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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    강  Special Lectures

    문화와 목회 | 신앙성장론  |  현대 신학  |  한국 종교학 

지금 기독교는 2천년 전 탄생한 이후 최대의 전환점을 통과하고 있다.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유럽교회가 급격히 몰락하고 비유럽교회가 부상하여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전환기에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이민교회들이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였으나, 20세기 후반부터 비서구교회가 급격히 부상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활력적인 교회로 한국이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지로 출현하였다. 그러면, 왜 유럽교회가 몰락하였으며, 이와 같은 대전환기에서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한 한국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1. 유럽교회의 형성과 중심성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형성된 기독교는 세계선교의 대명령과 바울의 소명에 따라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확장되었는데, 마케도니아인의 비전에 따라 그 방향을 서방으로 잡았다. 소아시아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로 확장되었으며, 초기 3세기 동안의 대대적 핍박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 대제의 개종으로 당시의 세계제국이던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정치적 특권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여 유럽을 완전 복음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로마교회의 자만으로 교회의 하나됨이 파괴되고 여러 교회로 분열되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그 중에서 중동에 위치한 교회들은 이슬람의 부상과 정복으로 역사에서 거의 사라졌고,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만이 존속하였는데, 서방교회는 서유럽을 복음화하고 동방교회는 동유럽과 북유럽 슬라브족을 복음화하였다. 유럽의 완전 복음화에는 천년이 소요되었는데, 더 이상의 선교를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오로지 유럽에만 존재하였다. 따라서, 유럽은 기독교의 주변 없는 중심이 되었다.

 

2. 유럽교회의 몰락과 그 이유

그러나, 자체의 완전 복음화에 성공한 유럽교회는 제2천년대(millenium)로 접어들면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며, 제2천년대가 끝나는 20세기에는 기독교가 소수종교로 전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지금 유럽교회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속적 약화와 몰락의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이러한 유럽교회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천년동안에 걸친 장기적 세속화의 최종적 결과이다. 20세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기독교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인구의 과반수를 점하였으나, 20세기말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과반수 이하로 감소하였고 실제로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는 10퍼센트대로 급락하였다. 물론, 유럽에는 문화의 속성상 아직 기독교적 영향력이 상당히 유지되고 있으나, 문화의 세속화로 그것조차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서 유럽교회는 기독교의 중심성을 상실하였다.

그러면, 유럽교회의 몰락 원인과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교회의 분열과 대립이다. 항상 내분은 자별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초대교회는 계속되는 핍박가운데서도 지중해 연안 전역으로 확장되었으며, 다양한 전통과 신앙형태를 결과하였다. 이로 인해 교리적 혼선을 빚고 기독교의 통일성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나, 성령의 지도 아래서 각기 자기의 컨텍스트에 맞는 다양성이 창조적으로 발전하였고, 모든 교회는 평등성을 유지하면서 동등한 형제로서 우주적 교회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어 수도에 있는 로마교회가 강력해지면서 로마감독의 우위성(superiority of the Roman bishop)을 주장하였고, 이는 평화롭던 교회 사이에 긴장과 반목을 조장하였다. 물론, 이러한 로마교회의 요구는 전반적으로 거절되었고, 특히 콘스탄티노플교회의 강력한 반발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 하나됨을 유지해 오던 교회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양분되었다. 그리고 다른 중동과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잔류하다가 이슬람에게 정복되어 거의 멸절하고 극소수만이 명맥을 유지해 왔다. 교회의 분열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이외에 제3의 세속적 단결요인에 희생되기 때문에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어 몰락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자기들의 전통과 논리와 조직, 그리고 정치적,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각기 배타적으로 결속함으로서,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더 이질화되어 아직까지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교회를 민족과 국가로 제한하고 일치시키는 정치적 세속화이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동서로마제국의 자체 선교에는 적극적이어서 완전 선교하였으나, 거기서 중단하였다. 동방교회는 북방선교를 하여 슬라브족을 복음화하였으나, 동양선교는 하지 않았다. 교회의 지역적 분리는 자연히 지역적 제한성과 정체성을 결과하여 자기를 제한하는 문제를 야기하며, 자기 지역 외의 타국인이나 타민족에 대해서는 배척심과 이질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나, 기독교는 결코 특정한 민족이나 국가로 제한되거나 동일시될 수 없으며, 그럴 경우 그리스도의 선교 대명령에 불순종하고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다. 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을 전할 목적으로 형성된 이스라엘이 선민의식에 젖어 이방인 선교를 포기할 때 자체의 세속화를 결과하고 하나님에게 버림받게 되듯이, 유럽교회도 자체적으로 복음화 이후 더 이상의 외국 선교를 포기함으로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셋째는 식민주의(colonialism)의 죄악이다. 유럽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찍이 문명이 발달하여 큰 배와 강력한 무기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1492년 미대륙을 발견한 이후 전세계를 식민화하는 전면적 침략전쟁에 돌입하였다. 이러한 유럽인의 대침략은 인류사 최대의 죄악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것은 모든 기독교 국가가 모든 비기독교국가를 침략하여 약탈한 것이므로 변명될 수 없는 죄악이다. 선진 문명으로 복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땅끝까지 찾아갔다면 세계 복음화는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진전되고 유럽교회는 하나님의 계속적 축복을 받았을 것인데, 반대로 총과 대포를 가지고 멸시와 착취를 자행하였으니 얼마나 큰 죄악인가. 더욱이, 이러한 죄악적 침략행위에 대해 유럽의 어느 신학자, 어느 목사 하나 선지자적 저항을 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축복했던 것이다. 나의 지도교수는 네델란드가 식민지 섬을 하나 얻을 때마다 전국의 온 교회가 종을 치고 감사예배를 드렸다고 알려 주었다. 이것은 이미 유럽교회의 세속화가 심각하게 진전되어 물질주의, 민족주의, 집단적 이기주의, 역사적 낭만주의 등의 우상에게 그 영혼을 빼앗겼으며 그 자각 능력조차 상실했음을 명백히 자증한다. 혹자는 식민화가 기독교화이며 복음화라고 정당화하지만, 식민통치자들의 선교는 침략자들의 종교로서 많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였다. 로마 카톨릭 국가들은 피식민자의 전면적 영세를 통한 카톨릭화를 강력히 추진하여 형식상 신자화에 성공하였으나, 그것이 무시와 통치의 수단으로 성급히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토착신앙과 혼합되어 기형적 복음화를 결과하였다. 한편, 개신교 국가들은 현지인 선교에 게을리하고 자국 체류자를 중심으로 소극적 활동을 하는데 그쳐 반발심만 자극하였다. 유럽 국가와 교회가 손을 잡고 진행한 식민주의는 더 이상 유럽교회가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없이 세속화한 위험한 집단임을 자증하였다.

16세기에 일어난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은 이러한 부정적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였다. 서방교회의 내부개혁을 시도하다가 원치 않게 출교 당하여 불가피하게 분열하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모두 sola Scriptura를 외치면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수없이 분열된 것은 변명될 수 없다. 적은 차이도 관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전통과 교리와 민족적 정서와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분열된 것은 성경의 유일 규범을 거부한 파벌적 행위이며 성경과 정통을 가장한 독선주의에 불과하다. 또한 개신교회도 식민주의 지지와 축복에 있어서 로마 카톨릭교회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참다운 선교도 하지 않았다. 특히, 종교개혁자들도 로마 카톨릭교회의 스콜라주의(scholasticism)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성주의(intellectualism)와 교조주의(dogmatism)에 희생되어 사랑의 실천과 순종보다 지적 정통성에 치중하였다. 나아가, 17세기에는 개신교 스콜라주의가 전성기에 이르렀으며, 그 결과 교회와 신학이 분리되고 이단 정죄가 성행하였다. 이러한 지성주의는 결국 이성 중심의 자유주의를 발생시켜 성경적 신앙을 부정하는 자기파괴를 결과하였다. 또한 자유주의를 방비하기 위해 발생한 근본주의도 교조주의와 독선주의에 희생되어 수많은 분열과 자기중심주의를 결과하였다.

 

3. 비유럽교회의 부상

유럽교회가 서서히 몰락의 과정을 시작한 제2천년대의 중엽에 하나님은 비유럽교회를 일으키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유럽교회의 부정적 요인과 아이로니칼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악을 선으로 바꾸어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볼 수 있다.

첫째로, 1492년 컬럼버스의 미대륙 발견과 반동종교개혁으로 발생한 로마 카톨릭교회의 선교운동이다. 로마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아메리카 발견과 점령에 동행한 로마 카톨릭 사제들이 강제적이면서도 급격한 카톨릭화를 실현하였다. 한편, 종교개혁으로 충격을 받은 로마 카톨릭교회는 반동종교개혁(Counter-Reformation)을 일으켰는데, 특히 동양선교를 추진하여 마테오 리치 등이 중국과 일본에 선교하였다. 그 결과, 한국에도 로마 카톨릭교회가 설립되기에 이르렀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필리핀도 카톨릭화되었다. 이로서, 로마 카톨릭교회의 대다수가 비유럽화되는 한편, 유럽 카톨릭교회는 점차 약화되었다.

둘째로, 유럽 이민교회의 발생이다. 유럽교회의 분열로 인한 소수파 핍박과 경제적 곤경은 신대륙으로의 이주를 결과하였고, 그로 인해 미국, 캐나다, 호주 등에 보다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민교회를 형성하였다. 이들은 유럽에서 억압받고 소외된 비주류교회들이었으나, 이제 세속화되는 유럽을 떠나 미래교회의 새로운 희망이 된 것이다. 이들이 건설한 국가들은 국교제도를 폐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였으나, 기독교정신 위에 국가를 건설하였다. 유럽 이민교회는 특히 영국에서 핍박을 받은 장로교회와 침례교회, 그리고 회중교회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후에 감리교회가 가세하였다. 미국교회는 성경 해석의 차이로 남북전쟁을 초래하고 교단들이 남북으로 분리되었으나, 20세기 후반 포용적인 복음주의 운동의 결과로 다시 연합되었다.

셋째로, 경건주의(pietism)의 발생과 선교운동이다. 개신교회가 스콜라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지자, 이에 대한 각성운동으로 경건주의가 발생하여 경건과 실천을 강조하였고, 여기에서 현대 선교운동의 효시가 된 진젤도르프의 모라비안 선교운동과 웨슬리의 실천적인 감리교회가 발생하였다. 감리교회는 전도와 구제와 부흥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미국에 강력한 각성운동과 부흥운동을 전개하고, 급기야 선교운동을 일으켜 한국이 복음화되는 등 초교파적인 세계선교운동을 촉발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식민주의가 종식되면서 제3세계가 독립하여 세계 무대에 등장하였고, 선교운동과 부흥운동으로 새로운 비유럽교회들이 전세계적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한편, 유럽은 세속화로 인한 기독교의 약화로 종교적 기반을 상실하여 윤리와 사회가 붕괴되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으며, 이에 식민지로부터 대거 노동력이 유입되면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다리는 결국 쌍방 통행하게 되며, 지금 식민지로부터 역정복(counter-conquest)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전에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비유럽교회를 일으켜 대안을 마련하고 전환기를 맞게 하신 것으로 생각된다.

 

4. 한인교회의 위치와 사명

기독교의 역사적 대전환기에 한인교회는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인교회는 비서구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로 부상하였으며, 선교사 파송 제2위국, 신학생 제2위국으로서,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비유럽교회가 된 것이다. 따라서 제3천년대가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한인교회가 점하는 위치는 특별한 구속사적 사명을 암시한다. 그 사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첫째로, 본국에 있는 한국교회는 자체 붕괴를 초래하는 세속화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제3세계, 특히 아시아 복음화에 앞장서야 한다. 현재 비유럽교회가 가진 중대한 위험은 혼합주의로서, 토착신앙과 자연종교, 미신과 신비주의, 그리고 기복신앙을 극복하는 것이며, 또한 서구교회로부터 물려받은 분리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수많은 배타적 교파들은 서구교회 세속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이를 거부하는 창조적 주체성이 요청된다. 그리고, 오로지 성경의 복음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여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며, 인도는 21세기 후반에 최대 인구를 가진 나라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등불이 되어야 할 한국교회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을 복음화하지 못한다면, 기독교의 미래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세계 무대에서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열정적인 한국교회가 아시아 복음화를 주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교회가 이를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아시아가 부강해지고 교만해진 다음에는 서구에서 보는 대로 복음화가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1세기가 세계 복음화를 가능하게 하는 아시아 복음화의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전세계적으로 형성된 한인 이민교회는 선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현지선교에 진력해야 한다. 한국인은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중심으로 이민사회를 형성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 미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에는 무려 5천여개의 이민교회가 있다. 과연 한국인을 전 세계로 이민시킨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는 무엇일까? 먼저 한인 이민들의 복음화와 제자화가 일차적 사명이지만, 그것이 모두라면 반드시 이민이라는 어려운 작업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한인교회는 한인만을 위한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현지교회와 협력하면서 현지인 복음화 혹은 재복음화를 성취해야 한다. 또한, 한국인 신학교를 중심으로 단결하면서 이민신학을 확립하고 선교적 정체성을 2세들에게 심어줌으로서 장기적 존속과 활력적 기능이 가능하다. 그것은 민족주의적 정체성과 다르며, 단지 공동체의 존속과 안일이 아니라 선교적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것이다. 한국인이 어디로 가든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것은 이러한 필요성과 구속사적 섭리를 입증한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와 경륜으로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며, 시기와 상황에 따라 그리고 순종 여부에 따라 특정한 민족과 그룹과 운동을 사용하신다. 지금은 유럽 중심에서 비유럽 중심으로 대전환을 이루면서 미국과 한국을 중심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민족을 영원히 사용하거나 영원히 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민족을 차별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헌신되어 성령의 인도에 순종할 때 오래 동안 그리고 크게 사용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유럽교회와 동일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상 파울로에서 목회자특강, 2002.7.2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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