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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락 공격이 시작되었고 바그다드 함락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유엔의 저항과 세계적인 반전시위 속에서 감행된 이락전쟁이 종교전쟁은 아니지만 종교적 배경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슬람의 세력이 구소련 남부의 신생국들로 북상하는가 하면 중앙아프리카까지 남하하고 인구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한 유럽으로 서진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까지 동진하는 이슬람의 급격한 확산은 분명히 기독교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러한 급진세를 둔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락은 이슬람 국가들 중에서 가장 도전적인 나라이며 사담 후세인이 가장 전투적인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승리하고 평화로운 정부를 수립할 경우 이슬람의 과격성을 약화시키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종교의 전파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여건에서 감화와 설득을 통해 선의의 건전한 경쟁이 있어야 하는데, 이슬람권은 권력과 무력을 이용하여 이슬람의 유지와 확산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모종의 조정이 필요하다.

 

물론 이락전쟁이 21세기 세계 평화의 기반구축을 위한 미국주도의 시도이지만, 이스라엘의 보호전 양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오사마 빈 라덴이 무모하게 미국을 공격하긴 했지만, 아랍국가들의 두통거리는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의 제거 혹은 복속이 그들의 공통적인 소원인데 미국이 그것을 방지하기 때문에 반미감정이 격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집트나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이슬람 대국들은 이미 무력적 방법을 포기하였지만 이락과 이란이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기 때문에 미국의 공격대상이 된 것이다. 즉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국가인 미국이 이슬람교와 유대교 국가 사이의 싸움에 끼여든 셈이다.

 

이락은 수메르-아카디아문명의 발상지로서 지금은 저개발국가로 전락하였지만 인류문명의 요람이기도 하다. 에덴동산은 네 강이 만나는 곳에 있었는데, 그 중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이락에서 만나기 때문에 일부 고고학자들은 여기에 에덴동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쫒겨나 그 부근에서 산 곳도 이락이며, 노아의 거주지와 노아 홍수의 발생지도 바로 이락이었다. 노아 홍수 이후 다시 인류가 모아 바벨탑의 반란을 일으킨 곳도 여기이며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도 이곳이다. 아브라함이 이락을 떠나 팔레스틴에서 건설한 이스라엘민족의 원고향이 바로 이락인 셈이다. 그 후 이곳은 세계제국들의 중심이 되었다. 아시리아의 수도로서 요나가 회개시킨 니느웨가 이락에 있고, 이스라엘과 유다가 아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뒤 끌려와 한 많은 포로생활을 했던 곳도 바로 이락이다. 실로, 이스라엘과 이락은 역사적인 적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적대관계는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설되면서 다시 재현되었다. 사담 후세인은 느부갓네살의 영광을 재현하자는 글이 새겨진 기와를 만들어 자기 궁전의 담과 지붕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을 다시 점령하여 포로로 잡아오는 꿈인지도 모른다.

 

부시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정복과 지배가 아니라 해방과 자유를 위한 노력이라고 규정하고, 점령한 곳에 미국 국기를 전혀 게양하지 않는 겸손한 전쟁을 치룬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를 부르짖는 유대교나 코란이 아니면 칼을 받으라는 이슬람교에 대해서 어떤 선한 증거를 보여줄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이다. 물론 악한 세계에서 전쟁의 희생 없이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미국이 전쟁의 과정이나 특히 전쟁 이후의 행위를 통해서 기독교국가로서의 사랑과 겸손을 실천해야 한다. 물론 교회와 국가는 그 활동방식이 다르지만, 둘 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사랑과 평화가 모든 행위의 동기가 되어야함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한국일보, 20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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