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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갱신과 연합

 한국교회 진단  |  세속화와 성화  |  교단과 교파  |  신조  |  교회의 연합과 일치  

에큐메니칼 운동은 1959년 장로교의 대분열 이후 보수측에서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일년에 한번씩이나마 부활절 연합예배가 이루어졌으며, 한기총의 출범과 함께 보수교회들도 연합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 보수주의자인 박형룡박사는 진보측과의 연합운동이 보수신학을 오염시키고 타협하게 만든다는 생각에서 진보측이 포함된 일체의 연합운동을 거부하였으며, 73년 빌리 그래함 집회도 정죄하였다. 사실 WCC나 WARC를 정죄한 것도 거기 참여한 모든 교단이 좌경적이라기 보다는, 일부라도 용인할 수 없다는 보수주의적 신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보수측에서도 WARC에 이미 가입한 교단이 있으며 가입을 고려하는 교단들도 있는데, 사실상 WARC는 WCC와 그리 큰 신학적 차이가 없다. 그리고 기장이나 통합과 같이 WCC회원들이 참여하는 한기총이나 한장연에 보수측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과거에 WCC 회원교단과는 연합운동이나 강단교류를 할 수 없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신학은 교회를 나누기도 하고 교회를 하나되게 만들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분리나 연합 결정은 정치권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신학적 근거와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신학도 있고, 그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키는 신학도 있다. 이러한 신학적 순종과 범죄는 최후의 심판에서 가려지겠지만, 매우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의 교회(una ecclesia)가 있을 뿐이며, 천국에서 회집될 교회도 교파나 교단이나 분파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연합된 교회일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들이 관용했던 비본질적인 차이를 침소봉대하여 교회의 분열을 부추기거나 분파를 조성하고 정당화하는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복음의 본질을 인간의 사상으로 대치하려는 자유주의자들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연합운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분열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령안에서 서로를 포옹하고 관용하며 하나됨을 회복하고 있다. 20세기 초반에는 하나의 장로교회가 유지되었으나, 해방이후 40여년동안 핵분열을 계속하여 교회 내외의 빈축을 받아왔으며, 이런 분열과정에서 분리주의적 신학은 상당한 이론적 후원과 정당화를 제공하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포스트모던적 다원화와 세속화 사회의 도래, 그리고 수적 성장의 정체로 인한 위기적 상황에서 분열의 폐해를 반성하며 하나됨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교단합동이나 연합운동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분리주의나 근본주의와 같은 신학적 장애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그리고 무엇을 위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거부하고 방해하는가? 그것은 결코 교회가 하나되기를 그토록 바라고 기도하시는 성령님이나 주님을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없으며, 자기 신학이나 자기 학파의 영광과 지배를 추구한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교회란 개교회나 개교단이나 개교파가 아니라, 하나뿐인 그리스도의 보편적 교회(una ecclesia catholica)를 의미한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면, 신학의 사명은 분리의 부당성을 교회론적으로 강조하고 교회의 하나됨을 돕는 일이다. 천상에서 만나 서로 교제하고 사랑할 사람들이 지상에서 서로 분리하고 대립하는 것은 여하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분리주의적 근본주의 신학은 신학의 위상을 과도하게 격상시키고 자파를 절대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개신교신학은 sola Scriptura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신조나 신학은 보조적 권위를 가질뿐이며, 무오한 성경과 달리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만일 교회가 자기 전통을 대변하는 신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면, 성경과 전통의 이중권위를 인정하는 로마 카톨릭과 다를 바 없다.

게르하르두스 보스는 조직신학이나 성경신학이 모두 성경의 변형으로서 신학의 절대성이나 무오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으며, 칼 바르트도 신학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평가하였다. 따라서, 헤르만 바빙크는 신학이 구원에 필수적인 교리를 제외하고 비본질적인 문제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강조하였다. 성경이 일관되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근본적 교리(articuli fundamentales)를 제외한 신학적 이론들은 인간적 추론에 근거하며, 신학은 교회의 시대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열린 논의의 장으로서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순례자 신학(theologia viatorum)의 성격을 가진다. 신학에는 다양한 방법론과 학파들이 발생하여 논쟁을 벌이지만 모두 학문적 과정일 뿐이다. 신학논쟁은 신학자들간의 학술적 문제로서 교회가 개입하거나 맹종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유용하고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면 된다. 신학의 과도한 영화는 신학의 불신과 소외를 결과한다. 성경과 신조와 신학의 관계구도에서 신학은 이제 무오하고 절대적인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이지만 신학은 학파마다 신학자마다 다르다. 따라서, 교회가 성경을 따르면 하나를 유지하지만, 신학을 따르면 분열될 수 밖에 없다. 신학에 대한 과신과 맹종을 버리고 다양한 신학에서 유용한 것들을 배우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학자들도 자기의 신학을 절대화하지 말고 자기도 발전과정에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면서 신학적 논의를 진행할 것이며, 결코 교회의 하나됨을 훼방하는 죄악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학자들이 서로 열띠게 논쟁을 벌일 때에도 잊지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모두 특정 학파나 특정 방법론의 종이 아니라 모두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과 그가 드린 대제사장의 기도이다: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국제신학, 2, 2000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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