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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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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지식의 실존적 필요성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우리의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구성되는데, 전자 없는 후자가 불가능함은 우리 자신을 규범화하여 높이며 우리의 진실한 모습, 즉 악함과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I.i.1-3). 사6장의 실례는 이사야의 올바른 자기지식이 하나님과의 대면에서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Martin Buber는 그의 명저 Ich und Du에서 인간 스스로의 독자적인 지식은 불가능한데, Ich und Es가 아닌 Ich und Du에서 진정한 자기지식이 가능함을 역설하였고, 이는 현대의 인간이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Paul Tillich도 인간은 진리와 존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있어서 반드시 질문해야 하며 질문할 능력이 있는 존재로서,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신은 우리 존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J. I. Packer는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동시에 알려지는 것으로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신지식은 상호성을 갖는 대화와 같은 실존적 지식이지, 단순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다. 인간은 투기된 존재(하이덱거)로서 우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의에 의해 존재와 양식이 결정된 운명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는 나를 존재하게 한 그 타자와 타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 현대의 신이해

인류는 오랜동안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고, 신을 두려워하며 예배해 왔다. 그러나 현대에는 신에 대한 회의와 부정이 편만하고 있다. 아담과 노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그리고 모세에게 나타나 그의 이름(여호와)을 가르쳐주신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 강림과 임재, 초대교회의 강력한 성령의 임재는 오늘날 회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과거에 그토록 분명히 임재하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가? 기독교의 세속화 속에서 현대인은 신의 일식(eclipse of God)을 느낀다. 이에 조급한 급진신학자는 신의 죽음이나 신의 세속화를 부르짖기도 한다. 반면에 신비주의적 감정이나 초자연적 현상속에서 신의 임재를 느끼려고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가 겨우 그러한 현상이었는가? Gordon Kaufman은 God the Problem에서, 현대 신 이해의 중심적 문제는 신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인식론적 과제라고 말한다. 과학적 세계관과 물질적 사고에 젖어있는 현대인이 어떻게 신을 이해할 수 있는가? 초월적 존재를 현상적으로 이해한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나아가 과연 현대인에게 영적인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 감수성과 이해력이 있느냐도 문제가 된다. John Courtney Murray는 The Problem of God에서, 성경적인 문제는 신의 임재, 신학적인 문제는 신의 이해, 그리고 현대적인 문제는 신의 죽음이라는 구조로 설명하는데, 신의 임재 문제는 실존적인 문제로서 가장 중심적이다. 그는 하나님 없는 사람(godless man)에 대한 논의에서, 성경적인 3형태는 하나님의 백성 안에 있는 신자들의 실천적 불신앙, 하나님의 백성들 밖에 있는 정치적 무신론, 그리고 자연을 연구하지만 창조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하나님 없는 철학자로 이해하며, 현대성의 2형태는 계몽주의 이후 귀족적 무신론을 추구하는 학원의 형태와 부르조와 무신론을 추구하는 시장터의 형태가 있다고 분석한다. 포스트모던니티의 형태로는 유물론적인 공산주의 세계혁명의 형태와 환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극장의 형태를 제시한다. Eberhard Jüngel은 과거의 신에 대한 질문이 현대에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의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보고, 성경에서는 의로운 하나님에 대한 질문, 유도적인 질문, 그리고 누구의 하나님이냐의 문제로 나타나지만, 현대에는 좌절에 처한 인간의 실존적 질문, 자연을 파괴한 후 하나님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질문, 하나님을 정죄하고 죽음을 선고하는 질문,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장소에 대한 질문으로 제기된다고 보고, 임재와 부재의 문제는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와 다르며, 신비스럽게 숨어 계시는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루터가 말한 계시의 하나님(Deus revelatus)과 은신의 하나님(Deus absconditus) 이해를 고려하라. David Wells는 God in the Wasteland에서, 복음주의는 현대에 급성장하지만 하나님의 경시(weightlessness)가 만연하다고 판단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실천적으로 떨어지고 교리가 무시되는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복음주의의 부흥과 하나님의 경시라는 모순된 현상은 주관적 신앙의 상승과 객관적 신앙의 하락으로 설명한다.

 

현대의 신이해가 가지는 문제는 신의 철학적 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 Walter Schultz는 <근대 형이상학에 있어서 철학자의 신>이라는 저서에서, 데카르트의 회의를 통한 신개념의 창출과정이 가지는 문제점을 분석한다. 대립개념으로 불가피하게 논리적으로 가상된 신은 결국 인간으로 인식되고 Feuerbach, Nietsche의 사상을 배태하며, 하이덱거에서는 무(Nichts)로 연결된다. Pascal은 이미 이러한 위험을 예고하였다. 현대심리학도 인간의 마음을 절대적 존재로 상정하기에 이르렀다(Paul C. Vitz, Psychology as Religion: The Cult of Self-Worship). 동양철학도 천중심의 다신론사상으로서, 배종호는 신학적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를 거쳐 실천적 단계에 이르렀다고 분석하였다. 박봉랑은 <신의 세속화: 신의 죽음의 신학과 현대신론의 과제와 전망>에서 현대 신론의 문제를 상세히 설명한다.

 

3. 신 존재 증명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신학대전> 제1부 제2문에서 아리스토틀의 부동의 동인 혹은 제1원인을 이용하여 5종의 신 존재 증명을 제출하였으며, 칸트는 전통적인 유신론증은 대표적으로 3종(우주론, 목적론, 존재론적 논증)으로 보고, 가장 대표적인 존재론적 논증이 존재와 술어(속성)를 동일시한 오류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도덕론적 논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과연 이성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여 불신자를 납득시키고 신앙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존재론적 논증을 창출한 Anselm도 이미 믿는 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구하였으며, Alvin Plantinga도 그것은 “증명(proof)”이 될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이성에 상반되지 않음을 보조적으로 확인하는 방편일 뿐이어서, 유신논증은 “유신론의 진리성이 아니라 그 합리적 수용가능성을 수립한다”고 결론지었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에서, 그리스도 없는 신이해의 허무함과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기독교의 신 이해는 철학적인 이해가 아니라, 인격적이며 관계적이고 그리스도를 통한 이해여야 한다. 유해무는 <개혁교의학: 송영으로서의 신학>에서, 이런 이유로 전통적인 신론 순서에 이의를 제기한다. 과정신학이 기독론 중심에서 벗어나 신론 중심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도 그 문제의 본질을 스스로 자증한다.

 

4.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유명론적, 혹은 연역적인 철학적 이해를 배격하고, 성경에 나타난 계시된 하나님의 성품이해가 필요하다.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그의 완전한 불가해성을 고려해야 한다. Ronald Nash가 그의 The Concept of God: An Exploration of Contemporary Difficulties with the Attributes of God에서 지적한대로, 하나님의 통전적 인격과 자유라는 차원이 강조되지 않고 개별적 속성이 절대화되는 한 어려움이 있다. C. Wade Savage는 전능의 문제가 철학적으로 절대화될 때 오는 문제를 “바위의 비유”로 설명하였다. 그리고 신의 개념 이전에 속성의 개념을 두는 것은 아리스토틀적이며 선험적인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고통을 당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전통적으로 부정되어 왔으나, 현대에는 많은 긍정적 수용을 받고 있는데, 이는 몰트만의 <십자가에 못박힌 하나님>에 힘입은 바 크다. Aadrianus van Egmond는 신의 고통(수난)은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능력의 표현이어서, 그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이 연결된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는데, 하나님이 주체인 한 고난은 사랑의 한 형태이며 인간의 고난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언급은 신인동형론(anthropomorphism)적이라는 부룬너의 지적은 의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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