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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 존재의 신비를 하나씩 밝혀가고 있으며, 거대한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고 그 적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를 고통과 범죄로부터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그동안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악에 있으며,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치유를 통해 해결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죄성이 해결되고 신과 같이 완전한 성품을 회복한다는 성화는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이지 않고 인간성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내외의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현대의 유전공학은 죄성을 결함 있는 유전인자로 규정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범죄성향을 제거하면 언젠가 완전무결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만일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기독교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진화론과 우생학


기독교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본질이 불변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원은 인간의 본질이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본래 미생물에서부터 반복적인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현재의 인간이 되었으며, 현재의 인간도 여전히 진화의 과정 속에 있어서 보다 고도의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낙관론은 철학자 헤겔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의 정신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여 결국 완전한 인간의 상태에 도달하리라고 믿고 유토피아를 기대하였다. 물론, 헤겔의 이상주의는 세계대전과 같은 야만적인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근거 없는 환상임이 밝혀졌고, 다윈의 진화론도 실증적 과학의 선을 넘어선 상상의 산물로 나타났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기를 믿는 현대인들은 과학적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신앙과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신부였던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이후 유전학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완전한 인간을 꿈꾸는 인간의 환상을 실현하려는 우생학이 발생하였다.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란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확장시켜 인류를 개량하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1)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에 의해 19세기말 시작되었다. 특히, 독일의 나치정권은 우생학에 따라 순수한 게르만족을 회복하여 세계를 지배하고자 독일인 중에서도 열등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임신을 금지시키고 안락사를 강요하는가 하면 죄없는 어린이들을 수없이 희생하였고, 급기야 악한 유전인자를 가졌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범죄를 자행하기에 이르렀다.2) 우생학은 독일뿐 아니라 영국, 노르웨이, 브라질, 소련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수용되었으며, 미국에서도 1923년 우생학협회를 창설하고 카네기의 지원 하에 우생학 기록 조사소를 운영하며 가계의 유전정보를 수집하였고 캘리포니아를 선두로 우생입법을 추진하였으나, 전후 문제가 되면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3)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서는 1976년까지도 열등한 유전인자를 가진 여성들에게 강제로 임신을 금지하는 법이 유지되었으며, 이 단종법으로 약 10만명의 여성이 자녀출산의 권리를 거부당하였다.4)

 

현대 유전공학의 도전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나치의 우생학적 범죄는 인류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었으며, 그 결과 우생학은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을 꿈꾸는 환상은 죽지 않았으며, 현대 유전공학으로 다시 재기하고 있다.5) 1973년에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시작되었으며, 보다 완벽한 유전자 개입을 위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들의 특성을 연구하는 등 철저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이후 인간 복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작년 말에는 최초로 인간복제가 부분적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다.6)

 

물론, 모든 유전공학이 죄악적이 아니며, 결함을 가진 체세포(somatic cell)의 유전자 치료(gene theraphy)는 의학의 발전으로서 난치병을 치료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7)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고 배아단계의 유전자에 개입(germ-line intervention)하는 유전자 개량(gene enhancement)을 통하여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막지 못할 것이다.8) 실로, 엥겔하트는 유전자 치료와 배아 치료의 구분이 모호할 뿐 아니라 사실상 구별할 수 없으며, 그것은 질병의 이해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인격성(personhood)과 인간성(humanhood)을 구별하고, 우리는 부단한 유전자 개량을 통하여 인간으로 남기를 고집하지 말고 인격에 더 잘 맞는 존재로 본성을 바꾸어 나가야 된다고 주장한다.9) 배아유전자 조작은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려는 무책임한 행위로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환원불가능성(irrevocability)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유전자 치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 분야의 개척자 프렌치 앤더슨박사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지금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토로하면서, 배아 개입은 핵무기보다도 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하고, “스모그로 가득찬 공기, 오염된 하천, 오탁된 지하수, 결함을 가진 핵발전소, 사라지는 오존층의 경우에는 손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만일 우리가 무심코 우리의 유전적 유산을 오염시켰을 경우에는 그 손상을 돌이킬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10) 로버트 쿤이 지적하는 대로, 유전공학의 미래는 “예측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중지시킬 수도 없다.”11) 이러한 인간 개량론적 시도는 기독교의 구원론에 중대한 도전과 위협이 아닐 수 없다.12) 왜냐하면 기독교가 인간 죄악의 문제를 표방하면서도 외부에서 볼 때 가시적 성과가 미흡하였지만, 유전공학이 과학적으로 그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죄악의 문제는 원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도 사실은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한 조상이 범한 타인의 죄를 아무 동의 없이 부과하고, 또 그 죄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인간의 내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13)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두 측면, 즉 죄책과 오염에 대하여, 죄책감(guilt)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억압상태에서 살던 종교적 시대를 탈피한 현대인은 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강박관념은 심층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인간성의 오염(corruption)은 해당 유전인자의 결함에서 유발된다고 판단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개인과 인류 전체의 그릇된 성격과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나 성령의 치료라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잘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기독교의 속죄론과 유전공학의 유전자 치유를 통한 죄성의 해결을 조화시키려는 타협적 노력도 있다. 로버트 브렁스는 기독교의 종말론적 새 인간과 유전공학적인 새 인간의 두 비전이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보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서 인간의 유전공학적 노력을 통하여 기독교의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14) 로날드 콜-터너도 복음서가 강조한 질병의 치유가 약화된 현대에 있어서 신학과 유전공학은 공히 인간에게 결함이 있다는데 동의하며, 결함있는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타락으로 인한 죄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속적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신과 인간은 공동창조자로서 신의 창조사역에 참여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5)

 

유전자 결정론의 오류

 

동물심리학자인 스키너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인간은 하나의 동물로서 본능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하며,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나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16) 유전자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은 인간의 행동이나 성향이 모두 유전자의 필연적 작용이어서, 어떤 유전인자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동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심지어 종교적인 성향도 유전인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17) 따라서, 유전인자를 고치면 행동이나 성격도 달라지며, 반대로 유전인자와 무관한 인간 행동이나 성격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유전인자는 그의 행동과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나 결정권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은 대다수의 유전공학자들 자신도 동의하지 않는다.18) 왜냐하면 유전인자는 가능성일 뿐 결정의 모든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전인자가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 “한 세트의 유전인자가 어떤 특징에 원인적으로 작용하지만, 그와 같은 유전인자들이 그 특성을 일으키기에 ‘충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유전인자들이 그 특성을 일으키는데 반드시 필수적이라는 말도 아니다.”19) 인간의 행동이나 특성은 유전인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필립 헤프너에 의하면, “우리가 우리의 유전인자에 의해 어떤 죄악적 사고를 하거나 이런 저런 죄악적 행동을 하도록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비록 우리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죄도 분명히 우리의 유전인자에 기초하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 그리고 문화적 요인의 다양한 상황이 작용할 때만 가능하다.”20) 실로, 인간의 유전적 구조와 환경적 요인 두가지가 생물학적 적응에 나타난다.21) 유전자는 억압과 표현의 방식을 통해 외부의 영향에 반응하며,22) 양자의 상호관계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유전자는 영향을 받는다.23) 따라서, 알코홀에 약한 유전적 요인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교육과 결단에 의해 중독자가 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무지와 의지 박약으로 중독자가 된다.

 

무엇보다도 신비한 것은 유전자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변이(變異, gene mutation)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있는데, 부모에게서 시작된 변화가 자녀에게서 완성되기도 하고 본인에서 시작한 변화도 있다. 변이의 동인은 신비에 감추어져 있으나, 이와 같은 유전자의 변화를 통하여 모든 인간은 자기의 독특성과 개성을 가지게 되며,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도 서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고, 모든 인류가 동일한 조상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지만 60억 인류가 하나도 정확히 동일한 유전자 집합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전자 결정론은 잘못된 생각이며,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도 얼마나 단순한 발상인지 모른다.24)

 

인간의 영혼과 자유

 

그러면, 인간의 주체는 무엇인가?25) 무엇이 그의 행동과 삶을 결정하며 유전인자와 외부적 영향을 종합하여 최종적인 판단과 지시를 내리는가? 유전자는 분명히 하나의 요인이며 기능이지만, 인격적 판단과 결정의 주체는 아니다. 인간의 주체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불리는 영적이며 초월적인 실체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imago Dei)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영이듯이 인간의 주체도 영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물론 인간은 신과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영육이 결합된 존재이지만,26) 영혼이 죽음에서 육체와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혼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입증한다. 육체는 영혼의 옷이며 도구이며 기반인데, 유전자는 육체의 구성요인일 뿐이다.

 

콜-터너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유기체 외에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고 따라서 유전학과 무관하게 고려될 수 있는 본질적 자아 혹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의아한 형이상학”이라고 규정하고, 과거에 많은 신학자들이 영혼을 육체에 머무는 독립적 실체로 인정하였으나, 그것은 비성경적인 이원론이라고 비판하면서, “비유전적 혹은 비유기적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영혼은 두뇌에 존재하고, 우리의 유전인자가 두뇌를 구성하기 때문에 유전인자가 우리 영혼의 근간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27) 그러나, 영혼은 육체를 아무리 해부해도 찾을 수 없는 초월성을 가지며, 인간이 죽으면 유전인자는 남아 썩지만 영혼은 육체를 떠난다. 영혼은 유전인자로 구성되지 않는 단순성을 가지며, 한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은 영혼에 속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선하고 진실한 마음과 정의감, 심미성, 거룩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을 받았다는 뜻인데, 이는 모두 영혼의 기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며 모두 영적 속성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간의 자유는 신의 자유에서 유래한 영혼의 본질로서, 모든 육체적, 물질적, 환경적 영향들을 통제하고 그것들을 고려하되 기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인격적 판단을 가능하게 만든다. 자유로운 영혼이 주관하는 영육결합체로서의 인간은 유기적이며 종합적이고 전인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분해하고 유전인자라는 물질적 요소로 분석하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따라서, 마치 기계와 같이 부속품을 교체하여 개선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을 개선할 수 없다.

 

바르트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실체적 인간(Der wirkliche Mensch)과 현상적 인간(Der phänomenale Mensch)으로 구분하고, 과학적 지식이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은 피상적이며 진정한 실체는 신적 계시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28) 인간을 유전인자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환원주의(reductionism)적 발상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임스 구스타프슨은 인간을 순전히 하나의 생물학적 조직으로 전락시키는 환원주의적 발상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나 신비감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하였다.29) 폴 쥬웻은 현대에 있어서 “종교는 단순히 심리학이 되고, 심리학은 단순히 생물학이 되며, 생물학은 단순히 큰 분자의 화학이 되고, 큰 분자는 원자들로 구성되는데 원자는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작용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이 물리학이 된다”고 통탄하고, 이와 같은 기계론적 환원주의와 달리,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자아를 아래로부터 (분자들과 전자력의 복합적인 덩어리로) 보기보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로) 이해한다”고 구별하였다.30)

 

하나님의 개별적 섭리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침팬지와 98% 동일하다고 하지만,31) 인간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에 있어서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인격적 존재로서, 신체는 부모의 유전에 의해 부여되지만 영혼은 개별적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다. 그러나 유전공학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두뇌세포의 유전인자로 오해하고 인간의 개성이나 다양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유전자 조작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답변되어야할 질문, 즉 이상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잘못된 철학적 혹은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임한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작업으로서 단순하고 저급한 인간의 한계를 넘지 못하여 수많은 인간 각자에 대한 하나님의 개별적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무조건 모든 사람이 키가 크고 지능이 높으며 피부가 희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획일적이며, 결국 동일한 제품을 찍어내듯이 완전한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을 가상하고 완전한 인간을 복제하려는 인간공장식 사고를 하는 것이다. 물론 유전공학이 모두 나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인간관은 유사하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키가 작고 지능이 낮으며 피부가 희지 못한 사람은 모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인간이어서, 생존이나 생식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나 고난의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비인격적 발상으로서, 인종주의나 민족주의, 또는 신체주의를 결과할 뿐 아니라 신의 창조와 섭리를 비난하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부정하게 만든다.32)

 

모든 인간은 똑같이 창조되지 않았으며, 소명과 섭리는 개별적으로 다르다. 각자의 개성과 은사가 다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 다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고귀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되어야 하며, 어떤 획일적 기준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인간은 그의 독특성과 개성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하며, 결코 인간의 정의나 심사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산드로 스핀산티는 이것을 ‘정의의 금지(the prohibition of definition)’이라고 불렀다.33) 아무도 질병이나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인간은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정금과 같이 성숙하고 깊어지며 교만이 치유되고 약자를 동정하게 된다. 따라서,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장애자에게도 놀라운 섭리가 주어져 있음을 분명히 하셨다. 현세의 고난은 내세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며, 현세에서도 고난을 통하여 영혼의 역량이 확장됨으로서 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물론, 부모에게는 최상의 자녀를 추구할 자유가 있으나, 그것이 결코 자녀의 자결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부모는 유전적 변화보다는 환경적, 교육적 노력을 통해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유전적 개량론은 선택적 낙태와 장애아 무시 등 심각한 자녀 차별을 결과하며, 자기 자녀에 대한 최선이 타인에게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 자결권(self-determination)이란 자기의 가치관과 목적을 스스로 설정하고 그에 따라 자기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로서, 존 롤스는 인간됨의 중심적 조건이 이 자결권이 “최상위의 질서(highest order)”라고 생각하였다.34) 중국이나 한국에서 남아선호로 인하여 수많은 여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희생을 당하고 급기야는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심각한 결혼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부모들이 배아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분상승을 시도할 경우 일어날 혼란과 사회적 균형의 파괴는 가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한 인간은 우주 전체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능력에 근거하는 신적 통치와 조정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우주적 경륜을 가지고 모든 인간을 개인적으로 창조하며 개인적으로 사용하신다.

 

인간의 죄성과 유전

 

물론, 인간의 개성과 유전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방식, 심지어 질병이나 약점도 닮는다. 이러한 유전적 유사성은 유전공학의 개입을 초래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의 문제 가운데에는 수술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신체적 결함도 있으며, 이 면에서는 유전공학이 긍정적인 공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결해야 된다. 영혼은 수술할 수 없기 때문에, 영혼과 관련된 문제들은 영적인 방식으로 치유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부모의 습관적 범죄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는 유전적 변이와 행동의 관찰 혹은 교육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는 자녀의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수술로 해결할 수 없다. 신체에 상해를 가하고 수술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도 잘못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가하고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더욱더 잘못된 것이다.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물론, 죄성은 전인적이며 신체와도 관련이 있지만, 보다 인간의 주체인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의 영혼은 어떻게 죄성을 소유하게 되며, 육체의 죄성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이 문제는 영혼의 기원에 관한 교리와 관련되어 있다. 신학사적으로, 영혼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이론, 즉 영혼이 육체와 함께 부모에게서 유전된다는 유전설(traducianism)과 부모에 의해 육체가 형성되는 순간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하신다는 창조설(creationism)이 대립되어 왔다. 자녀가 부모의 육체적 외모뿐 아니라 정신적 성향도 닮기 때문에 유전설이 실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창조론이 가진 난제, 즉 죄악적인 본성과 죄적 성향을 가진 영혼을 창조한 책임을 하나님이 져야하는 문제를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되었다.35) 그러나, 유전설이 비물질적인 영혼의 분리나 증식을 전제한다는 철학적 문제에 봉착하면서 창조설이 우세하게 되었다. 창조설에서는 하나님이 무죄한 영혼을 창조하여 육체와 결합시킨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무죄한 영혼이 죄성을 가진 영혼으로 변질되는가? 웨인 그루뎀은 하나님이 영혼을 창조함에 있어서 부모의 유전적 성향과 일치하는 영혼을 만든다고 말하지만,36) 그럴 경우 하나님이 죄성을 가진 영혼을 창조함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에게 악한 창조의 책임을 지우게 되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유기적 창조설’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님이 육체에 적응력을 가진 순수한 영혼을 창조하시며, 이 영혼이 죄성을 가진 육체와 결합되어 분리할 수 없는 영육통일체가 되는 순간 순수하게 창조된 영혼이 육체의 죄성을 공유하게 된다는 주장이다.37) 전통적으로, 인간의 영혼과 천사의 영혼이 가진 차이는 육체에의 적응력 혹은 인력(affectio)에 있다고 보았으며, 영혼과 육체의 결합은 우발적(per accidens)이 아니라 본질적(per se)으로서 단순한 혼합(mixtio)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완전한 연합(unio)으로 규정하였다.38) 결론적으로, 인간의 원죄는39) 두 개의 경로를 통하여 개인에게 부과된다. 하나는 죄의 전수(propagatio peccati)로서 부모의 순수하지 못한 씨(semen impurum)를 통하여 유전적으로 육체에 전수되는 오염(corruptio)이며, 다른 하나는 죄의 전가(imputatio peccati)로서 하나님께서 개별적으로 순수하게 그러나 원초적 의가 결여된(privatio iustitiae originalis) 영혼을 창조하고 거기에 전가의 방식을 통하여 부과하는 죄책(reatus)이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가 결합하여 하나가 되는 순간 마치 하얀 솜이 진흙탕에 들어가자마자 더러워지듯이 순수한 영혼은 오염되어, 전인적으로 오염과 죄책을 가진 죄성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과 성화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책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 공동체에게 모두 부과된 법적 형벌이기 때문에 유전자나 육체와 무관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믿고 수용할 때 죄책과 정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로움과 영적 평화가 주어진다. 칼 라너에 의하면, “생명공학은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테크놀로지는 은혜의 수용이 모든 구원의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가 변경하지 말고 수용해야 할 은혜, 즉 우리 유전적 유산의 창조적 은혜를 방해한다.”40)

 

한편, 인간성의 오염은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해결되는데, 먼저 성령의 신비로운 치유를 통하여 인간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영혼의 저항심과 반항심을 제거하며, 자유의 능력을 부여하여 영혼이 주체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행동을 교정하고 신성을 회복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일생동안 계속되는데,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관계 회복이다. 인간의 죄악은 본질적으로 창조자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이러한 단절은 마치 나무에서 잘라진 가지가 뒤틀리고 메마르는 것같이 인간 영혼의 왜곡과 쇠약, 그리고 반항성을 결과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인간과의 관계능력도 심각하게 왜곡되고 약화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문제는 유전자 조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연결하는데 있다. 하나님과의 화해와 교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며, 성령의 치유로 점차 회복되어진다. 십자가는 성화에 있어서도 결정적이다. 그의 고난을 수용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십자가의 사랑을 배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의 죄성을 치유하여 신을 닮은 인간이 되는 비결이다. 유전공학은 일반은총인 과학의 한 분야로서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나, 과학의 선을 넘어서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폴 램지가 지적한 대로, “인간은 신 노릇을 하려고 들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기를 배워야 한다. 인간이 되기를 배운 다음에는 신 노릇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41)

 

1) Allen Buchanan et al, From Chance To Choice: Genetics and Justi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46-52. 우생학은 그럴듯한 주장과 달리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려는 것이다,

(2) 모든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획일적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3) 후손을 생산하는 자유를 침해한다, (4) 전제적인 국가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5) 다수의 희생으로 소수가 이익을 취하는 불의를 범한다.

 

2) Ibid., 37-8.

 

3) Ibid., 31-2, 38-40.

 

4) Sandro Spinsanti, "Gene Theraphy and the Improvement of Human Nature: Ethical Questions", in The Ethics of Genetic Engineering, ed. Maureen Junker-Kenny and Lisa Sowle Cahill, Concilium 1998/2 (SCM Press, 1998), 14.

 

5) Buchanan, 1: “정부와 기업과 과학의 강력한 연대가 인류사회를 새로운 시대로 몰아가고 있다.”; Robert A. Brungs, "Biology and the Future: A Doctrinal Agenda", Theological Studies 50(1989): 703: “현대의 생명공학과 그 가능한 적용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과학적, 기술적 업적이다.”

 

6) 2001년 11월 25일 미국 보스톤 주변에 있는 한 생명공학 회사(Advanced Cell Technology)가 인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였으며,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7명의 여자에게서 난자를 받아, 그중 19개의 난자에서 유전인자를 제거한 다음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인자를 주입하였다. 그러나, 난자가 정자와 결합되지 않고서는 독자적으로 생식할 수 없기 때문에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을 가능하도록 하는 화학처리를 하여 세포증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단지 7개의 난자만이 분할을 시작하였는데, 네개는 두 세포, 두개는 네 세포까지, 그리고 한 개만이 여섯 세포로 증가하다가 모두 죽고 말았다. 따라서, 이 실험을 실패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최초로 복제된 인간의 생명이 3일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에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가공할 미래를 예측하게 만든다. 졸고, “인간복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크리스챤 투데이} 2001년 12월 5일자 또는 Http://jsrhee.hihome.com/cloning2.htm를 참고하라.

 

7) Philip Hefner, "Determinism, Freedom, and Moral Failure", Dialog 33(1994): 24. 교회는 전반적으로 배아개입에는 부정적이지만, 질병의 유전자 치료에는 긍정적이다.

 

8) W. French Anderson et al, "Will Gene Theraphy Change the Human Nature?" Debate on Closer To Truth, Http://www.closertotruth.com/topics/healthsex/205/205transcript.html: "우리는 이미 인간 배아공학의 용감한 신세계로 들어왔다.“

 

9) H. Tristram Engelhardt, Jr., "Persons and Humans: Refashioning Ourselves in a Better Image and Likeness, Zygon 19(1984): 281-295.

 

10) Anderson, Debate; J. Robert Nelson, On the New Frontiers of Genetics and Religion (Eerdmans, 1994), 117.

 

11) Robert Lawrence Kuhn, Debate.

 

12) Ronald Cole-Turner, The New Genesis: Theology and the Genetic Revolution (Westminster/John Knox Press, 1993), 87: “만일 유전학적 연구가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념이나 행동이 ‘그들의 유전인자의 결과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한다면, 신학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것이다.”; Brungs, 703: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 혁명은 교회의 교리적 이해에 결정적인 요구를 제기할 것이다.”

 

13) Hefner, 26-7. 헤프너는 인간에게 있는 근본적인 긴장들, 즉 유전자와 문화의 긴장, 개인성과 사회성의 긴장, 그리고 인간의 태생적 한계와 오류로 인한 긴장이 존재하여 내적인 갈등이 상존하는데, 이를 기독교의 타락과 원죄 교리의 생물문화학적 근거로 이해하였다.

 

14) Brungs, 705-8.

 

15) Cole-Turner, 80-109.

 

16) Burrhus Frederic Skinner, Beyond Freedom and Dignity (Bantam Books, 1971); Jacques Monod, Chance and Necessity (Collins, 1972). 유전적 결정론의 주창자들은 상당수가 동물학자 혹은 동물심리학자로서, 인간을 동물로 보는 물질적이고 진화론적인 전제에서 출발하며, 이것은 과학의 선을 넘어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리처드 르원틴, {DNA 독트린}, 김동광 역 (궁리, 2001)을 참고하라.

 

17) Edward O. Wilson, On Human N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8), 205.

 

18) Kuhn, Debate: “여기 있는 누구도 유전학이 도덕이나 신비주의나 그와 같은 다른 인간의 품성을 완전히 결정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유전자는 하나의 성향(predisposition)을 제공할 뿐이며... 거기에 가족과 문화와 사회의 보다 강력한 영향이 작용한다.”

 

19) Buchanan, 353-370.

 

20) Hefner, 28.

 

21) David Cole, "Genetic Presdestination?" Dialog 33(1994): 18.

 

22) Ibid., 19. 최초의 세포분열 이후 얼마 안되어 모든 세포가 동일한 유전인자를 가지지만 서로 다른 표현형태(phenotype)로 발전하는데, 이와 같은 차별화(differentiation)는 유전정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각기 다른 표현의 패턴을 산출하는 신비한 변화를 결과한다. 그러면 과연 무엇이 동일한 유전인자를 가진 동일한 세포를 서로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는가? 한 세포안에 있는 10만여개의 유전인자중 대부분은 억압되고 극소수가 표현됨으로서 그와 같은 차별이 발생하는데, 그 동인은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고 단지 내부와 외부의 환경에 대한 생물학적 적용으로 추정된다.

 

23) Ibid., 19-20. 인간의 두뇌는 약 100만개의 신경원(neuron)이라고 불리는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뉴론들은 수많은 돌기를 통해 신호를 전달하는데, 돌기와 돌기가 만나는 부분을 시냅스(synapse)라고 한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이러한 시냅스가 학습이 증가할수록 증가하며, 성인의 경우에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즉, 외부의 영향은 심지어 내부의 구조까지도 변화시킨다.

 

24) Ibid., 21-2: “학습과정에서 두뇌에 발생하는 인간의 마음과 유전적 표현의 패턴의 협력작용은 그 자체가 보다 폭넓은 이해를 암시한다. 두뇌와 신체의 유전적 표현이 차별화되는 패턴은 후속적 상호작용을 위한 기초를 수정하면서 인간의 영혼이 계속 활동하는 기반으로 인정될 수 있다.”

 

25) Brungs, 698-701. 그는 “현대의 가장 주요한 교리적 이슈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며, 특히 “현대 교회를 괴롭히는 모든 주요 이슈들이 바로 우리 신체의 의미에 집중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대신학은 신체에 대한 교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6) Nelson, 101-2. 그에 의하면, ‘영육통일체(psychosomatic unity)'라는 인간관은 최근 의학에서 개발된 용어이지만, 그 기원은 성경에 있으며 그리스의 물질주의나 인도의 영혼주의와 다른 제3의 인간관으로 서구에 정착되었는데, 이 성경적 인간관이 현대의 유전공학과도 조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7) Cole-Turner, 87-8.

 

28) 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II/2, 236-241.

 

29) James M. Gustafson, "Where Theologians and Geneticists Meet", Dialog 33(1994): 9, 14.

 

30) Paul K. Jewett, Who We Are: On Dignity as Human: A Neo-Evangelical Theology (Eerdmans, 1996), 7-8.

 

31) Nelson, 98.

 

32) Michael Ruse, "Genesis Revisited: Can We Do Better Than God?" Zygon 19(1984): 297-316. 그는 인간의 본성을 여섯가지 범주로 나누고 유전공학적 개입을 통하여 인간의 능력을 상향시켰을 경우들을 하나하나 점검한 뒤에, 그럴 경우 엄청난 혼란과 불행을 야기하며 오히려 현재의 상태가 최적이라고 평가하고 “하나님이 별로 잘못하지 않았다!”는 긍정적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모든 인류가 모차르트와 같이 오페라를 작곡한다면 수십억개의 오페라를 어떻게 감상하겠으며, 개같이 모든 냄새를 맡는다면 어떻게 살겠는가? 유전적 변화를 시도하려면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정당화가 생가처럼 쉽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33) Spinsanti, 20.

 

34) Buchanan, 156-161, 214-8.

 

35)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Eerdmans, 1941), 199-200. 스트롱이 창조론에 대해 가장 심각한 반론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은 만일 영혼이 처음부터 타락한 성향을 소유하도록 창조되었다면 하나님을 도덕적 죄악의 직접적 창조자로 만들며, 만일 영혼이 순수하게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이 순수한 영혼을 불가피하게 오염시킬 육체에 결합시켰다고 가르침으로서 하나님을 도덕적 죄악의 간접적 창조자로 만든다.”

 

36)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IVP, 1994), 485.

 

37) G. C. Berkouwer, Man: The Image of God, tr. Dirk W. Fellema (Eerdmans, 1962), 288-92.

 

38) 하인리히 헤페, {개혁파 정통교의학}, 이정석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I: 331-5.

 

39) Ibid., 496-506; Grudem, 494. 그루뎀은 원죄(original sin)을 유전된 죄 혹은 상속된 죄(inherited sin)라고 고쳐 불렀다. 그 이유는 원죄라는 말이 나와는 무관한 아담의 죄로 오해될 수 있는 반면, 유전된 죄라는 말은훨씬 더 직접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오해를 상당히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원죄를 의미하는 Erbsunde라는 용어도 직역하면 유전된 죄라는 뜻으로, Otto Weber의 영역판 Foundations of Dogmatics, I: 596ff에서도 '유전된 죄(inherited sin)‘라고 번역하였다.

 

40) Cole-Turner, 65.

 

41) Paul Ramsey, Fabricated Man: The Ethics of Genetic Control (Yale University Press, 1970), 138.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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