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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갱신과 연합

한국교회 진단 | 세속화와 성화 | 교단과 교파 | 신조 | 교회의 연합과 일치 | 

유례없는 급성장으로 세계교회의 칭찬을 받았던 한국교회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장중지라는 위기상황에 직면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새해를 맞아 한목협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88%가 교회정체의 가장 큰 원인이 교회분열임을 인식하는 공감대가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이 주도하던 선교 반세기동안 교파별로 하나의 교회를 유지해 왔으나, 민족의 해방과 함께 정치적 분단을 본받기라도 하듯이 교회에도 분단이 일어나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구도가 출현하여 서로를 정죄하고 비난하였고, 이렇게 나누어진 두 그룹에서는 보다 선명하고 강력한 보수성과 진보성이 환영을 받으면서 서로 극단으로 치닫는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이 두 진영을 화해시키고 구심화하려는 중도적 입장은 양측 모두에게 소외되어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성경적 가르침을 거스리며 교회가 하나라는 정통적 교회관에도 배치된다. 이단은 물론 제외되어야 하지만, 천상에서 만나 교제할 형제들을 지상에서 정죄하고 교제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내세관이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탄적 구조는 교회의 하나됨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적 남북분단에 대해서는 통일을 외치지만 교회 자체는 분단을 진지하게 해결하려 하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세속사회에 보여주고 있다. 80년대말 사회적 비난과 정부의 요구에 이끌려 연합단체들이 출현하였으나, 교권의 장악과 분배에만 관심을 가질 뿐 진실하고 성실한 하나됨을 향해 노력하지 않고 실제적으로는 분리를 정당하게 생각하면서 입술로는 연합을 기도하는 외식을 연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보혁의 양극화 구조는 한국교회 안에 경쟁과 불신, 비난과 자만을 일으켜 하나되도록 권고하는 성령의 인도를 거부함으로서 인간들의 종교집단으로 전락시키며 교회 밖으로 분출해야 될 엄청난 영적 에너지를 안에서 낭비할뿐 아니라 사회의 지탄대상이 됨으로서 복음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며 하나되지 못함으로서 대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켜 세상으로부터 무시와 소외를 당하게 된다. 복음적인 교회들은 독선적인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양극단을 배제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대동단결하여 대화합을 이루어 하나된 모습으로 주님을 맞아야 할 것이다.

 

교단주의

한국교회에는 외국교회, 특히 미국교회 분파들의 어리석은 하수인들이 교회를 분열시켜 수많은 교단을 만들었으며, 특정한 인물이나 지역, 또는 신학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분리주의적 교단들이 많이 발생하였다.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됨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실로 교회분열에는 아무 정당성도 없다. 따라서 순간적인 오해나 분쟁으로 분리되었다 할지라도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분리사유를 해소함으로서 빨리 회개하는 마음으로 재결합되어야 한다. 특히 군소교단들은 불필요한 수고와 저질화를 중단하고 겸손히 통합해야 하며, 대교단들은 교단의 담을 높이 쌓고 가입을 거부하거나 어렵게 하지 말고 넓은 마음으로 절차를 간소화하여 복귀나 통합을 격려함으로서 교단분열을 영속화하지 말고 하나됨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교단의 수는 적을수록 좋다. 교단은 임시적인 것이지 영원하지 않다. 교회의 하나됨을 희생하면서 교단의 영광을 도모하는 구조적 죄악은 소수의 교권정치가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며 거기에 아부하는 일부 어용신학자들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러한 분리주의자들을 용인하지 말고 교단주의라는 파당적 구조를 과감히 청산하여야 한다.

 

개교회주의

한국교회가 급성장하는 동안 이루어진 교회들간의 무한경쟁은 과거 지역공동체 중심의 안정적 구조를 깨고 약육강식의 패권주의가 새로운 구조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실로 개교회주의는 현대의 개인주의 풍조가 경쟁적인 자유경제 체제 아래서 교회에 정착된 비성경적이고 반교회론적 구조임에 틀림없다. 그리스도의 우주적 교회보다 자기교회에 더 강력한 소속감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하는 허위의식과 다른 교회들을 백안시하는 자기중심성은 분명히 기독교신앙에 역행하는 현대적 나르시즘이다. 개교회주의는 자기 교회만의 독자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며, 허영심과 경쟁심을 자극한다. 또한 치열한 교회간의 경쟁은 크기에 따라서 급수가 결정되는 세태를 연출하였고, 그 결과 큰 교회의 목회자나 교인들은 우월감에 넘치는 한편, 작은 교회의 목회자나 교인들은 열등감에 빠진다. 교회의 평가는 교인의 숫자와 재정적 능력에 의하여 판정되며, 목회자의 대우는 그에 비례한다. 교회의 질과 양은 실제에 있어서 구별되지 않는다. 이단이라고 정죄했다가도 대형교회가 되면 슬그머니 그 교회를 부러워하고 부담금을 많이 내면 연합단체도 환영하고 우대한다. 소수의 대형교회와 목회자들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형교회와 헌신된 목회자들을 희생시켜 우월감과 특권을 누리며 산다. 마치 세속사회의 부자와 가난한 자, 출세한 자와 힘없는 서민, 대기업과 영세기업같은 관계와 평가가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교회의 하나됨과 지체됨을 인식하지 못하는 반교회론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교회는 형제이며, 더욱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더 존경받아야 하는데도, 교회들간에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기준을 가지고 차별하고 우열의식을 가지는 현실은 분명히 타파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대형교회들은 위성중계장치를 설치하여 주변도시를 잠식하고 문어발식으로 지교회를 확장해 나가는가 하면, 대교회 교인이라는 긍지에 빠져있던 교인들은 멀리 다른 지역이나, 심지어 외국에 가도 자기들끼리 모여 같은 이름의 지점교회들을 세운다. 모든 교회는 한 몸으로서 이러한 세속적 우열의식을 극복하고 일체감을 회복하여야 하며, 재정적으로도 헌금이 그 개교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인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인정하고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돕는다는 생각이 아니라 한 몸이 섭취한 영양분을 모든 지체가 골고루 분배하듯이 나누는 마음이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21세기에 부상할 아시아의 선교본부로서, 그리고 7천만 동포의 복음화를 완성하며, 나아가 삶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임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내부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한, 교회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미주판, 2002년 1월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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