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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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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으로서,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대속은 부활을 통해 승인되고 확인되었다. 따라서, 부활의 부인은 십자가의 부인을 결과한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역사적 사실과 그 구속적 중요성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십자가 사건이 단순히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인류를 품고 죽은 대표적 행위였던 것처럼, 부활도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예수님의 부활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부활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부활의 ’첫 열매’, 즉 아프아르케라는 말은 여기 20절과 23절에 사용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즉 프로토토코스라는 말은 골 1:18절과 계 1:5절에 사용되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부활이 모든 부활의 첫 열매인가?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부활이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의 아들을 다시 살린 사건(왕하 4장)이나 예수님이 나사로를 다시 살린 사건(요 11장) 같이 숨을 멈춘 사람의 호흡과 생기를 회복시키는 소생(resuscitation)과 부활(resurrection)은 완전히 다른 현상이다. 오늘날에도 상당수의 경우 인공호흡이나 전기충격 등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을 다시 회복시키기도 하며 죽은 사람이 기적적으로 생기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런 사람은 다시 노쇠하고 언젠가 죽게 된다. 그러나, 부활이란 고전 15:42-44절에 정의된 대로 4대 특성을 가진 새로운 육체, 즉 노쇠하거나 부패하지 않고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한 육체로 변화되는 현상(transformation)으로서, 죽음을 극복하였기 때문에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부활이 일어난 사람은 예수님이 최초이며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다른 부활이 없었기 때문에 이는 전무후무한 현상이며, 성도들의 부활은 그의 재림시에 일어날 것이다. 단지 마 27:52-53절에 예수님의 십자가-부활사건과 함께 다수의 성도들이 무덤에서 나와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초대교회의 구성원 중에 부활한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전무하고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 그런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정확한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없으며 그것이 소생이었는지 부활이었는지, 그리고 일시적 출현인지 영속적 존재였는지 모호하다. 따라서, 그것을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만일 그것이 진정한 부활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선행할 수 없고 그가 시작한 부활의 후속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인류는 범죄함으로서 죽음에 종속되었고 따라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음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음부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가능한 단순한 소생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음부의 문을 열고 나오는 부활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인 이유는 바로 그 다음절에 분명히 설명되고 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1-22). 여기서 언약과 대표성의 원리가 나타난다. 하나님은 언약구도에서 인류를 공동체적으로 관계하시는데, 성경에는 두개의 언약공동체가 등장한다. 하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대표와 머리로 하는 인류공동체이고, 또 하나는 두 번째 아담이라고 표현된 그리스도를 대표와 머리로 하는 신앙공동체이다. 하나님은 대표들과 계약관계를 맺으며, 그 대표의 계약 준수 여부에 따라 그를 대표로 하는 모든 공동체의 소속원들이 상벌간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전혀 부당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사회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사회계약이론이다. 본인의 동의 여부에 관계 없이 한국에 태어나 한국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의 모든 법률이나 전통을 준수해야 될 의무 아래 들어가며 이를 어겼을 경우 형벌이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통치자나 외무장관이 한국을 대표하여 타국과 관계하게 되며 그들이 조인한 협약의 영향을 본인의 동의 여부에 관계 없이 모든 국민이 받게 된다. 이러한 원리와 현실은 국가공동체뿐 아니라 각종 사회집단이나 가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가 대표하는 모든 공동체를 위한 공적 행위였으며, 따라서 그 결과와 혜택도 모든 공동체에게 적용된다. 아담의 실패가 인류공동체에게 큰 피해를 가져왔다면, 그리스도의 성공은 신앙공동체 전체에 큰 은택을 가져왔다. 그것은 생명과 부활이 중심적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의 종속에서 해방되어 부활하게 되며, 그것은 그리스도가 먼저 성취하고 개척한 길을 모두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가 대표하는 공동체 모두의 죽음이며, 마찬가지로 그의 부활도 모두의 부활인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머리인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며 분리할 수 없는 신비적 연합상태(mystical union)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들에게도 나타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범죄와 실패로 인해 사망과 죄와 율법과 사탄의 종속상태로 전락하였으며, 그 결과 모두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고 심판때까지 죽은 자의 세계인 음부(陰府)에 갇히게 된다. 예수님도 무죄하셨지만 신앙공동체의 대표로서 모든 구성원들의 죄악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죄인의 죽음을 죽었고 따라서 음부에 갇히게 되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일 뿐 아니라 그의 보혈과 대속이 모든 죄과를 만족하여 하나님이 용서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음부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었으며, 따라서 음부의 문을 열고 최초의 부활을 실현하였다. 그리스도인도 아담의 인류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죽음과 음부의 길을 가야하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죽음과 음부로부터의 해방, 즉 부활의 길을 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공과 승리는 일순간에 완성되지 않고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며, 이 시기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해당하는 종말(eschaton)이라고 부른다. 구약에서 부활이 예언되었는데(겔 37:12-13, 단 12:2), 그것은 결코 한 사람의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집단적 부활이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부활의 시작이며 첫 열매로서, 마치 첫 열매가 모든 추수를 예시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 신앙공동체의 전체적 부활을 예고한다. 물론, 이 기간동안에는 그리스도인도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지만 부활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사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망에 종속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더욱이, 종말의 과정이 마치는 재림시에 살아있는 성도들은 일시적인 죽음도 겪을 필요가 없다. 이런 종말론적 맥락이 첫 열매를 언급하는 고전 15:20절 이하에서 나타나는데, 부활은 그리스도가 그의 몸된 교회를 사용하여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24절)까지 보류되며, 결국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26절) 그런 다음 전체적 부활이 일어나게 된다. 우리의 부활은 사망 자체를 포함하여 모든 흑암의 세력을 완전히 멸절한 다음에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아직 부활의 육체적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지만, 우리 부활을 예시하며 보증하는 첫 열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때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영생의 삶을 살 수 있다.

 

(200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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