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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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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말에 종말론의 혼란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영향이 있다. 1990년대는 20세기의 마지막 decade일뿐 아니라, AD 두 번째 millenium의 마지막 decade로서 종말론 신앙의 revival이 예상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이 calendar year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차매”(갈 4.4) 성취되었다. 따라서, 히브리적 Gematria가 아니라(secular counting),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예상이 옳은 것이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은 1일=천년의 척도가 아니라 큰 차이의 존재를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예상은 역사형, 과학적 미래학, 점성술이나 역학과 같은 종교형, 정치 혹은 경제형, 문학적 형태 등이 있다.

 

지금 이러한 미래학은 미래 종말론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나 주기도문의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를 보면, 성취된 종말론의 개념에 도달하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의 나라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사랑을 실천하고 피조물이 구속된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도래 가르침, 지상 명령, 교회의 설립, 지상에서의 영적 전쟁(하나님의 군사). 골, 둘 사이의 긴장 관계와 이의 연결이라는 두 차원의 synthesis가 요구된다. 여기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자유주의는 현세적 왕국, 유토피아 사상, 세속화 신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재림주의, 말세주의, 미래주의, 고립주의, 사회적 관심 부재, 이원론으로 치우친다. God so loved the kosmos. 이 둘의 연관성, 선교와 재림의 관계 이해는 좋은 출발점이다. 즉, 우리의 노력이 재림의 한 측면이다.

 

또한, 개인적 종말론과 우주적 종말론의 구분이 있다. 이 둘 사이에 긴장이 존재한다. 이미 많은 인류는 개인적 종말에 진입하여 중간상태에 있다. 마 24장, 바울 서신 등에는 재림의 징조가 재앙과 비극적인 참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도적같이, 예상치 못한 때에, 평안하다 할 때에, 따라서 not so simple! 그러므로, complexity of signs의 문제가 있다.

 

Adventism과 prophetism-Pentecostalism의 결합, 성경의 symbolism 무시, 너무 문자적으로 해석한 문제점, 세대주의 결과. 암 3.6에 근거하여 예언. 정경적 계시의 권위와 개인적 예언의 문제. 유사성의 confusion, not essential 결론! Additional, 부가적 계시의 문제, 성경의 완전성과 모순, 권위의 문제. 다니엘서, 계시록의 예언 해석 문제, 벧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교회의 공적 해석) 세대주의 종말론은 휴거론, EC, computer, 시온니즘에 근거.

 

종말론의 역사

 

(1) 초대

2세기 후반에 발생한 Montanism은 apocalyptic movement로서, Pepuza 근방에 재림한다고 예언하여 집단을 형성하고 금욕을 요구하였으나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2) 중세와 종교개혁

Justin이 중간상태의 교리를 개발하고, 즉시 천국에 간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힐라리, 암브로스, 시릴, 그리고 심지어 어거스틴도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하데스설을 주장하였으며, 이는 자연히 정화되는 장소로서의 연옥 개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순교자는 예외적으로 바로 천국에 간다고 주장하였다. purgatory 교리는 Gregory the Great에 의해 정립되었다. 중세적 사고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limbus patrum, limbus infantum, 그리고 purgatory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연옥이 비성경적이므로 격렬히 반대하였다. 중세 스콜라주의는 하늘이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아래는 visible heaven, 즉 firmament가 있고, 그 위에는 spiritual heaven과 intellectual heaven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곳이 천국이다. 재침례파는 restorationism을, 소시니안은 악한 자의 annihilation을 믿었다.

 

(3) 천년왕국 이론

계시록 20.1-6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millenialism, chiliasm을 주장하였다. 부활을 1차와 2차로 구분하고, 그 중간에 천년 왕국을 위치하였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allegoricalism과 어거스틴의 왕국과 교회 일치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었으나, 중세에는 천년왕국설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종교개혁자들도 이를 유대적이라 하여 정죄하였으나, 17세기에 루터파와 개혁파에서 후천년설이 개발되어 영적인 천년왕국을 인정하였다. 18-19세기에는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전천년설이 크게 수용되었고, 많은 재림 예측이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9세기에는 이성주의와 진화론의 영향으로 새로운 형태의 후천년설이 자유주의에서 발생하였다. 라우쉔부쉬도 유사하다. 그러나 Louis Berkhof는 “신앙 고백이 없으므로 dogma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후천년설                      현세           천년왕국(황금기)    x(재림)      최후 상태

 

역사적 전천년설         현세           x(재림)          천년왕국          최후 상태

 

세대주의                      현세           x(재림A)  7년 대환란  x(재림B)  천년왕국  최후 상태

 

무천년                          JX               현세                   x(재림)      최후 상태

                           -------------------------천년왕국-----------------------------------------

 

(4) 자유주의의 modernization

Albrecht Ritschl(1822-89)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랑에 의해 영감된 행동을 통한 인류의 도덕적 기관으로 이루어지는 윤리적 왕국으로 그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Ernst Troeltsch, Adolf von Harnack은 하나님 나라의 현존이 kernel이며 미래의 극적 소망은 예수 메시지의 퇴보일 뿐이라고 이해하였다.

 

(5) demodernization

Johannes Weiss(1863-1914, 리출의 사위): 리출의 사고는 비성경적이며, 19세기 진화론과 비종말론적 사고 경향에 근거하였다고 비판,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의 실체라고 주장하였다. Albert Schweitzer(1875-1966)의 consistent eschatology. 예수의 종말론은 설교뿐 아니라 온 생애를 주관하였으나 착각과 환상임을 깨닫고 지체와 연기 주장의 위대한 전환점. 그러나 환멸 느끼고 죽어.

 

(6) realized eschatology

C. H. Dodd(1884-1973): 왕국은 현재적이며, 미래 종말론은 유대 묵시문학적 전통의 반영(잔영)으로 기독교적이 아니다. 재림도 이와 같이 이해하여 부정.

 

(7) balanced eschatology

Gerhaardus Vos(1862-1949): 성경은 두 시대 구분. eschaton은 두 시대 두 체계가 겹친 공존의 특별한 시대. 종말론이 구원론 형성하며, 그 반대가 아니다.

Oscar Cullmann(구원사 학파): 예수 그리스도의 mid point. D day와 V day. 이미와 아직의 긴장, 시간관(그리스도와 시간)

 

(8) 실존주의

Karl Barth의 수직적 종말론 vertical eschatology, 무시간적 종말론 timeless eschatology, 영원과 시간 주장.

Rudolf Bultmann의 실존주의적 종말론 existentialist eschatology. 비신화화, 의미와 결단 중심. 미래에의 개방성

Jurgen Moltmann의 미래주의적 종말론 futurist eschatology. Ernst Bloch의 희망의 원리: 인간은 미레를 향한 길 위에 서 있는 존재. 종말의 현재적 의미, 삶 전체. 약속의 언어. open-endedness, hope against despair. 믿음과 소망, priority와 primacy. 우주적 차원의 종말론, 미래적 종말론.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시는가?

 

1

예수님의 재림은 의심할 수 없는 기독교신앙의 본질적 요소로서, 종말론의 구심점을 이루는 불가결의 요건이다.  혹자는 재림이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음으로 부정하려고도 하나, 이는 이미 초대교회에도 있었음을 벧후 3.4이 보여준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와 같이 그냥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심지어 불신자나 과학자들도 지구의 종말을 말한다.  예수님은 자주 재림을 강조하셨으며, 요 14.1-3에서는 처소를 예비하고 돌아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재림에 관한 가르침은 주로 마24, 막 13, 눅21, 요16, 살전 5, 살후2, 벧후3장에 나타나 있다.

 

2

재림의 시기를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암 3.7과 같은 성경의 일반적 원리에 근거하여 사전계시가 주어질 것이라고 보고 재림일자가 계시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라 오도된다.  그러나, 성경에나 혹은 과학, 법학등에서도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언급이 있으면 포괄적인 원리나 그에 의한 추측은 압제된다.  즉, 성경은 구체적으로 분명히 재림의 시기는 오로지 성부만이 아시고, 그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밝히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오해란 있을 수 없다.  종말에는 많은 거짓선지자가, 특히 예수님의 임재와 관련하여 나타난다는 사실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살후 2.2은 그러한 거짓예언에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 말라”고 권고한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 이미 계시된 예언을 연구하면 거기 재림시기가 감추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주로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과 같은 묵시서에 의존하는데, 이는 묵시서의 본질과 목적을 오해하는 것이며, 특별히 전술한대로 그와 같이 불분명한 글들은 마24장과 같이 보다 분명하고 단순한 가르침의 윤곽안에서 해석되어 그를 풍요하게 하는데 이용되어야 한다는 해석의 원칙을 모르는 것이다.  벧후 1.19-21과 3.16의 예언해석에 대한 경고와 “더 확실한 예언”에 대한 가르침을 참조하라.  성경은 우리가 말세에 살고 있다고 가르치고, 재림이 임박함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생각지 않은 때에”(마 24.36),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24.50), 또는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살전 5.3) 도적같이 오신다고 가르치는데, 이는 항상 깨어 경성하며 근신하는 생활로 주님의 재림을 예비해야함을 가르친다.  그런 사람에게는 재림이 도적같이 임할 수 없다(살전 5.4).  예수님은 “조금있으면”(요 16.16)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나, 이러한 임박설이 이루어 지지 않자 “왜 더딘가?”의 질문이 대두되었고, 실로 이는 하나의 신비에 속한다.  이에 대해 벧후 3장은 하나님의 시간감각이 우리와 다름과 모두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이는 재림시기의 결정이 성부에게 있는데, 그 시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에 의해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3.11)라는 것이다.

 

3

깨어 사는 사람은 시대를 읽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는 무화과나무의 교훈(24.32)과 천기(16.2-3)의 예에서 나타난다.  이 세계의 종말을 가져올 재림에 징조가 없을 리 만부하다.  예수님은 마24장에서 징조를 설명해 주셨는데, 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다.

(1) 전쟁, 천재지변, 환난, 미혹, 배교, 선교(24.4-28)가 재림의 징조가 시작되었음을 가리키며, 이러한 상반적인 활동들이 진행된다.  특히, 이스라엘의 포위와 멸망, 긴 유배와 회복이 경과해야 하며(눅 21.20-24), 스스로 하나님을 자처하며 숭배되는 “불법의 사람”이 출현 활동함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살후 2).  또한, 인간성의 상실현상이 나타난다(딤후 3).  이 기간이 성도들에게는 환난의 날들이 된다.

(2) “그날 환난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되는데, 이는 천체의 변화, 특히 해와 달이 빛을 잃는 흑암이 선행한다.  이는 모든 인류를 공포로 몰아 넣지만, 성도들은 고개를 들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고로, 징조란 그렇게 단계별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며, 단 기간도 아니다.  그 기간은 오로지 성부의 주권에 달려 있다.  만인의 구원과 환난으로부터 성도의 보호라는 두 요인 사이에서 그 날은 결정될 것이다.

 

재림의 징조

 

재림의 징조 가운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라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며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지진은 20세기에 60여회 발생하여 2백여만명이 죽었다. 따라서, 여기 저기에 지진에 대한 공포가 있다.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는, 땅을 뒤흔드는 공포를 유발한다. 고대로부터 하늘과 땅이 꺼지는 공포가 있었다. 지하의 용암은 계속 하나님의 창조능력을 표현하며, 구약에서는 일종의 징벌로서, 최종적 징벌의 foretaste로 묘사된다. 1906년부터 1985년까지 주요한 지진만 55회 발생하여 173만 3619명이 죽었다.

 

기근은 어떠한가? 1876년 인도에서 기근으로 550만명이 죽었고, 중국에서는 100-1300만명이 죽었다. 지난 10년동안 기근으로 최소한 500만명이 죽었으며, 지금도 4억 6천만명이 기근과 죽음의 위협 아래 있다.

 

전쟁은 어떠한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약 천만명이 죽었고, 2차대전에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국전쟁에서는 350만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유대인 학살로 6백만이 죽었다. 스탈린 등의 공산혁명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란-이락, 중동전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런 전쟁으로 약 천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하였다.

 

벧후 3장에서는 말세의 부인, 딤후 3장에서는 말세의 정신 상태를 묘사한다. 살후 2.9과 계 13.13-14는 사탄적 징조를 예고한다. 재림에 대한 가르침에는 duality가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징조들을 말하고 추측이 가능함을 가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림시기의 추정을 금지한다. 그 날은 도적같이 홀연히(막 13.32-22, 마 24.36-42) 올 것임으로 항상 예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그 날은 생각지 않은 때에(마 24.44),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리고 평안하다 할 때에 온다. 따라서 항상 경성(watchfulness)이 요구된다.

 

재림의 징조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Hoekema 137)

(1) signs evidencing the grace of God

a. 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 to all nations, 마 28.19, 막 24.14, 요엘 2.28, 사 52.10 예언

1743년 3월 23일 메시아 런던 초연시 할렐루야 합창에 왕을 포함 모두 기립하여 전통이 됨: King of kings, Lord of lords!

b. The salvation of the fullness of Israel, 마 10.23, 롬 11.25-26

1972년 UCLA campus Rabbi 매년 6-7천명 젊은이 유대교로 개종시켜 타임지에 보도

(2) signs indicating opposition to God

a. Tribulation, 마 24.9-10, 대환난 마 24.21-22 재림 직전, 24.29-30

b. Apostasy, 마 24.10-12, 24.24

c. Antichrist, 마 24.23-24, 딤전 4.1, 딤후 3.1-5 예언, 살후 2.4-9 lawlessness, final  and climactic, 요일 4.2-3 육체적 성육신 부인, 요일 2.22 부자관계 부인, 요일 2.18 예수와 그리스도의 분리

(3) signs indicating divine judgment

a. Wars 난리 소문, 마 24.6-8, 막 13.7-8, 눅 21.9-aa

b. Earthquakes 지진, 둥의 준비, but not yet, beginning

c. Famines 기근

 

성경의 종말 구절들

 

공관복음에는 (1)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절들, 마 13, 막 4, 눅 8장, (2)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구절들, 교회의 설림과 성령의 오심, 부활과 최후의 심판 등, 그리고 (3) 재림 구절들리 맀는데, 이 모두가 본질상 종말론적이다.

 

마 24장

질문: 어느 때에 이런 일(성전의 완전한 파괴)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3절

 

답:

4-5 (1) 그리스도 미혹 (주의하라)

6-8 (2) 난리와 난리 소문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니니라

a.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남

b. 처처에 기근과 지진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

9-12 (3) 그 때에 미움, 배신, 미혹,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져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3)

14 (4)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5-22 (5) 멸망의 가증한 것, 그 때에 유대에 사건, 산으로 도망하라 escape, 큰 환난, 택자 위해 그 날을 감하리라

23-28 (6)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택자라도 미혹),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인자의 재림은 장소 초월 27-28

29 (7)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8) 그 때에, 인자가 구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

참고.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32-33)

이 예언의 확실성, 성취 34-35

시간은 하나님만 아신다 36-51, 생각지 않은 때에, 도적 같이, 고로 설실하게 살면서 깨어 있으라

25장 비유 (열 처녀, 달란트, 양편 비유)

 

막 13장

질문: 어느 때에 이런 일(성전의 완전 파괴)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절

답: 5-6 (1) 그리스도 미혹 (주의하라)

7-8 (2) 난리와 난리 소문 (마 24.6-8과 정확히 동일)

9-13 (3) 핍박, 배신, 미움. 너희가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함이니라. 또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걱정하지 말라,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시리라: 마 24 (3)과 (4)의 종합

14-20 (4) 멸망의 가증한 것, 유대 산으로 도망하라

21-23 (5)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이적과 기사 행하여 미혹), 장소로 유혹, 믿지 말라

24-25 (6) 그 때에, 그 환난 후에, 천체의 변화

26-27 (7) 그 때에, 재림

참고: 무화과 나무의 비유 28-29, 성취의 확실성 30-31, 시간 모름 32-37, 깨어 있으라, 홀연히

 

눅 17장

질문(바리새인):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20a

답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0b

(또 제자들에게) 장소 초월성, 20-37

 

눅 21장

질문: 어느 때에 이런 일(성전의 완전 파괴)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7

답변: 8 (1) 그리스도 미혹 (주의하라)

9-11a (2) 난리와 난리의 소문 (지진, 기근, 온역)

12-19 (3) 이 모든 일(11b) 전에, 핍박, 배신, 미움 (무엇 말할지 걱정 마라), 그러나 너희는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 (다니엘 참고), 인내로 영혼 구원

11b (4)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

20-24 (5) 예루살렘, 유대에 형벌의 날, 디아스포라, 이방인의 때가 차기 까지

25-26 (6) 일월성신의 징조,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혼란, 곤고, 하늘의 권능 동요, 사람들 기절

27 (7) 그 때에, 재림

28 결론적 언급: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참고: 무화과 나무의 비유 29-31, 성취의 확실성 32-33, 깨어있으라, 조심, 뜻밖에, 덫과 같이 34-36

 

행 1.6-11

질문: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6

답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 아니요,

(1)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증인

(2) 승천, 흰 옷 입은 두 사람: 하늘로 가심을 본 그 대로 오시리라 11

 

롬 11장

질문: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1

답변: 그럴 수 없느니라.

6 은혜 교리에 호소하여 논박

11 넘어짐의 이유: 저희가 넘어지기 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이용)

돌 감람나무와 참 감람나무, 자긍하지 말라(18), 원 가지(21),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 하라(20b), 인자의 교리(22)

25 비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25b-26a

원리: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29 immutability; 33-34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 찬양!

 

롬 8, 고후 4.16-18

바울의 종말론, 고난과 영광의 함수 관계, 환난 인내로 감수, 수고가 헛되지 아니함.

 

고전 15장

육체적 부활

51 비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죽은 자들... 우리도, 51b-52

 

고후 5장

부활과 집 바꿈, 몸에 거할 때는 주와 따로 (6과 8절은 반대), 최후의 심판 우리 모두 받아(10)

 

고후 11장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사탄의 일군이 가장 출현

바울의 고난 23-28

12 셋째 하늘, 낙원 경험 τριτου ουρανου 신 10.14, τον παραδεισον 계 2.7, 눅 23.43, ὰδης 눅 16.23

 

살전 1.10의 재림 신앙 칭찬

4.12-18 부활에 대하여, 재림에서 (1)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4 데리고 오시리라), (2)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3)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5.1-11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 것이 없음, 밤에 도적 같이(주지의 사실),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그 때에, 홀연히, 깨어 근신하라!

 

살후 2장

1-2 (1)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것, 1-2

3-4 (2) 먼저 a) 배도, b) 불법의 사람=멸망의 아들 출현 후에, not before, 자칭 하나님이라 자존, 사탄의 역사,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9-10

 

딤후 2.18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후메네오와 빌레도), 신앙 파괴

3.1- 말세(고통하는 때)의 인간 상황, 14-17 너희는 성경 신앙

 

히 12.22 하늘의 예루살렘 18-29

 

베드로: 고난의 신학

 

벧전 3.19-20 노아 시대인: 옥에 있는 영들에게 그리스도 전파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하라.

 

벧후 1장

재림에 대한 예언 해석 조심할 것 (3.15-16 바울 서신도)

2장 거짓 선지자, 선생, 이단의 발생 immorality and corruption

3장 재림 부인 3-7, 곧 오시리라. 더딘 이유, 새 하늘과 새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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