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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21세기로 진입하면서 인간 복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97년 양의 복제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동물들이 복제되었으나 인간 복제는 세계적 우려로 금지 논의가 확산되었을 뿐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98년 한국에서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는 보도로 긴장했지만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인간 복제가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지난 11월 25일 미국 보스톤 주변에 있는 한 생명공학 회사(Advanced Cell Technology)가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였으며,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실로 인류 역사상 하나의 경악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7명의 여자에게서 난자를 받아, 그중 19개의 난자에서 유전인자를 제거한 다음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인자를 주입하였다. 그러나, 난자가 정자와 결합되지 않고서는 독자적으로 생식할 수 없기 때문에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을 가능하도록 하는 화학처리를 하여 세포증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단지 7개의 난자만이 분할을 시작하였는데, 네개는 두 세포, 두개는 네 세포까지, 그리고 한 개만이 여섯 세포로 증가하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따라서, 이 실험을 실패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최초로 복제된 인간의 생명이 3일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에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가공할 미래를 예측하게 만든다.

부쉬 대통령은 즉시 그것이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국회도 대책 마련으로 부산하다. 하원은 이미 지난 여름 인간복제 전면금지안을 통과시켰다. 생식복제뿐 아니라 소위 치료복제도 범법행위로 금지하였으며, 행정부도 그와 같은 연구 지원을 중단하였다. 아직 상원의 결정이 없어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조속한 처리를 추진하지만, 치료복제는 허용하자는 주장도 상당한 실정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치료복제(therapeutic cloning)란 치료를 위한 부분 복제로서, 대체할 장기나 세포를 만들어 질병을 치료하려는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 체세포(stem cell)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데, 체세포에서 모든 종류의 장기와 세포를 유도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체세포는 태아가 150개 정도의 세포로 증식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데, 이번에는 6개로 그쳐 체세포를 얻는데 실패하였다. 치료 복제가 성공하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뇨병 환자들이나 이식할 장기가 없어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그토록 반대하고 두려워하는 것인가?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어떤 입장을 취하며 어떤 행동으로 대처해야 할까?

기독교는 절대적으로 인간 복제를 반대한다. 그 이유는 크게 다음 세가지의 심각한 문제점 때문이다. 첫째로, 인간 복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함으로서 비인간화를 결과한다. 이번 복제에 성공한 회사는 짐승을 복제하는 영리조직으로서, 복제 과정에서 어머니들이 가지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태아를 대하지 않고 단지 하나의 물체로서 짐승과 마찬가지로 다루었으며, 모두 죽었을 때 아무 죄책감도 가지지 않았다. 물론 3일만에 모두 죽었고, 일반 산모들이 임신을 깨닫지 못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약에 산모가 그들과 같이 태아 생명의 시작을 알았다면 기도하며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조심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인격적인 인간으로 보고 그렇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일부는 아담의 창조과정을 모델로 하여 먼저 영혼을 수용할 수 있는 육체를 형성하고 난 후에야 하나님이 영혼을 부여한다고 보고, 수태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 태아가 기본적인 구성을 이룬 시점을 영혼과 육체가 결합하여 인격적 인간이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런 시점의 설정이 너무 인위적이고 상대적인 구분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처음 정자와 난자가 만나 이제 더 이상 어머니의 난자도 아버지의 정자도 아니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수정의 순간에 하나님이 영혼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의 발생에 대해 유전설이나 선재설을 거부하고 창조설을 정통적 이해로 받아들이는 신학적 관점에서, 후자가 더 설득력을 갖는다. 더욱이, 생명이나 호흡이라는 단어와 영혼이라는 단어가 같이 사용되기 때문에, 생명과 영혼을 분리하기 어렵다. 인간의 경우 죽음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역으로 생명의 존재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태아는 독립적 인격성을 가지는 수태의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나머지의 과정은 시간 문제이며, 그 생명의 자기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공학은 인간과 짐승의 복제를 사실상 동일하게 보고 기계적으로 실험하고 폐기한다. 예를 들자면, 췌장과 같은 하나의 장기를 얻기 위해 모든 기관을 가진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태아를 무참히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쉬 대통령이 “생명을 파괴하기 위하여 키우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통탄한 이유이다.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인간을 존중하겠는가! 그것은 웅담을 얻고자 곰을 죽이는 것보다 더 악한 행위로서, 인간은 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귀한 만물의 영장인데, 이토록 함부로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양산한다면 생명을 경시하고 자기의 필요를 위해 타인을 죽이는데 아무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 비인간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인간 복제는 무신론적인 발상으로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생명공학(生命工學)’이라는 말을 직설하자면 ‘생명을 만드는 학문’이라는 뜻인데, 과연 인간이 생명을 만들 수 있는가? 인간은 생명의 과정을 관찰하여 도울 수는 있지만, 생명 자체를 창조할 수는 없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난자나 살아있는 세포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생명과 관련된 종사자들은 생명의 창조자가 아니라 수종자로서 겸손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보조해야 한다. 심지어 부모도 자기 자녀의 창조자로 자부하여 마음대로 다루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신론적 전제에서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복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죄악으로서 인류의 불행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생노병사는 죄인에게 있어서 불가피한 운명이며, 고통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구원에 이르러야 한다. 인간과 세계는 하나님의 심오한 지혜에 근거하여 통전적이고 유기적으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창조 질서를 무시하고 무엇이든지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우리는 무리한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인간의 환경을 파괴하여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 현실에 처해 있다.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리 어리석은 인간은 눈앞에 있는 이익과 편리를 위하여 크고 영원한 거대한 행복을 상실하기 쉽다. 마치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면서 멸종하는 동물을 복제하여 유지하면 된다는 식의 기계적이고 단편적인 사고방식은 대우주의 조화와 인생의 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인간이 자기 신체의 소중함이나 영혼과 신체의 통일성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사서 해결하려는 생각은 도덕적 무절제와 정신적 자해를 초래할 것이다.

셋째로, 인간 복제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사업으로서 인간을 상업화함으로서 무절제한 자기 파멸을 초래한다. 요즈음, 생명공학은 투자 가치가 높은 분야로 알려져 있으며, 미래의 엄청난 수익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인간복제의 목표는 영리와 수익에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구조는 인간 태아를 존중하며 윤리적 한계를 지킬 수 없도록 만들 것이 분명하다. 장기이식에서 문제가 된 것이 장기 매매였고 그것을 법으로 금지시켰으나 암거래가 성행한 현실을 보면 복제장기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고, 복제 장기는 아예 상업적인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지할 수도 없다. 나아가, 복제 장기가 고가로 제공될 것이어서 빈부의식을 심화시키며, 결국 신체의 상품화는 값을 내린다는 명분으로 대량 생산하고 판매하는 복제공장과 복제시장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신체를 바꾸고 부모 사이에서 출산하는 대신 단성생식을 허용하면 가정은 파괴되고 인간은 내적 조화를 상실한 채 비틀거릴 것이다. 이것은 아무 값도 없이 은혜로 생명과 신체를 부여하시는 신의 섭리에 역행하며, 그 결과 인간은 더욱더 물질화되고 인간성은 황폐화될 것이다. 부모에게서 인간이 태어날 때는 아무 경비나 장치도 필요 없으며 사랑만으로 인격적인 새 생명이 탄생한다. 바로 여기에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가 있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 사랑 안에서 자라날 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갈 수 있는데, 마치 사생아나 불륜 혹은 강간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아니 그보다 더 비인격적인 복제에서 태어나면 그는 심각한 자기 갈등을 겪으며 영적, 심리적으로 자기 방황과 탈선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그런 복제 인간이 많아질 경우 인류는 가공할 사회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물론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범죄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분명히 예상할 수 있는데, 영리나 호기심으로 이를 추진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인가!

지금 인간 복제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여론에 밀려 생식 복제를 완강히 부인한 채 치료 복제만으로 제한한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생명공학 기업들이 영리, 그것도 거대한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제한이 지켜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낙타 발이 천막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면 몸까지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모호한 경계를 넓혀 가며 급기야 전체적인 복제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산영역을 확대할 것이다. 이미 그 회사는 단순한 질병 치료의 선을 넘어 노화 방지와 생명 연장에도 사용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체세포의 확보는 멀리 있지 않다. 이번에는 3일로 그쳤으나 5일이 되면 체세포를 얻을 수 있으며, 체세포의 확보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부분 복제보다 전체 복제가 더 쉬울 수도 있다. 부분 복제는 체세포가 원하는 기관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기술 개발이 필요하지만, 전체 복제는 복제된 태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성생식의 가능성은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율이 급증하며 자유로운 성생활을 추구하는 독신자들이 늘어나고 동성애가 확산되고 있는 세태를 더 부추길 것이다. 그리고, 이미 동물 복제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체세포를 유도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모든 것이 시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보다 더 수익성이 높은 대체 복제가 발생하여 원하는 기관이나 부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괴기한 상술이 등장하며 매스콤을 통해서 이를 미화하고 정당화하여 여론을 잠재울 것이다. 지금의 성형술로도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데, 복제시대가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 복제를 반대하고 이를 금지하는 법제정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물론, 이 세상에는 법으로 금지해도 많은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으나, 인간 복제를 어떤 방식으로도 합법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부여하신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따라서 인류의 불행과 인간성의 황폐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공학에 현혹되어 고통없이 아름답게 오래 살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가지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자들의 기만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며, 성경의 진리와도 위배된다. 인간에게 방종을 결과하는 무한한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으며, 창조자의 뜻에 따라 절제되고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행복이 보장된다. 자연질서를 어기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 질병에 걸리고 고통을 받는 것도 자연은총의 하나이다. 아무렇게나 살고 아프면 간단히 약이나 수술로 해결해 버리려는 현대적 사고는 바른 생각이 아니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사고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치료 복제에 환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과연 인류를 참으로 더 행복하고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도록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생각해 보면 올바른 방향감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으며 참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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