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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한 외국 언론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뇌물공화국"이라고 보도하자, 우리 언론들은 즉각적으로 빗발같은 반격을 가하였다.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무조건 반발하고 보는 방어본능 때문이었을까? 요즈음 우리 언론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그리고, 정치인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누워서 침을 뱉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인가? 뇌물을 나누어 쓴 사람들이 서로 공격하고 혹은 깨끗한 체 시치미를 떼는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과연 윤리를 찾아볼 수 있는가? 힘의 정치(power politics)만을 추구하는 우리 정치에 윤리가 고려될 리 없다.

노 전대통령은 집권기간동안 5천억을 모았다고 고백했다. 현 전부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눈감아주고 있었을까? 정부의 집권기간의 반이 지나간 시점에서 비자금이 전혀 없는지에 대해 의심하는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한국 관공서의 뇌물관행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청에 뇌물을 주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었다. 뇌물청산을 외치고 나온 문민정부의 지금은 어떠한가? 사고가 나면 대개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거론되며, 사람들은 그를 재수가 없는 희생양이라고 본다. 일개 구청과장도 한 건에 몇 백 혹은 심지어 몇 천만원의 뇌물을 받는데, 하물며 국장이나 장관, 나아가 청와대야 억으로 놀지 않겠는가!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어 버렸다. 그는 "관행"임을 강조했다. 5년동안 모든 돈을 합쳐 정치적으로 터뜨리니까 그렇지, 그것이 무슨 새로운 뉴스꺼리란 말인가!

그리스도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 관리들도 좋은 자리에 앉으면 적지 않게 챙겼고, 그 중에 얼마는 헌금으로 교회 재정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어려운 인허가를 받으려면 뇌물을 주어왔고, 그리스도인의 기업체도 적지 않은 뇌물을 바쳐왔을 것이다. 교회 건축하는데 건축과에 뇌물 안 준 교회가 몇이나 되며, 신학교나 기독교 대학들도 교육부나 심지어 청와대에 뇌물 안 준 학교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본다. 그가 "돌팔매" 이야기를 할 때 "너희중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라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돌을 들어 그를 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의 정치윤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시민이며 우리의 통치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근거한다. 따라서, 지상의 국가와 통치자에게는 상대적이며 비판적인 순종만이 가능하며, 상충되는 요구가 있을 때에는 의문의 여지없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이러한 태도는 초대교회에서 발생하여 로마 황제와의 갈등을 초래하였으며, 수용할 수 없을 경우 순교의 자세로 제국에 맞섰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서로 가까워지면서 점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와 통치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힘을 상실해 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치윤리의 약화는 종교개혁으로도 회복되지 않았으며, 그 결과 지난 4백여년에 걸친 기독교 국가들의 전세계 비기독교 국가를 향한 식민 통치 중에 어떤 교회도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고 오히려 축복하고 이익을 같이 향유하는 영적 무감각의 잠에 취해 있었다. 유럽 종교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마틴(David Martin) 교수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정치적 세속화가 오늘날 유럽교회의 급격한 몰락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지적하였으며, 많은 신학자들이 이에 동의하였다.

우리나라는 먼 옛날부터 관리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구한말 탐관오리들의 비판과 고발운동이 전개되어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지방에는 관리들이 부임을 꺼려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이런 새로운 정치윤리운동이 1901년 교회의 정치중립선언과 함께 막을 내리고, 그 후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정부와 관리들이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순한 양같이 순종해 왔다. 예수님은 정치적 타협을 거부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했더라면 오히려 영광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고 부패한 정치권력의 편이 아니며, 오히려 그들을 책망하고 쇠망시킨다. 국가권력은 로마서 13장의 선한 정부와 계시록 13장의 악한 정부 사이 어디에 있기 마련이어서, 교회는 항상 경계 태세를 가지고 지도와 교정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정사와 권세"는 성경에서 그 영적 배경이 부정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불의한 정부에 맞설 수 있는 단체가 교회밖에 누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의 정치윤리 실천이 정부의 설립된 목적인 '정의의 실현'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이 정부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정부는 교회 위에 군림하면서 불의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단순한 시민이 아니라 정부의 관료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 소명에 합당하게 행하여 정부를 정의롭게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이는 정치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의 주권이 실현되게 하는 길이다. 뇌물을 거부하는 공무원들의 모임이 오로지 익명으로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슬픈 현실이지만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그리스도인이 대통령이 된 후 정치윤리운동이 일어난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소수의 노력으로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뇌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에 참여해야 되고, 나아가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는 부패관리의 고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기윤실이 앞장서 온 공명선거운동을 강화하고, 선거때에는 후보들의 정치윤리 수준을 조사해서 공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며 오로지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결단이 그리스도인의 정치윤리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윤리 실천운동199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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