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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    강  Special Lectures

    문화와 목회 | 신앙성장론  |  현대 신학  |  한국 종교학 

인간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로 이어지는 기나긴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관적으로 중생의 순간적 경험을 통하여 이 영원한 구원사와 자기의 삶을 연관시키고 능동적으로 거기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거듭남에서 자의식적으로 출발하는 믿음의 삶은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성경은 중생 이전과 이후의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옛사람"과 "새사람"으로 구별하고 있는데, 중생을 통하여 태어난 새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은 "옛사람"의 요소를 극복하는 소극적 정화(purification)와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적극적 성화(sanctification)의 두 면으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인의 형성은 백지와 같은 중성적 상태에서 시작하지 않고 "옛사람"이라는 죄악적 배경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세속적 영향력의 끊임없는 정화에 부주의하거나 게을리할 때 우리의 신앙은 혼합되고 불순한 성격을 가지게 되며 신앙의 성숙과 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은 중생 전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후에도 계속되기 때문에, 모태신앙인이라 할지라도 회피할 수 없다. 인간은 문화 속에서 자라나고 형성되기 때문에 문화로부터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데, 한국문화는 주로 종교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실로 한국의 전통종교들은 한국인의 심성과 사고, 그리고 행동방식 등을 오랜 세월동안 지배하고 형성하여 왔기 때문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종교들의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심층적으로 받아왔다. 우리가 이러한 영향을 자인하고 반성할 때, 우리의 신앙과 신앙생활을 인간종교로부터 정화하여 성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한국의 4대 전통종교인 무교, 도교, 불교, 그리고 유교의 부정적 영향들을 살펴보자.

1. 무교의 영향

무교(巫敎, Shamanism)는 한민족이 중앙아시아로부터 북방로를 통하여 한반도에 이주하면서 가지고 들어온 최초의 종교로서 하느님신앙과 함께 우리민족의 기본적 종교성을 형성하였으며, 후에 수입된 모든 외래종교들이 이 토양에 심겨져 토착화됨으로서 심각하게 변질되었다. 따라서 기독교도 무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음이 자주 지적되어 왔다. 무교는 모든 불행이 귀신에 의해 유발되기 때문에 "굿"이라는 영사(靈事)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종교적 방법이며, 이는 "무당"이라는 카리스마적인 사제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무교의 굿중심적 종교생활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배참석을 신앙생활의 전부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예배는 참석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신령과 진정으로 자기를 드리는 헌신의 산제사를 요구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회개와 감사로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영적 제사가 예배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교에서 "굿을 보러" 가듯이 기독교에도 "예배를 보러" 간다는 말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충실한 예배참석이 그의 종교적 의무를 다한 듯이 생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목사를 청해 예배를 드림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심리나 새로운 집이나 사무실 등에 입주할 때 목사를 불러 입주예배를 드리는 것은 세계교회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으로서 무교적 영향이 숨어있다. 도교의 풍수지리설과 혼합된 무교는 낮선 땅이나 건물에 들어갈 때는 거기에 낀 살을 풀기 위해 무당을 불러 "입택례(入宅禮)"를 거행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예배가 감사의 표현이라는 면을 고려할 때 새로운 집이나 사무실을 주신데 감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 초청동기가 적지않게 무교적일뿐 아니라 그 목적이 감사보다는 재앙의 해소와 마술적 축복에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목사를 청하여 예배하는 계기도 기쁘고 감사한 일보다는 주로 흉사에 한정된다. 무당에게 절대의존적인 무교의 영향은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목사에게, 그것도 소위 "신령한" 목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그가 집례하는 예배와 축복기도, 또는 안수나 신유에 그의 신앙생활을 맡기고 자기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 사제중심주의에서 발견되는데, 이러한 행태는 루터의 "만인제사장설"과 관련하여 한국교회의 깊은 반성을 요한다. 무엇보다도, 무교의 무윤리주의(a-moralism)는 굿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하여 굿이 끝나면 종교와는 무관한 생활로 되돌아가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예배가 끝나면 이제 종교적 의무를 마쳤으므로 한주간동안 기독교윤리와 무관하게 세속적 삶을 살아가는 생활방식과 흡사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생을 통하여 회복된 자유를 사용하여 능동적으로 헌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체현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결코 성숙하여 자립적인 성인의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무교의 사제 절대의존, 예배주의적 신앙생활, 그리고 무윤리주의적 삶이야말로 신앙성숙을 방해하는 최대의 암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2. 도교의 영향

도교는 처음으로 수입된 외래종교로서 비록 조직화되지는 못하였으나 민간신앙으로서 무교와 혼합하여 한국인의 종교성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도교는 본래 노자의 자연합일사상에 기초하여 도(道)로의 복귀를 통한 불노장생의 신선(神仙)이 되는 수도종교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연의 정기(精氣)가 서려있는 심산유곡에서 일생동안 수도하는 도사(道士)들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후로 한국의 심각한 종교인들은 일종의 도사가 되고자 하는 유혹을 받았다. 그 결과 기독교에서도 산을 중심한 이단들이 적지않게 출현하였으며, 교주는 한결같이 도사형이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상당수의 목사들이 입산수도를 통하여 신령한 목사가 되고자 도사형 영성을 추구하고 있으나, 이는 개혁주의적 영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신앙성숙은 신비종교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윤리적이고 헌신적인 삶에 있는 것이다.

대중도교는 주로 점술과 칠성신에의 기도, 부적과 풍수지리설, 그리고 선약복용의 방식으로 보편화되었다. 주역의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운명과 재수를 예언하는 점술은 전민족적으로 오랫동안 신봉되어 왔으며, 그 결과 운명론적 사고와 예언중시사상이 편만하게 되었다. 이 결과 한국교회에서 예언, 환상, 해몽, 계시등이 지나치게 중시되어 많은 혼란을 야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의 경륜보다 자기중심적인 예언의 중시는 신앙의 성숙을 방해한다. 여인들에게 일반화된 칠성신에의 기도는 새벽에 정한수를 부엌에 떠놓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습관을 형성시켰는데, 이는 한국에서 기도의 원형을 형성함으로서 한국교회의 기도행태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 새벽기도의 창시자인 길선주목사가 개종전 "길도사"로서 매일 새벽에 목욕재개하고 기도하였다는 점과 주로 여인들이 새벽기도에 충실하며 기도의 내용이 주로 자기 가족의 행복에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그 연관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도교가 가르친 기도는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르며, 올바른 기도가 신앙의 성숙을 가능케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 외에도 부(富)와 수(壽)가 인간의 복(福)을 구성한다는 도교적 사고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오염시키고 오도하였다.

3. 불교의 영향

불교는 삼국시대에 도입되었는데, 정치적인 목적으로 왕실의 주도하에 수용되었다. 왕실과의 연관성은 불교를 국교로 만들고 호국(護國)종교로 세속화시켰다. 이러한 불교의 영향으로 그후에 한국의 모든 종교들은 호국종교가 될 것을 강요받았다. 한국교회는 여러차례 정치적 세속화의 길을 걸었으며, 지금도 지나치리만큼 국수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이 색채를 띠고 있어서 기독교신앙의 본질인 "세계교회"에 대한 일체감이 매우 부족하다. 성숙한 신앙은 죄악의 영향으로 발생한 모든 세속적 구분의 극복을 노력하여야 한다. 불교의 극락과 지옥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내세주의, 적선과 시주를 중시하는 물질주의, 그리고 멸정론(滅情論)의 영향으로 보이는 종교적 정숙주의나 금욕주의, 또는 기쁨없는 불감증의 팽배는 기독교의 복음적 사고와 정서와는 매우 다른 부정적 영향들이다.

한국불교는 종교적 이상을 성취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경전연구를 중시하는 교종(敎宗)과 기도를 중시하는 선종(禪宗)으로 분리되었는데, 한국교회에도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물론 성경연구와 기도는 신앙성숙에 있어서 필수적인 방편이지만, 이 두가지로 한정하는 것과 그 내용과 질보다는 양과 형식에 만족하는 것은 복음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성경을 백독했다고 해도 그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성장을 가져올 수 없으며,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한다면 오히려 신앙의 성숙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불교는 일순간의 깨달음(覺)을 위한 노력일뿐 실제적인 삶과 무관한 종교인 반면, 기독교는 그 궁극적인 목적이 앎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헌신적인 삶에 있다. 더욱이 한국에 대중화된 정토불교는 기도불교로서 기도를 통하여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기도만능주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기도의 내용은 별로 문제되지 않고 양적인 반복이 중시된다.

4. 유교의 영향

유교는 일찍이 한국에 들어와 교육방법으로 사용되다가 고려말에 이르러서야 주자학의 도입으로 종교적 성격을 강화하고 이조의 개국과 함께 국교가 되었다. 충과 효의 예를 회복함으로서 인을 이루어(克己復禮爲仁)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공맹의 가르침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의 8단계를 따라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도모한다는 정치종교적 성격이 강하여 학업을 통한 입신양명의 출세중심적 인생관을 형성시켰다. 이러한 영향은 교회안에서 출세정도에 의해 교우를 평가한다든지, 교회의 직분을 계급같이 본다든지, 섬김보다는 다스림을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을 심어주었다. 또한 예절의 중시는 자연히 외식과 체면을 부추기는 율법주의적 사고를 팽배하게 만들었다.

이조 5백년의 유교정치는 끊임없는 정치적 투쟁으로 얼룩져 있다. 학문이 인격을 형성한다는 지성주의적이며 이론적인 인간관은 사랑과 온유, 겸손과 절제를 가르치는 성경적 이상과는 크게 다르며, 이론적 논쟁을 좋아하고 정통을 표방하며 정치적 적수를 이단으로 모는 근본주의적 사고로 사색당쟁을 조장하였는데, 이러한 행동방식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지역패권주의와 학문적 분파주의는 강력한 유교의 영향으로서, 한국교회에 지역교권정치를 무성하게 일으켜 많은 분열을 결과하였으며, 교회의 일치보다는 신학적 분파주의와 반목, 그리고 교회단체의 대립으로 인하여 한국교회내에 여러 종류의 원치 않는 분단을 유발시켰다. 신앙의 성숙은 자기부인과 그리스도안에서의 연합을 추구할 때 가능하다.

 

결어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대한 제사장민족으로서 순수하고 성숙한 신앙을 요구하였으나, 근동종교들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한채 오염되고 타락하였다. 바알과 아세라종교를 비롯한 근동종교들과 애급종교, 그리고 바벨론과 페르샤의 종교들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신앙적 성숙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우리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하여 왔으나, 종교가 문화의 대부분을 형성한 한국의 문화적 상황속에서 우리는 사실상 심각한 전통종교들의 부정적 영향을 받아왔다. 1959년 예일대에 제출한 학위논문에서 정대위박사는 한국선교의 성공이 종교혼합의 관용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한국에서 상당수의 문제있는 교회들이 급성장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종교혼합주의나 심지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그러한 인간종교들의 부정적인 영향을 정화(淨化)하도록 명령한다. 한국교회가 선교 2세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성숙(成熟)을 향한 몸부림이 절실히 필요하며, 이는 전통종교의 부정적 영향을 비롯한 세속적 요소들을 철저히 정화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헌신적 성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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