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우리는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류역사상 아마 현대와 같이 불안한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오랜 농경사회가 끝나고 이미 산업사회로 전환되었으며, 이제 21세기는 정보산업이 주도하는 후기 산업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적 주류에서 소외 당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도 지난 2천년 역사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사도시대 이후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구교회가 몰락하고 제3세계 교회가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신앙형태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전환시대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결혼관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 결혼관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결혼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언론에는 최초의 합법적인 동성애 결혼식이 보도되고 두 남성이 혼례 키스하는 흉측한 장면의 사진이 게재되었다. 네델란드 정부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뿐 아니라 이성결혼과 동등한 법적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는 실로 오늘날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전통적 결혼관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며 파괴인 것이다. 동성애가 고대에도 간혹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현대에 급격히 발생하였으며 확산되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억제되는 듯 하였으나, 동성애자들은 조직적으로 자기들을 변호하고 정당화하면서 법적, 사회적 보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90년대부터 시작된 동성애운동이 대학가로 번지고 상당수의 동정자들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보다 전반적인 위협은 이혼과 재혼의 일반화현상이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이혼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지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금기가 현대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에 4퍼센트였던 이혼율이 벌써 30퍼센트에 이르렀으며, 이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혼율의 상승은 여성의 교육과 사회활동의 신장에 비례한다. 현대의 여성운동은 오랜 남존여비의 구습을 타파하는데 공헌하였으나 결혼의 비신성화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었다. 결혼의 세속화는 이제 더 이상 결혼을 신적인 운명이나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단순한 인간의 선택으로서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풍조는 사회의 비종교화와 함께 남녀 모두에게 일반화되고 있다. 현재의 결혼생활이 불행하고 이혼 혹은 재혼이 더 행복하리라고 판단되면 더 이상 참거나 지체하지 말라고 권고한다. 물론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상황은 매우 혹독한 경우가 많으며, 처참한 상황에서의 탈출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들이 당하는 극한상황에 처했다면 이혼을 결심했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이 정당화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의 사랑이 부족하고 심지어 미움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상대의 사랑이 식었기 때문에 이혼한다는 말도 사실은 자기의 사랑이 식었다는 말이다. 본래 상대의 사랑이 조건이 되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이 참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쉽사리 무력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이해와 관용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임은 부정할 수 없다.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불효나 불순종도 극복하는 일방적 사랑이듯이, 부부간의 사랑도 그래야 한다. 가족은 위기상황을 사랑과 이해로 지혜롭게 극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극단적으로 단절해서는 안된다.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도 대부분의 경우 환상에 불과하다. 재혼자의 90퍼센트가 기대에 못미친다고 고백한다. 울부짖는 자녀들이나 친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감행한 이혼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후회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이혼의 일반화는 가정을 파괴하고 편모 혹은 편부 가정,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을 증가시켜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더욱이, 동거의 확산은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성생활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무책임한 쾌락주의에서 유래하였다.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쾌락과 자기이익만을 원하는 남녀의 조건 없는 동거는 언제든지 싫증이 나거나 실망하면 헤어지기 쉽다는 이유에서 확산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동거관계에서는 임신이나 출산이 거부되지만, 수많은 낙태와 기아들을 발생시킨다. 그뿐 아니라, 실험적인 계약결혼은 이미 결혼의 몰이해에서 출발하며, 따라서 오래 갈 수 없다. 그 외에도, 성윤리의 파괴로 인한 불륜의 확산, 남녀의 성적 역할에 대한 무시, 현대의 사회적 불안, 그리고 자본주의적 경제논리도 건전하고 행복한 결혼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그러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첫째로, 결혼의 신성함과 불가해성을 확신해야 한다. 결혼은 남자의 독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하나님의 자상한 판단에 근거하여 여자가 창조되고 결혼제도가 제정되었으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과 나눌 수 없음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우연히 남녀가 만나서 자신들의 선택과 의사에 의하여 결혼한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언제든지 자신들의 선택과 의사에 의하여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부의 짝지움이 인간의 자의적 선택과 우발적 만남 같아도 사실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의 신성함을 불신하거나 서로 나누는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순종과 범죄에 해당한다. 특히, 교회는 이 점에서 결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신앙이 무너지면 자유로운 현대에서 결혼의 와해와 가정의 파괴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결혼을 경시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둘째로, 결혼과 출산을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단지 남녀의 편의나 성욕의 만족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자손의 번성과 그를 통한 인류의 발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섭리의 고귀하고 필수적인 은총이다. 이는 남녀가 사랑을 통해 한 몸이 될 때 새로운 생명의 축복이 주어지는 출산과 번성의 길이다. 따라서, 결혼은 인간의 존재기반이며 창조목적의 실현이다. 모든 인간은 결혼으로부터 태어나며 결혼을 통해 새로운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이 부부의 사랑 가운데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양육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오묘하고 고귀한 뜻이다. 따라서, 부부의 결혼관계 밖에서 태어나거나 부모의 사랑 밖에서 자란 사람은 사랑의 결핍과 인간성의 약화를 회피할 수 없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가 정상적이고 우월한 관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모든 인류가 동성애를 추종하게 되면 인류는 한 세대 안에 모두 멸절하고 말 것이다. 실로, 창조질서란 보존의 원리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질서를 거스르면 자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자녀 출산을 거부하는 자유동거나 계약결혼도 모두 창조질서를 거부하는 죄악이다. 물론, 모두 결혼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결혼은 인간의 정상적인 과정이며 자기실현의 길이다. 현대에 많은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결혼을 거부하거나 이혼을 선택하지만, 결혼이야말로 자기의 성을 실현하여 자기의 창조목적을 성취하는 길이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성취했다 할지라도 결혼생활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인간의 지고한 행복과 만족에 도달할 수 없다.

셋째로, 교회는 그릇된 결혼관과 그로 인한 문제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전개해야 한다. 교회학교는 성경적인 성교육을 실시하며 성의 소명과 순결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결혼을 앞둔 청년들에게 필수적으로 결혼예비학교 과정을 수료하도록 하여 올바른 기독교의 결혼관을 확립하게 함으로서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한 신혼부부들을 위한 과정을 개발하여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하고, 또한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는 교인들을 위한 위기상담을 제공해야 한다. 교회는 자주 설교나 교육을 통하여 결혼의 고귀함과 성공적인 부부생활의 성경적 원리를 적용력있게 안내해줄 필요가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한 교인들이나 이혼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마리아 여인을 친절하게 감싸준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아 이해와 사랑으로 대하고, 나아가 이혼자 그룹이나 재혼자 그룹을 위한 교육과정을 설치하여 자기의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지도해야 한다. 가정이 붕괴되고 결혼이 경시되는 현대사회 속에서 교회는 외면이나 비난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활발하고 전문화된 가정사역과 결혼교육을 전개해야될 시대적 사명이 있다.

 

(2001년 5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