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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유명한 미국교회를 방문하였다가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복음’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나, 거기서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이것이 바로 캘리포니아 복음이구나’ 하고 놀랐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의 부가 모여 있는 부유한 곳인데다가 항상 따뜻하고 태양이 찬란하여 많은 사람들이 살기 원하는 동경의 대상이다. 여기에 많은 대형교회들과 유명한 목회자들이 포진해 있다. 캘리포니아 복음이란 풍요하고 향락적인 삶을 축복하며 사교적인 교제를 주선하고 행복을 선물하는 편안한 복음이다. 교회생활은 음악회나 쇼를 감상하는 것 같으며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는다. 희생이나 고난을 요구하지 않으며 양심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자선으로 충분하다. 십자가의 복음은 낭만적으로 재해석되고, 하나님의 계명이나 심판은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윤리나 의무는 보류되고, 치리나 징계는 사라진다. 아무렇게 살아도 양심에 부담을 주지 않으며, 그렇게 하여 점차 양심이 무디어지도록 방치한다.

 

켈리포니아 복음은 백인 중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에 이민 온 우리 한인들도 여기에 물들어가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에 있는 기독교인들도 서구화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이 복음은 우리의 영혼을 마취시키며 우리의 소명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헐리우드와 캘리포니아 비치를 즐기며 우리 인생은 되는 대로 흘러간다. 교회생활은 안전장치에 불과하고, 신앙생활은 허례허식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판 받아야 할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다수의 문제이며 바로 나의 문제이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세속화를 가리켜, ‘소금이 맛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하면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당연히 짓밟히게 된다고 경고하였으며, 디트리히 본회퍼는 유럽교회가 몰락하는 것은 바로 고난의 복음을 거부하고 문화적인 기독교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20세기 유럽교회의 세속화를 연구한 종교사회학회 회장 데이비드 마틴은 교회의 세속화에 두 단계가 있는데, 교회가 윤리적 수준을 낮춤으로서 부담 없이 교회에 나오게 하는 일차적 세속화에서는 교인이 늘어날 수 있으나 교회가 세상과 같아지면 급격히 교인들이 의미를 상실하고 교회를 떠나는 이차적 세속화가 있다고 분석하였다. 예수님은 말세에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비판으로 해결될 수 없고 보다 전반적이며 근본적인 각성을 필요로 하며, 이것은 남이 아니라 나를 향한 자기비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일보, 200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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