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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의 참회문에 대한 유감

조상제사 폐지가 회개(repentance)할 일인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최근에 지난 200년 동안 한국천주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는 "쇄신과 화해"를 발표하였다. 이는 금년 3월 교황이 지난 2000년 동안 가톨릭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한데 따른 후속조치로서, 참회문은 7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록 대부분 그 동안 표명한 입장을 종합한데 그치고 있으나, 새 천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조상제사를 금지한 일도 "문화적 갈등"이라는 말로 회개하고 있다. 실로 회개란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고백하는 진지한 행위이다. 따라서, 잘못하지도 않은 일을 회개하는 것은 부당하다. 만일 잘못하지 않은 일을 회개한다면, 그것 자체가 회개할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물론, 천주교회는 조상제사 금지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입장은 일관되지 못하였다. 1715년에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금령을 발표하였으며, 1742년 베네딕투스 14세가 재차 금령을 확인하여, 한국에서만 1만 명이나 되는 천주교인들이 조상제사 금지령을 따르다가 사형을 당하였다. 지금 와서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그 1만 명의 순교가 헛된 죽음이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마치 초대교회에서 로마황제에 대한 숭배를 거부하다가 희생된 순교가 헛된 죽음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더욱이, 지난 84년에는 교황이 서울을 방문하여 순교자 103위에 대한 시복식을 거행하였다. 이러한 모순된 행위는 무모한 죽음을 칭송하는 이율배반으로 당혹스럽다.


1921년 교황청이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선언하였으나, 이탈리아와 하나가 된 로마 교황청은 그 동맹국가인 일본의 편을 들어 38년 허용방침을 시달하였으며, 이는 그 이듬해에 조상제사 허용령으로 이어졌다. 즉, 신사참배 허용과 조상제사 허용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기는 정치적이었으나, 정당화 논리는 비종교화였다. 즉, 신사참배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시민적 행위이며 조상제사는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문화적 행위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내세운 논리이다. 그런데도, 이번 참회문에서 동일한 논리로 허용된 신사참배는 회개하면서 조상제사는 정당화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은 이조시대와 달리 죽은 조상의 영혼이 실제로 제사에 찾아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러나, 종교의식이 문화화 되면 무관한가? 그런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문화행사로 생각한다면, 산신제나 해신제, 장승제나 노제 같은 굿이나 고사에 참여해도 무방하며, 재미 삼아 점이나 궁합을 보는 것도 무관한가? 어려운 시절 타협하지 않았던 천주교회가 이제 미신이 많이 타파된 상황에서 이처럼 돌이키는 것은 유감스럽기 한이 없다.

 

(뉴스앤조이 2000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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