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포스트모던시대의 신관

 

지금 우리는 주후 2천년대를 마감하고 제3천년대(Third Millenium)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종교적으로 모종의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1]  이러한 변화는 세기말적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종말론적 혼란을 야기시키기도 하였지만, 문제는 보다 심층적인 인류문화의 양태가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데 있다.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왔던 서구가 종교중심적 문화를 뒤로하고 과학적인 기술문화(technological culture)로 탈바꿈하면서 기독교의 위기의식이 점증하였으며, 기독교의 존속을 위하여 과학적 세계관에의 적응과 변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세속화신학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서구교회는 이제 소수집단으로 전락하였으며, 그 영적 지도력과 호소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처참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종교없는 시대의 도래라는 과학주의적 예언은 일시적으로 정당한 것처럼 보였으나, 종교적 공백으로 인한 비인간화와 가치관의 몰락은 다시 새로운 종교 추구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회복이 기독교의 부흥이 아니라 동양신비종교나 원시종교에의 관심으로 나타남에 따라 기독교는 위기감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현상은 단순히 서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우리시대의 종교적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의 전통종교에 대한 관심과 부흥은 실로 괄목할 만하다. 이조말 제국주의 세력의 위협 앞에서 한국의 전통종교들은 너무나 무력하며 그 종교적 생명을 다했다는 의식이 팽배하였으며, 그 대신 기독교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종교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20세기는 전반적으로 전통종교의 몰락과 기독교의 신흥이 분명히 나타났으나,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추세가 반전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급성장을 구가하던 기독교는 정체상태를 보이고, 그 대신 불교를 비롯한 전통종교가 부흥하는 당혹스러운 현실을 보고있다. 더욱이 그동안 미신으로 억압되어왔던 무속신앙과 기철학등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으면서 정착되어 가는가 하면, 서구의 신흥종교인 뉴에이지종교가 여러 형태로 수입되어 우리 사회에 침투하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본인은 우리 시대에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신관(神觀)의 변화를 분석함으로서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하여, (1) 지금 일어나고 있는 종교현상의 발생원인을 포스트모던이즘과 연관하여 규명하고, (2) 최근에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무속신앙, 환생신드롬, 그리고 뉴에이지와 같은 신흥종교들의 신관을 분석한 다음, (3) 신학적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1 포스트모던이즘과 종교현상

포스트모던이즘(post-modernism)이란 근대의 이성주의 신앙을 해체하자는 사상운동으로서,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풍조는 철학뿐 아니라 제반 문화활동과 종교생활을 포함한 생활의 전영역에서의 변화를 요구한다. 물론 이러한 사상운동이 전 인류나 학계의 전폭적인 수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이제 일으키고자 하는 노력이라기 보다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서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이즘이라고 명명한 오늘날의 변화는 여러가지 원인들을 가지고 있다.[2] 첫째로, 서구사상사에서 근대에 일어난 인간중심의 이성주의는 기독교신앙을 대체 혹은 수정하고 최고의 권위로 등장하여 과학시대를 열었는데, 종교와의 분리를 진행하면서 점차 종교적 기반을 상실한 절대진리의 주장은 그 근거와 설득력이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급기야는 20세기에 이르러 절대적인 합리성과 윤리에 대한 신앙이 더 이상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의 약화와 세속화라는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데, 절대진리의 몰락은 자연히 상대주의적 사고 혹은 다원주의적 경향을 불러 일으켰다. 둘째로, 근대에 발생한 이성주의적 낙관론은 역사적 유토피아를 추구하였으나, 2차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보스니아전쟁 등의 발생으로 인하여 크게 위축되었으며, 전쟁에 대한 전인류적 회의는 평화주의(pacifism)를 불러 일으켰다. 평화주의는 일부집단이 그들의 진리성과 정당성에 근거하여 타집단을 억압 혹은 제거하려는 일체의 이데올로기적, 혹은 사상적 및 종교적 절대진리주의를 정죄하게 만들었다. 즉, 절대주의가 전쟁과 분쟁의 원인이 된다고 보고, 절대진리를 부르짖는 종교에 대한 강한 회의가 제기되었다. 그러므로 종교간의 대화나 연합, 혹은 종교간의 평화가 강력히 요청된다. 셋째로, 20세기에 식민주의 통치가 종언을 고함으로서, 그동안 서구백인의 우월성이라는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독립하여 주권을 회복한 국가와 민족들에서는 강력한 민족주의와 전통문화 및 종교에 대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비록 대부분의 비서구세계가 근대화와 연관하여 서구화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서구문화의 영향과 우월성이 완전히 무시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반식민주의적인 민족주의 입장에서 어느 특정 민족문화나 민족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다원주의적인 사고가 국제사회에서 수용되며, 특히 문화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넷째로, 20세기에 인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경제주의적 사고에 익숙해지면서 경제논리가 중심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경제논리는 과거의 모든 권위로부터 탈피하여 경제적인 것이 가치있는 것이 되었다. 본질적인 가치와 권위가 부정되는 추세에서 문화활동도 경제논리에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문화상품이 권위에 우선한다. 이와 같은 현대의 문화이론은 획일적인 사고나 문화를 지양하고 다양한 문화창조를 고무하기 때문에, 자연히 문화생활에 있어서 다양성이 강조되는 경향이 일어났다. 그러한 원인들은 종합적으로 포스트모던이즘이라는 경향을 발생시켰고, 이 사상은 획일적인 절대주의를 부정하고 다원주의(pluralism) 사고를 권장한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는 종교적인 면에도 중요한 변화를 요청하고 유발시켰는데, 이는 크게 원시신앙의 부흥과 소위 고등종교들의 자기적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과 함께 미신으로 비판되고 억압되어 왔던 원시신앙들이 민족주의의 부상에 힘입어 과거의 자리를 회복하고 있으며, 이는 문화와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질문명과 기술문화가 야기한 문제들이 인간의 종교성을 부정하고 억압한데 기인하였다는 반성과 함께, 보다 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신앙의 가치를 인정하려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한편, 소위 고등종교들이 근대적인 합리성의 척도에 적응한 결과 그 가치가 인정되어 왔으나, 합리화된 종교가 종교의 세속화를 결과하였다는 반성과 함께 종교의 신비성을 회복하여 새로운 인류의 필요에 부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에서도 20세기에 오순절운동이라는 신비주의의 부상이 모든 교파에 나타나고 있다. 또한 현대의 다원주의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여 대중의 호응을 얻고 존속하기 위하여 종교간의 대화와 평화를 도모하는 관용과 타협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신학적 독선주의나 교파주의의 극복과 정치적 연합운동의 추구 등으로도 표출된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변화가 바로 이러한 포스트모던이즘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포스트모던시대의 종교현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2 무속, 환생신드롬, 그리고 뉴에이지종교

오늘날 포스트모던시대를 맞으면서 한국사회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종교현상 가운데, 전통적인 무속신앙의 대중적 수용과 생활화, 그리고 뉴에이지 종교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종교의 수입과 그로 인한 환생신드롬 등의 새로운 종교문화현상의 발생을 들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신흥 종교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보기로 한다.

무속(巫俗)신앙이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종교로 공인된 불교나 유교와 같은 고등종교와 달리 민간신앙으로서 공적으로는 억압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대중의 신앙습속으로서 존속해 온 문화화된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무교(巫敎, Shamanism)신앙이 대표적으로서 무당의 굿을 통한 살풀이가 중심이지만, 그 외에도 점술, 역학, 풍수지리설, 칠성신앙, 고사, 부적, 선약, 자연숭배 등 여러 형태로 유포되어 왔으며, 도교(道敎)를 비롯한 타 종교들의 미신적 관행이 혼합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무속신앙은 여성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널리 생활화되었기 때문에 고등종교의 신앙과 함께 신봉되어 종교혼합현상을 야기하였다. 이러한 민속신앙이 합리성의 규범에 위배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억압되거나 금지되었다는 사실은 모던이즘(modernism)과 배치됨을 의미하며, 따라서 포스트모던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신앙의 해방과 자유를 구가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상황에서는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서 주체적인 반외세운동과 연관하여 전통문화를 회복하고 존중하자는 각성으로 무속신앙의 재평가와 대중적 수용이 일어났는데, 신학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발생한 민중신학의 문화신학이 이를 고무시켰다. 그 결과 민족철학으로서 보다 서민적인 기(氣)철학이 부각되었으며, 이어서 모든 무속신앙이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적인 기관도 기우제나 고사 등을 자연스럽게 실행하는가 하면, 지성을 추구하는 대학가에서도 살풀이나 노제, 그리고 점술이나 무속이 존중되는 풍토로 변하였다. 그런가하면, 환경운동이나 자연보호운동을 도교적 자연관과 연결시키는 경향도 일어나고 있다. 무속신앙은 매우 다양하지만, 무교의 신관은 일반적으로 다신론(polytheism) 내지 범신론(pantheism)으로 알려져 있다.[3] 본래는 오히려 다신론적이었으나 범신론에 기초한 도교적 요소와의 혼합과정에서 범신론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던시대가 추구하는 다원주의적 사고에 가장 상응하는 신관은 물론 다신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범신론도 그러하다. 절대진리를 추구하던 과거에는 오히려 유일신론(monotheism)이 보다 합리적인 신앙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다신론 혹은 범신론 종교가 모던시대에 억압되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포스트모던시대의 도래와 함께 종교적 상황은 근본적으로 전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치관은 신관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진리의 부정은 그것 자체가 모순이며 인간성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이러한 상황이 반동적일뿐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지만, 포스트모던시대가 지속되는 한 유일신관을 가진 기독교는 다소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뉴에이지(New Age)종교는 합리성에 대한 회의와 함께 도래한 포스트모던시대에 신비종교의 본산인 인도종교가 서구에 정착하면서 형성된 대표적인 포스트모던종교이다. 이 종교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신적 신비신앙을 종합하고 혼합하여 포스트모던시대의 유일한 종교로 군림하기 위하여, 모든 고등종교 특히 기독교의 몰락을 열망하고 있다. 뉴에이지종교는 또한 음악, 영화, 문학등 모든 문화영역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어서 포교의 방법을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뉴에이지종교와 접촉하게 된다. 한국에 조직적인 뉴에이지종교는 아직 규모가 적지만, 문화운동으로서는 적지 않은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신세계사의 출판활동은 대중의 크나큰 호응을 받았으며, 그를 통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하였다. 소위 환생신드롬이라고 불리우는 현상도 정신세계사의 출판물들에 의해 일어났다. 본래 환생교리는 우리나라에서 불교신앙과 연관되어 있지만, 최근의 현상은 오히려 뉴에이지와 관련이 있다. 인도종교가 뉴에이지종교의 중심이기 때문에 불교의 원형인 힌두교의 환생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정신과의사 전영우의 {전생여행}이나 환생영화도 한결같이 뉴에이지종교의 소산이며 불교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뉴에이지종교의 신관은 전반적으로 범신론 내지 다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4] 만물은 모두 신성을 가지고 있으며, 만인은 그러한 신성을 회복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교리가 그 기본사상이다. 그러므로 뉴에이지종교는 포스트모던시대의 가치관과 조화되는 범신론에 기초할 뿐 아니라 합리성보다는 신비성을 추구하며, 모든 세계의 원시신비종교들을 통합하여 세계종교를 이룩하겠다는 혼합주의적 경향에서도 가히 포스트모던시대의 대표적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과학적 세계관을 수용하며 또한 그것이 결여하고 있는 신비성과 종교적 차원을 보완하면서 UFO나 신과학등에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를 표명하는 점도 시대적 호응을 얻기에 충분하며, 과학 공상소설이나 심령과학의 종교적 기반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로 과학과 종교의 조화는 근대에 하나의 난제로 제기되었으나, 뉴에이지종교는 정신세계의 신비성이라는 방식으로 포스트모던시대에 종교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과학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창조신앙이나 종말신앙과 같은 교리를 가르치는 역사적 종교는 과학적 사고와 영역분쟁을 일으키지만, 현상세계에 대한 과학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초월적인 신비성만을 추구하는 종교는 과학과 충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속신앙과 뉴에이지종교를 그 신관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는데, 공통적으로 다신론 내지 범신론적 신관을 가지고 있다. 신관의 중요성은 그것이 가치관과 윤리, 그리고 세계관과 인생관을 결정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며, 상호 불가분의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절대주의에 대한 염증에서 유발한 다원주의와 근대의 지나친 자연의 비신성화로 인한 폐해에서 반동적으로 일어난 동양철학, 특히 도교와 인도종교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모던시대에 합리성의 기준으로 정죄하였던 다신론과 범신론을 재고하는 시대적 풍조를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기독교의 신학적 대안

이러한 포스트모던 종교현상의 발생으로 기독교는 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데, 과연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러한 위협에 대한 대안 마련을 위하여 신학계는 분주히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1994년 미국 휘튼대학에서 열린 전략적인 신학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이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기독교 변증학}이라는 논문집으로 출판되었는데, 거기에서 세가지 의견이 대립되었다. 비록 반이성적인 시대에도 기독교의 진리성을 위해서는 이성에 호소해야 된다는 "모더니티의 변증론"과 시대적 접촉점을 위해서는 포스트모던적인 화두를 수용하고 합리성에 호소해야 된다는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 사이의 변증론", 그리고 기독교의 존속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포스트모더니티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포스트모더니티의 변증론" 이었다.[5] 지금까지 발표된 신학적 대안들은 크게 다음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로, 다원주의시대에 기독교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그에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론이다. 이러한 방안은 기독교가 전통적인 독선주의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대신 타종교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수용하는 종교다원주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6]. 한국에서의 종교다원주의는 특히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에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었는데,[7] 과정신학은 신관의 변화를 요청하여 초자연적인 신관을 버리고 이 세계와 함께 변화되어 가는 범재신관(panentheism)을 수용함으로서 포스트모던시대에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특히 기독교신학이 불교를 수용함으로서 변모되어야 한다는 대승기독교(Mahayana Christianity)를 주창한다.[8] 그러나 이와 같이 시대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대응방안이라기 보다는 타협과 세속화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고 스스로 정통성을 부정하여 기독교의 본질적 변질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단적 분파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9] 오히려, 기독교는 이 시대에 유행하는 대중적 사고방식의 차이로부터 오는 불이익과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불확실성의 시대에 인류가 반동적으로 절대가치와 유일신관을 상실하고 혼동할 때, 사상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발휘하여 유일신관에 기초한 절대진리에 대한 확신과 올바른 가치관을 회복하도록 인류를 돕는 노력에 힘써야 할 것이다. 실로 다신론이나 범신론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분명히 그릇된 신관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이교적 신관과 타협하는 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자기파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둘째로, 포스트모던이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여 모던시대에 약화되었던 기독교의 초자연적 종교성을 강조하여야 한다는 반성론이다.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세계와 인격적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출발하였으나, 서구 기독교는 이성주의적 합리성에 복속하여 점차 종교적 신비성과 초월성에 회의를 표명하고 스스로 신학적 세속화의 길을 걸음으로서 신비성을 상실하고 이성주의적인 종교로 전락하였으며, 이는 서구교회의 감소와 몰락을 초래하였고 포스트모던시대의 도래를 유발시켰다. 따라서 기독교는 다시 이적이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신앙을 회복함으로서 기술문화에 지쳐 다시 종교를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종교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다.[10] 소위 신화나 비합리적 신앙으로 제거했던 요소들을 회복하고, 문자성 대신 상징성을 부활시켜 현대인의 종교적 필요를 충족시켜야 하며, 이는 성경적인 기독교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생각이다.[11] 기독교가 이 작업을 실패하면, 현대인은 결국 뉴에이지와 같이 신비성과 종교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종교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대안은 신비주의의 부흥을 가져오기도 한다.  20세기에 들어서 전반적으로 성령에 대한 강조와 성령운동을 적절히 수용하는 교회가 성장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대안이 가능할뿐 아니라 필요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셋째로, 포스트모던이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여 탈이성적인 풍조를 치유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합리성을 보다 더 강조하여야 한다는 강경론이다.[12] 진리는 절대적이며 인간은 본질상 이성적 존재로서, 비록 현대인들이 근대성의 기술문화에 지친 나머지 일시적으로 탈이성적인 반동성을 보이지만, 이러한 풍조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인류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기독교가 유일신관에 근거한 절대진리와 절대윤리를 회복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대안이 이성주의적 자유주의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기독교신앙의 조화가운데 성경적인 기독교를 합리적으로 제시하자는 것이다. 기독교윤리운동이나 문화운동, 사회운동, 또는 기독교학문운동 등은 성경적이며 합리적인 절대이론을 추구하고 수호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러한 대안과 연관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종교 및 문화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시대의 변화와 영적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둔감하여 안일한 자세로 구태의연한 관행만을 계속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상적, 문화적, 종교적 변화와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던시대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의문이지만, 단기간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며, 그동안 유일신관과 절대진리를 신봉하는 기독교는 시대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위에 제시된 세가지 대처방안중에서 종교다원주의의 현실론은 정통적인 기독교에서 수용할 수 없으나, 그 외의 두가지 방안, 즉 기독교의 종교성과 합리성의 회복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보완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으며 인간성과 신성의 양면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면만 강조되거나 어느 한 면의 결여는 불완전한 복음으로 호소력의 약화를 결과한다. 한편, 포스트모던시대라 할지라도 종교다원주의는 배격되어야 하지만, 한국과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타종교와의 적대적 관계를 지양하고 선교적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신학적인 차원에서도 완전한 무시와 무지보다는 충분한 연구와 적절한 관계가 필요하고 생각된다.[13]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정신과 직면하였으며, 그럴 때마다 성령의 인도아래 적절한 대처방안을 확보하고 존속 발전하여 왔다.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포스트모던시대에도 교회의 순종가운데 성공적인 대응과 발전이 이룩되리라 전망한다.

(한국개혁신학 2권, 199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Hans Küng, Theology for the Third Millenium: An Ecumenical View (New York: Doubleday, 1988), 1-11.

 

[2] Ibid., 5. "이 현대성(모더니티)은 합리성과 계몽주의, 과학과 테크놀로지,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인간의 자기와 세계에 대한 지배, 그리고 그 결과로 초래한 자연과 신의 상실에 근거하고 있었는데, 이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3]김태곤, {한국무속연구} (서울: 집문당, 1981), 279-99. "형태적인 면에서 볼 때 무속의 신관은 다신적 자연신관이란 입장에서 말할 수 있다. 신앙대상 신이 자연신과 인간신의 두 계통으로 대별되고 있는데, 이들 신은 대체로 인격을 갖추고 인격적으로 표현되지만, 자연신의 경우는 간혹 자연 그대로의 정령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는 조사를 통하여 한국에 최소한 273종의 무신(巫神)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4] Douglas R. Groothuis, Unmasking the New Age (Downers Grove: IVP, 1986), 13-36; David K. Clark and Norman L. Geisler, Apologetics in the New Age: A Christian Critique of Pantheism(Grand Rapids: Baker, 1990); David L. Miller, The New Polytheism: Rebirth of the gods and goddesses (New York: Harper & Row, 1974).

 

[5] Timothy R. Phillips & Dennis L. Okholm, ed., Christian Apologetics in the Postmodern World (Downers Grove: IVP, 1995).

 

[6] David Ray Griffin, God & Religion in the Postmodern World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9). 그리핀은 모던시대에 가능했던 정통주의신학과 자유주의신학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이제 "제3의 신학형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신학은 포스트모던시대에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신관을 버리고 "새로운 정령신앙(new animism)"을 도입하여 "자연주의적 유신론(naturalistic theism)"에 기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연신론 내지 범신론을 의미하며, 인격적 신관을 부정하고 과정신학을 따라 종교들의 진화와 그 과정상의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

 

[7]한국의 종교다원주의는 재래종교에 대하여 관용적인 전통을 가진 감리교신학에서 발생하였다. 1960년대에 윤성범, 유동식에 의해 토착화신학이 제기되었고, 그후 1980년대에 변선환, 김경재에 의해 종교다원주의가 주장되었다. 본래는 윤성범, 변선환이 유학한 바젤대학교의 좌파인 칼 야스퍼스와 후리츠 뷰리의 영향하에 시작되었고, 그후에는 과정신학의 창시자인 존 콥과 그의 과정신학연구소가 있는 미국의 감리교계 클레어몬트신학교에 유학한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해 과격한 종교다원주의가 도입되었다. 김경재는 장로교신학자이지만, 토착화신학, 민중신학의 문화신학에 영향을 받았고 또한 클레어몬트신학교에 유학하여 종교다원주의에 합세하였다.

 

[8] John B. Cobb, Jr.는 God and the World (Philadelphia: Westminster, 1969)에서, 신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19) 현대에 전통적인 "창조자-역사의 주-율법 부여자-심판자"로서의 신관을 버리고 "열려진 미래로 우리를 부르는 존재"로서의 신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63), "범신론과 유신론의 종합으로서의 범재신론(panentheism)"을 주창하였다(80). Christ in a Pluralistic Age(Philadelphia: Westminster, 1975)에서는, 기독교가 전통과 단절해야 존속이 가능하며(51), 따라서 다른 종교에 부담을 주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제거하고(19-20) 비인격화하고 로고스로 개념화하여야  미래적 그리스도가 가능하다고 말하고(54, 59, 71), 기독교와 불교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01-20). 나아가, Beyond Dialogue (Philadelphia: Fortress, 1982, 번역판 {과정신학과 불교: 대화를 넘어선 기독교와 불교의 창조적 변혁 모색}, 김상일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에서는, 기독교의 불교화가 현재 기독교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라고 말했다(166). 이에 따라, 변선환은 불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김경재는 대승기독교의 신론, 인간론, 구원론등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여 대승기독교 조직신학을 시도하였다.

 

[9] Ibid., 157. 존 콥의 신관은 분명히 이단적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실체성을 결하고 있는 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연기의 영원한, 아직 자격이 다 갖추어져 있지 않은 완전한 사실과 그 자체이다. 부처와 같이 하나님도 충만하게 가득 차질 때, 그는 완전한 무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변선환, "현대화냐, 보수화냐", {사목} 100(1985.9): 12-3. "필자는 정통적인 개신교 신학자는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혀두겠다...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전통적인 개신교의 배타주의를 배격하고 개종이 아니라 대화만이 오늘의 선교라고 보기 때문이다." 변선환은 1984년을 전환점으로 타종교의 포괄주의에서 다원주의로 전향하였다.; 김경재, "한국문화사의 측면에서 본 궁극적 관심의 성격과 한국신학의 과제", {한국문화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140-1. "복음의 본질이 정통주의 보수신학의 내용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토착화문제를 논할 때 예외없이 복음의 불변성 곧 영원 불변한 복음의 내용이라도 있는 듯이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시킨다.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씨와 토양에 비유하고 그 씨의 불변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정된 불변한 복음의 내용이란 관념이거나 전통의 산물일 뿐이다." 또한 그는 {해석학과 종교신학: 복음과 한국종교와의 만남}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4)에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부정하고(217)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실존적으로만 인정하면서(238-9), 타종교들과의 지평융합을 추구한다(262-4).

 

[10] Thomas Molnar, The Pagan Temptation (Grand Rapids: Eerdmans, 1987). 몰나는 기독교가 모던시대에 너무 과다한 이성주의에 희생되었다고 보고(177), 영적 공백상태에 있는 포스트모던시대에 경건과 상징성, 신비성과 종교성의 회복을 주장한다.; Anthony C. Thiselton, Interpreting God and the Postmodern Self: On Meaning, Manipulation and Promise (Edinburgh: T. & T. Clark, 1995). 티셀톤은 힘의 추구를 진리로 위장한 기만이 모던시대의 이성주의를 초래하였으며, 이에 반발한 포스트모던시대에는 진리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진리를 힘과 정치의 문제로 해석하는 위기에 있다고 보고, 기독교는 힘의 추구를 버리고 사랑과 소망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영한, "21세기, 포스트모던이즘과 기독교", {21세기, 포스트모던이즘과 기독교}, 제4회 숭실대학교 국제학술 심포지엄 강연집, (서울: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1995), 49. "포스트모던정신은 기독교신앙을 위해서는 하나의 큰 기회다. 이 기회란 계몽주의적 이성적 전통이 비판하고 유래했던 기독교적 전통의 보고에서 다가오는 후기현대를 향한 새로운 착상을 배우는 것이다. 새로운 착상이란 현대가 합리성과 실증성이라는 모토아래 상실한 현실의 깊이 차원인 거룩성과 종교성의 차원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이성 이전에 존재하는 존재의 거룩한 질서를 향하여 열리는 것이다."

 

[11] Molnar, The Pagan Temptation., 185-96; Anton Wessels, Kerstening en Ontkerstening van Europa: wisselwerking tussen evangelie en cultuur (Baarn: Ten Have, 1994), 211-57. 화란의 선교학자인 베셀스는 이제 세계문화가 문자시대에서 영상시대로 전환됨에 따라 기독교는 계몽주의로 인해 상실된 풍요한 상징성을 회복해야 호소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12] Diogenes Allen, Christian Belief in a Postmodern World: The Full Wealth of Conviction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1989). 알렌은 포스트모던시대가 그릇된 이성주의에 종속되었던 모던시대에 비해 기독교에는 훨씬 더 좋은 시기라고 판단하면서(2), 올바른 이성의 사용으로 기독교신앙의 합리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128-48, 213-6); Edith Wyschograd, Saints and Postmodernism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절대윤리가 이성에 근거하여 확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H. Richard Niebuhr, Radical Monotheism and Western Culture, (New York: Harper & Row, 1970); David K. Clark & Norman L. Geisler, Apologetics in the New Age: A Christian Critique of Pantheism (Grand Rapids: Baker, 1990). 범신론은 신의 본질이 없는 텅빈 플라스틱 봉투와 같아서 허구적인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142-3, 155-8), 이성적인 비판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223-35).

 

[13]김성곤, "종교다원화 현상에 대한 세가지 태도의 분석과 그 문제점", {종교다원주의와 한국적 신학}, 변선환학장 은퇴기념 논문집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2), 186-203. 그는 타종교와의 관계유형에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의 세가지 방식이 있다고 보았으나, 포괄주의는 외형적인 유연성은 있지만 결국은 자기종교의 우월성을 전제하여 사실상 배타주의와 본질적 차이가 없고, 다원주의는 절대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의 본질에 모순되어 허구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였다. 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변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하는 과정신학도 "과정이라는 불변하는 원리(unchanging principles of process)"를 인정하듯이(John B. Cobb, Jr. & David Ray Griffin, Process Theology (Philadelphia: Westminster, 1976), 14), 절대원리가 없는 완전한 상대주의나 다원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는 사실상 자기종교를 중심으로한 형식적 포용주의이든지, 종교적 진화이념을 추종하여 미래의 통합종교를 추구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일 뿐이다. 기독교신앙은 타종교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죄인이며 구원의 대상으로서, 그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이해하며 전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종교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더욱이 일반은총과 일반계시의 교리는 타종교에 대한 이해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이문균, "종교다원주의와 그리스도교", {종교연구} 10(1994): 87-109. 그는 종교다원주의의 상대주의적인 주장들이 모두 가정에 불과할 뿐이며, 사상구조에 있어서 실상 포스트모던적인 것이 아니라 모던시대의 자유주의신학의 흐름 안에 있다고 판단하고, 기독교인은 종교다원주의의 현실에서도 복음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과 헌신을 견지해야 하며, 한편으로 타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진실한 대화, 그리고 공동목표를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