, 예수님은 자기가 왕임을 분명히 하셨다 (요 18.36, 6.15). 종려주일에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평범한 왕이 아니라. "왕중 왕"이시다(계 19.16).

 

(2) 왕의 사역

 

(i) 그리스도의 왕직은 권능의 통치(regnum potentiae), 즉 우주에 대한 권능의 통치와 은혜의 통치(regnum gratiae), 즉 그의 몸된 교회에 대한 은혜의 통치로 나누어진다. 그의 중보자적 왕권(regnum mediatorium)은 그가 구속과 화해를 성취하였을 때 하나님이 부여하셨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kephale)로서 교회를 통치하는 왕(basileus)이시다 (고전 11.3, 엡 1.22, 4.15, 5.2, 골 1.18, 2.19). 그의 신으로서 통치(regnum Dei)는 그리스도로서의 통치(regnum Christi)에 내포된다.

 

(ii) 그의 중보자적 왕권은 구속적 사명의 완전한 순종적 성취에 대한 자기 아들의 승귀로서 부여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선물이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만물의 복속을 요구하는 그의 완전한 왕권은 그가 재림하실 때 성취될 것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3) 하나님의 나라

 

(i)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basileia tou theou)에 집중되어 있었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눅 4.43) 심지어 부활 후 40일 동안에도,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고 기록되었다 (행 1.3). 중생한 자 외에는 아무도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 3.3, 5). 그것은 외형적이거나 지상적이 아니라, 영적이고 천상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하늘 나라(basileia ton ouranon)는 복음서에서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수용한 사람들의 마음을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롬 14.17) 통치한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에게 대답하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그것은 불가시적이며 영적이다.

 

(ii) 그러나, 이 나라는 시민과 군인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시민권은 불가시적 교회의 회원권과 공유적이다. 비록 왕국이 교회보다 사역의 장에 있어서 더 광대하지만, 교회의 머리이며 동시에 왕국의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왕국의 가장 중요하고 유일하게 하나님이 설립한 외형적 조직"인 자기 교회를 집결시키고 다스리시며 완전하게 만드신다. 이 나라는 삶의 모든 영역을 관장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나라의 발전을 도모해야 하며, 결코 진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iii) 자율적인 주권을 주장하는 지상의 왕들과 왕국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배한다. 유대인들이 주위에 있는 나라들의 왕과 같은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신적 왕권의 거부로 이해하였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하나님이 수용하고 왕을 허락하셨지만, 하나님을 자기 왕으로 섬기고 복속하는 겸손한 왕을 강력히 요구하셨다(신 17.14-20). 단 2장의 환상적 예언은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와 같은 지상적 제국들의 운명을 계시하는데, 그것들은 파괴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로 대치될 것이다. 이 나라는 산 돌과 같이, 그리고 겨자씨나 반죽 속의 누룩과 같이 계속 자라나고 확장될 것이다.

 

[단 2.36-44]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왕이여... 왕은 곧 그 금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34-35.]

 

이 맥락에서, 민족주의, 제국주의 또는 식민주의와 같은 모든 집단적 이기주의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 대치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고 대치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iv) 하나님의 나라는 타락에서 사탄과 인류가 연합하여 반역하였으나, 그리스도의 구속과 해방으로 회복되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소유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죄에 의해 오염되고 손상된 모든 것을 침투하고 성화한다. 모든 분리와 차별의 장벽들이 구속의 효력에 의해 극복되며, 우주의 만유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이다. 죄는 분리하지만, 구속은 다시 연합시킨다. 바르트는 갈 3장 28절을 "인간성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불렀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인종, 민족, 국가, 성별, 계급, 빈부, 권력, 지식, 신체 등에 의한 차별은 모두 하나되게 하는 성령 안에서 종식되어야 하며, 교회는 그것을 방해하지 말고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교회가 먼저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 (요 17.20-23, 엡 4.1-6, 고전 1.10-13). 우리가 그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에덴동산에서 주신 원초적 부여를 회복한 공로에 의해 가능하다. 그리스도는 자기 나라를 우리와 공유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기노라."(눅 22.29)

[엡 1.9-10, 2.14-26]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

 

(1)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i) 히 10:11에서 지적된 대로,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hephapax)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으로(히 7.27), 그리스도는 모든 구약 제사장들의 완성이시다. 그래서, 그는 큰 대제사장(archiereus megas) (히 4.14), 영원한 제사장 (7.21), 영구적인 제사장 (7.24) 그리고 완전한 제사장 (7.28)이시다.

 

(ii)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으로 (히 7.11), 시 110.4에 예언되었다. 아론으로부터 세습된 제사장직 (출 28.1, 29.9, 40.15)은 비록 솔로몬에 의해 사독의 반열로 제한되었으나(왕상 1-2장) 예수님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년례적인 속죄 제사를 드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매년 제사장들 중에서 선정되었다. 그러나, 레위 반열의 제사장들은 불완전하여 영원한 속죄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별도의 특별한 반열이 도입되어야 했다 (히 7.11). 그리스도는 서약을 하고 하나님 자신에 의해 영원한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임직되었다 (히 7.20-21).

 

(2) 제사장의 사역

 

제사장은 속죄를 위한 제물과 제사를 드리도록 임명되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레 6.7)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해 바쳐질 희생 양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하고 받으실 만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이었다. 심지어 완전한 제사가 단번에 드려진 후에도, 그는 계속하여 하나님과 자기 백성을 중보하고 중재하는 제사장직 사역을 수행하신다. 하늘에서도, 그는 우리 구원을 완성시키는 자로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요일 2.1, 히 7.25).

 

(3) 만인 제사장설

 

(i) 로마교회의 성직자주의에 반대하여,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기 때문에 기도와 예배가 성직자에게 제한되지 않고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다는 만인 제사장설(allgemeinen Priestertums)을 주장하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기 때문에 (벧전 2.5),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성직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하나님과의 직접적 교통의 결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부여된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부정하는 유감스러운 일이다.

 

(ii) 성령 세례는 신자를 제사장으로 기름부어 세우는 기능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여러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예수님을 따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가 계속 요구된다 (롬 12.1). 성화는 계속적인 자기 제사, 즉 자기 사멸과 자기 부인이다. 그것은 또한 예배, 기도, 감사, 찬양의 제사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전도와 선교는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15.16)  원수를 포함하여 우리 이웃에 대한 용서가 동시에 우리의 권리와 의무로 부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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