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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절대 가치를 상실함으로써 윤리적 상대주의에 빠져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그른지 잘 판단하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파멸로 치닫고 있다. 특히 성윤리가 무너져 내리고 가정은 파괴되고 있다.


러브호텔이 호황을 누리고 원조교제가 유행하며 포르노 비디오가 범람한다. 누드화보를 낸 사람은 성혁명의 기수가 되고, 커밍아웃을 선언한 동성애자는 인권운동의 영웅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동성애자들이 과거의 수치심을 버리고 마치 민주화운동을 하듯이 성혁명을 위해 선택된 소수라고 주장한다. 윤리와 상식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오늘날, 그래서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데, 누가 동성애자들의 착각과 혼란을 나무랄 것인가!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동성애는 분명히 정상적인 상태도 올바른 행동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나는 여호와니라,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신약에도 동일하다.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7).


물론 구속사의 진행에 따라 변하는 것도 있으나, 그런 것은 분명한 언급이 있다. 동성애는 남녀평등이나 노예해방이나 왕정폐지와 같이 타락의 결과로 발생한 인간차별을 철폐하는 창조질서의 회복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질서에 역행하는 타락의 결과로서, 회복되어야 하는 왜곡된 성이다.


남자와 여자가 부모를 떠나 한 몸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 사랑 가운데서 양육하여 인류가 번성하는 것이 창조질서이다. 동성애는 반사회적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가 된다면 인류는 더 이상 계속되지 않고 자멸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든지 동성애를 사회발전의 덕행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성애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고 변명하는 결정론은 분명히 비윤리적이다. 난폭성이나 음주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폭력이나 알콜 중독이 변명될 수 없다. 동성애가 생득적인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것이 동성애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인간이 죄의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이 우리의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고귀한 인격적 존재로서, 그릇된 욕망과 유혹을 참고 거부하며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단순히 끌린다는 이유로 아무하고나 성적 관계를 가지려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일부 동성애자에게 그런 끌림이 있다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참고 올바른 성윤리를 따라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이기도 하다.


자유를 가진 인간은 결정론의 변명을 할 수 없으며, 동성애의 혼란된 자아상은 자기를 절제하고 희생하며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랑의 헌신된 삶으로만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앤조이 칼럼 2000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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