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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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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는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 존재의 기반(基盤, Ground)”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서 자기인생의 의미를 부인하고 자기존재를 허무화한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우리 답변의 가부에 의해서 하나님을 존재시킬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 자신을 절대화하는 과대망상에서 비롯된 잘못이다. 오히려, 나의 존재를 심각하게 질문해야 한다. 의존적인 존재가 절대적인 존재를 의문화하거나 질문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질문하는 유일한 정당성은 긍정과 경배의 과정으로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존재를 성찰하고 증거하는데 있다.

 

1. 성경의 증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의 존재는 질문이나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는다면, 말씀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는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과 그로 인한 지적 우매에서 비롯되었으며, 단순한 지적 무지의 선을 넘어 사악하고 착란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와 “악인”이라고 결론짓는다.

.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악인은...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10:4).

하나님의 부정이 “어리석음”(foolishness)인 이유는 세계가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지성은 충분히 그 사실을 인식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19-20). 소위 “세상의 지혜”는 어리석음으로 전락하여 가장 분명하고 기본

적인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우주에 대한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방적인 선포의 성격을 갖는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인류를 어리석음에서 구원하고자 하신다(고전1:20-21). 왜냐하면,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알고 그를 두려워하는데 있는데(잠1:7), 지성이 우매해진 인간이 하나님을 올 바로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요14:6).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존재와 신성을 아는데 있기 때문에, 선지자 호세아는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고 외쳤으며(6:3),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날이 도래하는 비전을 보았다(11:9).

2. 일반계시의 증거(有神論證)

 

이제 근본적으로 우매해진 인간의 지성은 하나님의 존재를 여러 모양으로 부인하고 있다. 왜곡된 논리를 사용하여 주장하는 ‘이론적 무신론’이 있는가 하면, 실제 생활에서 전혀 하나님을 인식하지도 고려하지도 않는 ‘실천적 무신론’도 있고, 현대에는 말로는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관념적 추상으로 대치하는 ‘철학적 무신론’도 대두되었다.

 

이런 지적 우매를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여 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러한 유신논증의 시도가 “필요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고 하여 거부하였다. 신자는 이미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으므로 필요하지 않고, 불신자는 신앙이 없기 때문에 이성적 논증으로 그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시키는 것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옳고, 하나님의 존재는 믿음으로 수납되지만, 루이스 벌코프의 말대로 “기독교신앙은 맹목적 신앙이 아니라, 증거에 근거하는 신앙이며, 이 증거는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하나님의 자연계시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자연계시가 증거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신논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 대표적인 5가지의 논증을 소개한다.

(1) 존재론적 논증(ontological argument): 우리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현상이 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한 존재의 개념”이 있다는 것이다. 안셈은 이 이성적 사실을 지적하면서, “실제적인 존재가 사고 속의 존재보다 더 완전한 개념”이므로 절대적인 하나님은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가 인류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을 넣었을까? 철학자 데카르트는 우리 인간도 세계도 유한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코 이런 개념이 인간이나 세계에서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완전한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2) 우주론적 논증(cosmological argument): 모든 자연현상에는 인과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즉,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 모든 존재는 그를 존재하게 한 원인적 존재가 있으므로, 이러한 인과의 고리를 끝까지 따라 올라가면 궁극적인 원인, 즉 “제1원인(causa sui)”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원인을 포용하고 있는 제1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는 의심될 수 없다. 더욱이, 우주는 하나의 상호작용조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복수의 제1원인이 아니라, 한 분의 원인자가 있어야 한다.

(3) 목적론적 논증(teleological argument): 이 세계나 인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놀라운 질서와 조화, 지성과 목적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지성이나 경륜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고도의 지성과 경륜을 가진 “위대한 설계자”의 걸작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우연의 산물일 수 없을뿐 아니라 저급한 지성의 작업이 아니고, 의식적이고 지성적인 절대자 하나님의 창조로서 지고한 경륜과 목적이 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 분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

 

(4) 도덕론적 논증(moral argument):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 이 양심과 도덕성은 선과 정의를 추구한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데, 양심의 법에 의해 도덕적인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인생의 모순이며 근본적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류도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결코 충분하지도 않으며 그것이 끝이라면 우리의 도덕성이 장애가 될 것이다. 양심과 도덕성이 “절대명제”라면, “양심법의 수여자이며 심판자”로서 완전한 정의를 실현시켜줄 하나님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5) 역사적/인종학적 논증(historical/ethnological argument): 인류 역사상 모든 시대 모든 인종은 하나님의 개념과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대체적인 우상을 거부하지 못했다. 이는 인류가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을 거부할 수 없다는 역사적, 인종학적 증거가 된다. 심지어 인류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현대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중단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한 시대나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본질적 문제로서, 하나님의 존재는 부정될 수 없다.

 

이러한 논증들은 매우 강력한 논리성을 가지고 있어서 기독교신앙을 변증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신앙으로서만 가능하다. 이성적인 논증들이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불신자들을 설득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영적 저항성 때문이다. 신앙은 단순한 지적 인정뿐 아니라 인격적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논리적 강요에 의해서 굴복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유신론증은 영적 반항성이 치유된 우리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증거하는 자연계시를 받아들여 우리의 신앙을 더욱더 풍요하고 강화시키는데 사용된다. 사실, 철학자의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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