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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아무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태어난 사람도 없다. 인간은 자의(自意)에 의한 존재가 아니라 타의(他意)에 의한 존재인 것이다. 더구나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나 가치의 개념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어져 있다. 자기가 스스로 이성이나 양심이나 감성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무한정의 자유와 자의가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데 여러 길로 갈 수 있어 자유로운 것 같아도, 사실은 동해와 서해로 갇힌 한반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은 결국 자기를 자기가 디자인하지도 않았고 자기를 창조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수동적으로 태어나진 존재로서, 생명도 죽음도 모두 회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의적 존재인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올바로 산다는 것은 바로 자기를 존재하게 만든 타의를 발견하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다. 도대체 나를 만든 타자는 누구이며, 타의는 무엇인가? 모든 인간에게는 그 타의를 찾아야 되는 절대명령이 부여되어 있으며, 그것을 빨리 찾을수록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 공자는 50세에 지천명(知天命)을 목적하였으나, 인생을 다 살아버린 다음에야 천명을 안다면 얼마나 후회스러운 일인가.

신앙은 자기를 창조하고 세상에 보낸 타의를 발견하고 그에 순종하는 것이다. 자기 인생을 향한 하늘의 명령,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에 따라 사는 삶이 후회하지 않을 보람있고 영원한 인생이다. 자유와 방종은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자체도 타의적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미주판, 20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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