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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7)

​진정한 문화적 자유의 실현

인간은 문화적 존재이며, 인류의 역사는 문화의 역사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문화적 구속을 포함하며, 복음은 문화적 자유를 부여한다. 범죄한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힘과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적 문화를 건설하여 대체만족을 향유하였고(창4), 인류는 각기 자기 문화의 굴레 속에 안주하며 거기서 자기 정체성과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문화는 죄인들에게 베풀어 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외면하고도 행복할 수 있다고 인류를 기만하는 죄인의 위안부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문화의 기만과 문화적 종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문화적 자유와 전통적인 유대문화에의 종속을 탈피하지 못하는 문화적 부자유 사이에서 갈등하였으나, 예루살렘회의를 거치면서 성령의 인도로 문화적 자유를 성취하였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이방인에게는 이방인같이” 모든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문화적 자유를 향유하며(고전 9:19-27), 모든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어떤 특정문화에 종속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원리를 분명히 제시하였다. 그러나 중세의 로마교회는 자기 문화에 종속되어 문화적 자유를 상실하였고 종교개혁이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회복하였으나 서구문화에 안주하여 결국 문화적 기독교(cultural Christianity)로 전락하고 유럽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

포스트모던 운동은 획일화되고 경직화된 서구 기독교문화에 대한 반발로 발생한 문화혁명(cultural revolution)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근대문화는 소수 상류층이 즐기는 엘리트 문화였으며, 서민 대중의 문화는 저속한 하류문화로 비하되고 문화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클래식 문화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다. 외부세계의 문화는 급변하고 있었지만, 고딕건축의 교회당에서는 정통적 고전 음악이 고수되고 서민문화는 무시되었다. 1960년대에 모든 전통문화를 전복하자고 봉기한 프랑스 학생혁명이나 미국의 히피운동은 극단적인 저항문화(counter culture)를 주장하며 문화혁명을 시도하였다. 중국의 문화혁명도 전통문화와의 단절을 선언하였다. 이제 모던시대의 고전문화는 대중에게 외면당하고 근대에 무시되었던 서민 대중문화가 현대문화를 장악하게 되었다.

현대문화가 대중문화의 성격을 가지게 된 데에는 소수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부상하게 된 원인도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었다. 왜냐하면 산업혁명이 대량 생산을 통하여 자본주의 시대를 열고 문화의 상업화를 성취했을 뿐 아니라, 테크놀로지의 눈부신 개발로 매스 미디어(mass media)를 이용한 문화의 대중화를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영화와 음반, CD와 DVD, 게임과 동영상, 출판물과 인터넷, 그리고 대중공연에 이르기까지 모두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대형화되고 대중화되었다. 근대에 무시되었던 흑인음악과 라틴음악이 부상하여 현대음악의 주류가 되고 기타와 드럼이 대중음악을 리드하게 되었다. 스타숭배가 만연하고 신세대들은 새로운 대중문화와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문화의 탈 근대화는 근대 문화에 익숙한 교회에 문화적 위기를 야기하였으며, 특히 예배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모던적 혹은 프리모던적 문화형식의 예배는 문화적 적응성(relevance)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재미도 의미도 느낄 수 없었으며, 따라서 새로운 문화와 동일화된 신세대들은 교회를 떠나가고 교회는 노령화되기 시작하였다. 교회가 특정 문화에 종속되어 새로운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자유와 창조적 유연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영원불변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설교이든 찬양이든 기도이든지 적합한 문화형식에 담겨져야만 의사전달이 가능하다. 마치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청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설교한다든지 아무리 은혜로운 가사라도 교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고 거부감을 주는 곡조로 찬송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대상의 문화형식과 코드에 맞추는 수용자 중심(receptor-oriented)의 적응이 이루어질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실로, 칼빈이 그의 적응이론(accommodation theory)에서 잘 설명한 것처럼, 하나님도 인간에게 계시하실때 그 대상의 언어와 문화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취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문화형식의 변화를 거부하고 이미 지나간 세대들의 문화를 고집하며 강요하는 모던적 멘탈리티를 복음의 보수와 혼동하는 것은 매우 슬픈 자기 파괴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교회 문화사적으로 볼 때 중세교회가 상실했던 문화적 자유를 회복하려는 긍정적인 노력들이 있었는데, 부흥 운동(revival movement)이 대표적이다. 종교개혁이 교리와 의식의 개혁을 이루었다면,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웨슬리안 운동은 종교문화의 개혁을 성취하였다. 그레고리안 찬트나 시편성가(Psalter)와 같은 중세적 음악으로 형식화되고 경직화되어가던 교회에 서민대중문화의 음악형식과 감성적인 가사가 조화를 이룬 찬송가(hymn)라는 새로운 장르의 교회음악을 창조함으로서 예배에 생기를 불러 일으켰고, 바람같이 자유로운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며 열정적인 부흥운동을 전개하였고 미국의 각성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감리교회가 활력을 상실하고 경직화되는 상황에서 다시 성령운동이 일어나 열정적인 예배가 회복되었다. 예배의 위기를 느낀 복음적 교회들이 문화적 자유를 추구하며 현대의 문화를 수용하여 경배와 찬양이 열정적으로 회복되고 일방적 전달방식에서 벗어나 상호적 코이노니아의 활력적 예배를 실현하게 된 것은 포스트모던적 은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신세대가 자기 문화에 함몰되고 중독되어 타문화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사실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스트모던적 멘탈리티가 아니며, 구세대가  자기 문화를 고수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거부하는 태도와 본질상 다르지 않다. 교회는 화해의 공동체로서 모든 세대를 포함하여야 하며, 따라서 모든 세대의 문화에 적응하는 문화적 자유가 필수적이다. 문화가 다른 세대들끼리 교회를 분리하는 것은 문화적 분리주의(cultural separatism)를 결과하여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왜냐하면 분리한 교회에서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새로운 세대가 조만간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다양한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자유를 가진 교회가  발전한다는 사실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교회들에게 주어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현대교회는 교회내의 문화적 화해와 조화를 실현해야 할 뿐 아니라, 나아가 포스트모던 문화를 구속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질인 신의 형상(imago Dei)에는 문화 창조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즉, 문화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이용하고 모방하여 책임과 창의성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고 건설해 가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 일체를 가리키며, 창 1장 28절에 주어진 하나님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와 그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은 문화 창조의 방향성에 심각한 혼란을 결과하였고, 이는 그릇된 문화를 생산하였다. 하나님이 명령한 문화(culture)란 인간성과 세계를 아름답게 발전시켜 창조를 완성하는 작업인데, 타락하고 비뚤어진 인간은 죄성을 부추기며 비인간화와 세계의 파괴를 결과하는 반문화(anti-culture)를 양산하였다. 특히, 포스트모던 문화는 문화와 윤리를 분리시키고 허영과 광기를 특징으로 하는 자멸의 문화를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 문화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인데, 실체가 없는 형식에만 치우친 문화적 중독 현상으로 갈수록 성과 쾌락의 강도가 심해지고 무감각과 무의미의 심도가 깊어가고 있다. 실로,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고 지적한 틸리히의 말처럼, 종교 없는 문화란 공허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이 반문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적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모두가 문화적 재능을 개발하여 가정과 교회의 문화를 창조적으로 아름답게 발전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문화를 주도해야 한다. 문화명령과 선교명령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가진 하나의 명령이다. 문화명령의 순종에 실패하면 선교명령을 수행하는데 큰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친기독교적 신문화 환경에서는 크게 성장하였지만 문화적 주도권을 빼앗긴 후 반기독교적 문화가 범람하면서 난항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래는  선교명령과 문화명령을 분리하지 말고 함께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이며, 문화적 자유를 문화적 방종이나 나태로 오해하지 말고 진정한 문화적 자유를 실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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