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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6)

영혼과 초월을 찾아서

모던이즘이 범한 최대의 오류는 종교를 부정한 것이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포하였고, 볼테르는 백년 안에 종교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칸트는 종교를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고, 헤겔은 이성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인도해 주리라 확신하였다. 종교는 대표적인 반이성적 체계로 규정되어 냉소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미개한 인간들을 현혹해왔으나 이제 더 이상 인류를 기만할 수 없다고 정죄하였다. 따라서 이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종교는 부정되고, 모던적 종교는 이신론이나 유니테리안이즘과 같이 기적이나 인격적 신이나 초월세계와 같이 비이성적인 신앙을 제거한 자연종교나 이성종교로 제한되었다. 이에 기독교도 전반적으로 합리화, 세속화, 그리고 내재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종교 없는 시대(post-religious society)의 도래라는 예언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와 함께 거짓 예언으로 드러나고, 오히려 대규모의 종교적 부흥을 경험하고 있다. 한스 큉이 지적한 것처럼, “종교가 사멸하리라는 것은 심각한 환상이었다.” 현대인들이 종교를 다시 찾게 된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다. 하나는 현대인이 물질적 풍요 가운데서도 정신적 공허를 느끼며 인생의 허무와 무의미라는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존재로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충족되지 못하면 무의미와 허무감으로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위기 상황에서 초월적인 절대자에게 의지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교성은 민족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공존한다. 인간은 결코 진화론이나 모던이즘이 이해한 고등동물이나 논리기계가 아니라,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고귀한 영적 존재이다.

더욱이 현대인들은 물질문명과 테크놀로지 문화에 대해 심각한 불만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전으로 생활이 보다 편리하고 풍족해졌지만, 신과 초월을 부정하고 인간과 현세만을 추구하는 현대의 시스템이 인류를 종속시키고 급기야는 멸망시키리라는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르네 듀보는 “테크놀로지가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본질상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보았으며,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인류가 “우리를 섬기도록 창조한 기계의 종이 되어가고 있다”고 결론 내렸고, 마르틴 하이덱거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갈수록 빨라질 것이며 아무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점점 더 테크놀로지의 힘에 의해 포위되고 목 졸려지게 될 것이다”고 개탄하였다. 많은 환경론자와 미래학자들도 현대의 기계문명이 결국 환경의 파괴와 시스템의 내부마찰로 인류파멸을 결과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현대인들이 부분적인 혹은 전면적인 대안으로서 영혼과 초월에 관심을 가지고 종교로 돌아오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종교를 부정한 결과 현대사회가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인류 사회의 기초를 제거하게 되면 모든 것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모든 가치와 윤리가 절대자의 권위에 기초하여 건설되었는데, 절대자를 부정하게 되면 절대가치와 절대윤리가 근거를 상실하고 흔들리기 시작하며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혼란에 돌입하게 된다. 근대의 이성주의자들은 이성이 신의 역할을 대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지만, 신과 분리된 타락한 이성은 만인의 창녀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모두 자기주장을 정당화하여 가치의 춘추전국시대를 초래하고 이데올로기들의 각축전 양상을 결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심각한 가정의 붕괴와 성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리며, 국가도 패륜과 불의를 합법화함으로서 몰락을 자초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가정과 사회의 위기에 직면하면서 다시 종교와 절대자의 필요를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부흥은 다분히 반동적이어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포스트모던 종교는 반이성적이다. 모던이즘이 종교를 친이성적 종교와 반이성적 종교로 나누어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로 구분하고 후자를 미신으로 무시하였는데, 이성주의에 반발한 종교성은 오히려 보다 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종교를 선호하게 되었다. 대표적 포스트모던 종교인 뉴 에이지(New Age)는 반문화적인 히피운동이 인도종교의 구루들을 초청하여 형성된 것으로 이성이나 윤리에 역행하는 온갖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행위가 난무하며 무엇이든지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환영한다. 둘째, 포스트모던 종교는 문화적이다. 종교란 절대자를 섬기며 그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었으나, 현대인들은 신에 대한 인격적 헌신은 배제하고 종교적 테크닉만을 배워 향유하려는 종교문화생활을 추구한다. 요가와 기 수련, 선과 명상, 접신과 점괘와 같은 문화종교가 확산되고, 심지어 자본주의적 기업에서도 이용된다. 셋째, 포스트모던 종교는 이기적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신에게 헌신한다는 생각보다 종교를 자기실현의 방편으로 이용하며, 심지어 신의 경지에 이르려 한다. 이는 석가가 수행과 해탈을 통하여 부처가 되려한다든지 수련을 통하여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경지에 이르려는 도가와 같은 인간 중심적 종교와도 상통하며, 만물은 모두 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만인은 그러한 신성을 개발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뉴 에이지 종교의 교리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진화론이나 심리학이 가르친 의식이나 마음의 개념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영혼을 회복하기 원하여 영성의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로버트 풀러가 그의 저서 [영적이지만 종교적이 아닌 사람들 Spiritual, But Not Religious]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대에는 특정한 신을 섬기는 종교에 소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영성을 가꾸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 국민의 20퍼센트가 여기 속한다고 분석하였다.

이와 같이 종교의 회복은 원하지만 신을 섬기려고 하지 않는 포스트모던적 종교성은 진정한 종교가 아닌 사이비종교와 유사의미를 도입하여 인간의 종교성을 충족시키려는 그릇된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토마스 몰나가 경고한 것처럼, 이러한 추세가 기독교의 부흥으로 예방되지 않는다면 대규모의 재이교화운동(repaganization movement)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을 매료하고 있는 마술과 환타지(fantasy) 문화가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서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복음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신비주의와 종교다원주의, 그릇된 영성운동, 그리고 휴거와 재림 환타지가 유행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시대적 추세를 활용하여 복음적 기독교를 회복할 것인가? 첫째로, 모던 시대에 상실한 초월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 니케아신경이 고백하는 대로,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하였고 하늘이라는 초월 세계에 계시며 현상 세계를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을 포함한 보이지 않는 초월 세계와 영적 존재들, 그리고 기적과 신비의 실체적 수용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요건이다. 물론 현상 세계와 초월 세계 둘 다 동일한 하나님이 주관하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동일한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현상과 초월, 자연과 신비, 이성과 종교가 대립보다는 통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되, 체험보다는 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로, 교리와 제도적 교만으로 무시되었던 성령이 존중되어야 한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중생할 때 우리 영혼에 임재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사를 존중하여 겸손하고 부드러운 조력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성령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가면 성령의 역사가 기본적이지만, 성령을 항상 의식하고 존중하고 따르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며 놀라운 열매들을 결과한다. 그러나 모던 교회는 교리와 제도로 만족하고, 사실상 성령을 소외시켰다. 그러나 부흥운동과 선교운동, 그리고 급기야 20세기 초에 발생한 성령운동으로 다시 성령을 회복하기 시작하였으며, 오순절교회가 가장 성장하였고 성령의식이 많은 교파로 확산되었다. 물론 신비주의로 기울어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였으나, 성령이 현상세계와 초월세계를 연결하는 하나님이며 우리 영혼과 교회의 유일한 지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그의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역사가 충만하도록 존중되고 추종되어야 한다.

 

셋째로, 이성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어준다는 세속적 환상을 버리고 성경적 역사관을 확립해야 한다. 무역사적이고 무방향적인 신비체험이나 영성의 추구는 숲을 보지 못한 채 한 그루 나무에만 매달리는 오류를 범하게 만든다. 창조, 타락, 구속, 성취라는 구속사적 역사의식과 재림, 부활, 심판, 영생의 종말론적 구도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에 대한 비전 아래 모든 종교적 행위를 복속시켜야 포스트모던적 종교성으로 탈선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모던이즘이 이성으로 대치하였던 영혼을 복구하여야 한다. 영혼은 인간의 비육체적 요소로서 지정의를 포함하는 전인적 실체이며 인격의 좌소로서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와 교제할 수 있는 본질적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은 초월적 영혼을 부정하고 논리적 이성이나 심리나 동물적 의식 정도로 인식하는 지엽적이고도 저급한 인간 이해로 전락하였다. 한편, 포스트모던적 종교는 다시 영혼을 회복하고 초월적 차원을 보완하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헌신이나 자기부인 없이 오히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테크닉 중심의 신비적 혹은 낭만적 영성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진정한 영성은 중생을 통하여 새로 태어난 영혼이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점진적으로 자라난다. 실로 성경은 영성보다 영적 성장(spiritual growth)이라는 개념을 가르치며, 영성(spirituality)이란 그 결과로 개발된 영혼의 성품이다. 따라서 영성은 단기간의 영성훈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점진적으로 형성된다. 더욱이, 참된 영성은 테크닉이나 수련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자기부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을 통하여 달성되며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소명에 대한 헌신을 결과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종교적 갈망은 성숙하고 깊이 있는 영혼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에게 돌아오라는 성령의 부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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