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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서구에서 생활화된 주 5일 근무제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논란의 초점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이해관계에 기인하고 있다. 6일이 5일로 줄어들 경우 노동량은 감소되는 반면 임금은 같이 지불해야 되기 때문에 당연히 고용자들은 반발하고 피고용자들은 환영한다. 그리고, 과연 아직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우리나라가 선진국형인 주 5일 근무제를 지금 도입하는 것은 다시 경제위기를 초래하거나 심지어 영원히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적 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시기론도 심각하게 고려할 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주 5일 근무제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말은 무슨 소리인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쉰 패턴을 따라 6일을 일하고 7일째 쉬라는 안식일의 계명이 이 제도를 반대하는 명분이 될 수 있을까? 구약시대에는 엄격히 이 계명이 준수되어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데도 가지 않는 철저한 안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일은 어떠한가? 주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매우 분주한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예배와 교회행사가 계속된다. 안식이 아니라 축제와 활동의 날이다. 또한 주일은 창조에 근거한 제7일이 아니라 부활과 구속에 근거한 제1일이다. 주일은 안식일이 아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처음에 안식일과 주일을 둘 다 지키다가 그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주일을,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양자택일을 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대인은 항상 지쳐 있으며, 휴식과 안식을 필요로 한다. 불신자들은 일요일에 휴식을 취할 수 있으나, 신자들은 일요일도 편히 쉬지 못하고 교회행사로 분주해야 하며, 특히 열심 있는 신자들은 평일보다도 더 피곤한 하루를 보낸다. 주일 저녁 집에 돌아올 때면 몸이 녹초가 되지만, 그 다음 월요일에는 또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의 반복 속에서 구약 성도들이 즐겼던 안식이 그립다. 특히, 무한경쟁과 교통지옥으로 지친 도시의 현대인들은 비록 교회가 영적 안식을 제공하지만 육체적 안식도 그립다.


이런 상황에서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토요일에는 피곤한 몸을 쉬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영적 안식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불신자는 이틀이나 쉬기 때문에 무료할 수도 있고 나태해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논의는 신자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현대생활은 가정의 파괴를 초래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분주한 생활로 인해 가족의 만남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 신자들은 6일 동안 직장생활로 분주하다가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가 가있기 때문에 언제 가족이 시간을 같이 보낼 날이 없다. 심지어 공휴일에도 교회에 행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다면 얼마나 좋을가? 토요일은 여유 있게 가족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이 주 5일 근무제를 반대한다면, 계속 육체적 휴식도 없고 가족 간의 대화도 부족한 채 피곤한 현대인의 삶을 영위하라는 말인가? 경제나 경영에 근거한 논의는 이해할만 하지만, 누구보다 성도들의 안식과 가정의 행복을 배려하고 도와주어야 할 목회자가 단순한 율법주의적 발상으로 이를 반대한다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서구인들은 모두 놀기를 탐하는 자들이며, 서구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와 같은 제도적 전환은 매우 근본적이어서 진지한 논의와 보완적인 장치를 필요로 하지만, 노동의 형태와 효율성이 급속히 변하는 오늘날 우리는 현대적 상황을 동정적으로 고려하면서 물질과 일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한걸음씩 보다 인격적이고 여유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뉴스앤조이 칼럼 2001년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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