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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4)

​지성을 넘어서

근대는 대학의 발생과 함께 태동하였다. 중세 후기에 발생한 대학은 전통적인 사제간의 인격적 교육방식을 뒤로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근거하여     지성적 교육을 추구하며 새로운 지식 공동체를 창조하였다. 그 결과, 대학은 신앙을 중심으로 한 중세를 폐기하고 합리성을 숭배하는 근대를 열게 된 것이다.    지성인의 배출을 이념으로 하는 대학의 지성주의(intellectualism)는 과학의 발달을 가져왔으나, 비판과 논쟁을 훈련하여 냉소적이고 부정적이며 교만한 지성인들을 양산하였다. 따라서 대학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합리적 비판의 요람이 되었고, 반 기독교적 계몽주의에 휩쓸리면서 불가지론과 이신론으로부터 시작하여 무신론과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저항적이고 세속적인 불신운동의 상아탑이 되어 유럽 기독교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대학의 세속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의 보수교회들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운동을 일으켜 미국을 지키려 하였고, 이는 자연히 대학에 대한 부정적 정서와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결과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신앙인들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지 않고 수많은 성경학교를 설립하여 지성인보다는 신앙인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 오늘날 확산되고 있는 홈 스쿨링도 지식 중심의 학교제도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다. 대학의 위기를 외치는 지도자들이 건전한 인간을 양성하기보다 기능인만을 배출하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실로 이러한 문제는 대학이라는 근대적 이념 속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근본적 변화란 실현되기 어렵다.

포스트모던이즘, 즉 탈 근대화운동은 이성을 숭배한 모던이즘을 불신하고 이성의 해체를 주장하며 지성주의에 제동을 걸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일어난 포스트모던이즘 운동은 대학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고 지적 자만의 상징이었던 소르본느를 해체하고 파리의 모든 대학을 통폐합하여 평준화한 68운동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대륙의 대학들에서는 성대한 졸업식과 화려한 가운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대학의 실용화를 추구하였다. 신앙을 통한 구원을 냉소하며 합리성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어 주리라던 근대의 환상은 이성이 산출한 수많은 경쟁적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유럽의 극한적 상호파괴를 결과하였고, 2차에 거친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환멸을 안겨주면서 합리성의 신앙과 지성주의에 대한 반감이 폭발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독교 사회였던 유럽에서 이러한 지성주의적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바로 교회, 특히 개신교회였다. 왜냐하면 근대를 본격적으로 출범시킨 사건이 바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중세를 대표하는 로마 카톨릭교회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종교개혁은 무비판적 전통주의에 반대하여 성경적 논리를 중시하였다. 그 결과, 비록 솔라 스크립튜라(sola Scriptura)를 외치며 교회의 하나됨이 이룩되는 듯 하였으나, 논리와 논쟁에 대한 지나친 중시로 인해 교리 중심의 정통주의(Orthodoxy) 시대로 진입하면서 개신교회는 근대의 지성주의에 휘말리게 되고 교리 투쟁에 희생되어 끝없는 교파 분열과 상호 정죄로 심각한 내분에 시달리게 되었다. 예리한 신학적 논의와 논쟁에도 불구하고 분열하지 않았던 신약교회나 초대교회와 달리 근대의 개신교회가 사소한 교리적 차이로도 분열과 대립을 결과한 것은 근대의 지성주의와 획일적 이성주의로 인하여 교리가 이데올로기(Ideology)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교조주의(dogmatism)는 올바른 교리적 지식이 정통의 기준과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지성주의로서, 생활이나 경건, 헌신이나 열정은 무시되고 논쟁적이고 투쟁적이며 독선적이고 경직된 신자들을 산출한다. 머리만 크고 비판과 언쟁에는 능하지만 경건한 생활이나 헌신적 열정도 없고 성령의 충만이나 포용적 사랑도 없는 개신교인들이 늘어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신자들이 이러한 지식 중심의 교조주의에 반대하며 독일과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경건주의(Pietism)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들은 성경 공부와 기도에 힘쓰며 경건한 감정을 추구하고 성령의 충만과 생활의 성화를 중시하며 부흥운동과 열정적 예배를 주도하면서 구제와 선교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실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다양한 신적 속성들을 종합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지성뿐 아니라 또한 감성과 의지가 영혼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지성은 인간성의 일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만을 과다하게 중시하며 지성주의를 추종하면 불완전하고 치우친 인간의 모습을 결과하며 그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지성과 이성에의 과다한 강조와 중시에 반발한 탈 근대화는 인간의 전인성(全人性, wholeness)을 회복하려는 본능적 열망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현대에는 근대를 지배하였던 지성의 독재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근대에 억압되었던 감성과 의지에 대한 배려와 강조가 확산되고 있다.

지능지수(IQ)를 인간의 척도로 보던 모던이즘과 달리 포스트모던시대에는 감성지수(EQ)에 대해 중시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하나님 말씀의 강령이 사랑이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성경과 교리적 지식이 탁월하지만 차갑고 사랑이 없는 독선적이고 비판적인 지성형 교인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어야 한다. 풍부한 감성과 따뜻한 사랑의 회복이야말로 인간 구원의 필수적 요소이다. 따라서 감성적인 문화와 예술이 풍요한 현대사회에서 교회도 차가운 의식적 예배에서 벗어나 열정적인 찬양과 경배를 추구한다. 지성형 교회보다는 감성형 교회가 포스트모던시대에 더 많은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나친 교리적 논쟁과 대립적 분열에 대한 혐오감은 근본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본질적인 복음의 공감대로 만족하고 다양성을 관용하며 보다 그리스도인의 다정하고 포용적인 감성적 일치를 추구하는 복음주의(Evangelicalism) 시대로 진입한 것도 이러한 인간성의 균형을 추구하는 시대적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군중 속의 고독과 외로운 개인주의를 탈피하고 마음과 감정을 나누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현대인의 갈망은 교회로 하여금 진정한 코이노니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만들었고 각종 소그룹운동을 발생시켰다. 낭만주의가 이성주의를 대치하려고 시도한 것처럼 반동적으로 지성주의를 감성주의(emotionalism)로 대체하는 것은 또 다른 편향성과 불건전한 형태의 인간을 산출하지만, 근대에 억압되었던 감성을 회복하여 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룩하는 것은 진정한 인간회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포스트모던시대에는 감성뿐 아니라 의지를 회복하려는 운동이 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실로 근대의 지성주의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의지가 박약한 지식인들을 산출하였다. 교리주의적 교회들도 많은 성경지식을 축적하고 교리적 분석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불순종형 기독교인들을 양산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전도도 하지 못하고 이웃사랑의 구제도 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자신이 진리에 서있기 때문에 정통적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지성적 정통성(ortho-doxy)에 반대하여 실천적 정통성(ortho-praxis)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교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전도와선교, 그리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구제로 전향하고 있다. 단순히 진리를 알고 신을 느끼는데 만족하는 자기중심적 신앙을 극복하고 외부와 타자를 향하여 자기를 여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실천적 변화야말로 진정한 순종형 기독교의 실현이다. 그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단지 내면적인 영적 행위로 제한하고 현실적 실천과 구별하였던 전통적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지행합일의 통합(integration)이 확산되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생활 전 영역에서 신앙을 실천하자는 신칼빈주의(Neo-Calvinism) 운동을 일으킨 것도 의지형 그리스도인을 지향한 것이며, 소명과 목적 지향적인 인생관에 대한 강조도 그러하다. 물론 올바른 지성과 감성을 등한시하는 행동주의(activism)는 잘못이지만, 축복과 영광만 추구하는 나약한 신자가 아니라 고난과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는 의지의 구속은 진정한 인간 회복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물론 포스트모던시대는 지성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지만,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지성주의에 휩쓸려 사랑과 순종이 결여된 기독교를 치유하려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부름이기도 하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 영혼과 육체, 자연과 은혜,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통합과 균형의 회복이야말로 복음의 풍요성과 전체성을 실현하고 인간의 전인적 구속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종합적 소명이다. 위기 속에 기회를, 고난 속에 은총을 숨겨 놓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야말로 세속화된 포스트모던시대를 감사와 감격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비전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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