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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갱신과 연합

 한국교회 진단  |  세속화와 성화  |  교단과 교파  |  신조  |  교회의 연합과 일치  

장로교회

1901년 장로회 공의회가 결성되었고 1907년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로 출발하였고 1912년에 총회가 창설되었다. 1938년 신사참배를 가결함으로서 신망을 상실하였으나 해방시까지는 선교사들의 주도 하에 하나의 장로교회가 유지되었다.

(1) 신사참배로 인한 분열: 1945년 해방되자 고려파와 재건파가 신사참배한 교단을 거부하여 분열되었다. 고신측은 1951년 교단을 형성하였고 1962년 합동측과 교단합동을 결의하였으나 한상동목사를 중심으로 잔류하였고, 1975년 신학교문제를 기화로 하여 석원태목사를 중심으로 고려파가 분열하였다.

(2) 신학적 갈등으로 인한 분열: 일재시 평양신학교에서 야기되었던 박형룡과 김재준의 신학적 갈등이 1937년 평신의 폐교와 1940년 조선신학교의 개교로 연결되었고, 1952년 김재준교수를 제명함으로서 이에 반발한 조신파가 탈퇴하여 1953년 기독교장로회를 조직하였다.

(3) 연합운동으로 인한 분열: 2차대전 후 세계 개신교의 연합체로서 세계교회협의회가 결성되자 한국 장로교회는 1949년 가입을 결정하였으나, 반대파의 저항으로 급기야 1959년 통합과 합동으로 분리되었다. 이때 여러 소교단들이 파생되었고, 이를 기화로 극보수단체인 ICCC가 개입하여 1960년 대신의 김치선을 중심으로 성경장로회를 조직하였는데, 이중 다수가 1969년 ICCC를 탈퇴하고 대신교단으로 독립하였다.

(4) 교권정치로 인한 분열: 합동측 이영수목사의 교권정치에 반발하여 1979년 정규오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 박윤선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합신, 그리고 대신측에서 분리하여 1976년 장종현목사가 설립한 신학교와 합세한 합동정통 등 수많은 분파가 발생하였다.

 

감리교회

1914년 한국선교연회, 1918년에 한국연회가 조직되었으나 미국의 감리교회가 둘로 분열되어 연합총회를 구성하지 못하다가 1930년 조선감리교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이후 신사참배문제로 재건파와 부흥파의 내분이 49년 해결되었다. 1961년 WCC문제로 소수가 예감으로 분리되었고, 85년 교단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혁신측이 분리하였으나, 감리교회는 대다수가 한 교단으로 유지되어오고 있다.

 

성결교회

일본에 와 있던 동양선교회가 도입되어 1921년 성결교회가 시작되었으며 1933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교단이 창립되었다. 1943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가 해방후 1946년 다시 회복되었다. WCC문제로 인해 반대파가 ICCC에 가입하며 1961년 예수교성결교회를 조직하였으며, 다른 비주류와 합동하면서 ICCC에서 탈퇴하였다.

 

오순절교회

1950년 대한기독교오순절교회가, 1953년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가 창립되었으며, 교단을 탈퇴한 조용기목사를 중심으로 1985년 예수교대한 하나님의 성회가 분리되었다.

 

침례교회

1906년 대화회 방식으로 감독체제의 대한기독교회가 출범하였으며 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해방후 1946년 교단을 재건하고 회중교회체제를 도입하였다. 1949년 교단명을 기독교침례회로 변경하였다. 1959년 선교부와의 교권갈등으로 대전측과 서울측이 분리되었다.

 

기타 교단

구세군은 1908년에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1973년부터 독립하였다. 성공회는 1890년부터 선교가 시작되었고, 1965년에 독립하였다. 루터교회는 1958년 선교가 시작되었고 1971년 교단이 창립되었다. 그리고, 나사렛성결교회는 1955년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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