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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거룩한 삶을 흠모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대통령 선거전은 그리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서 상대 후보들을 비방하고 인신공격을 일삼으며 약점을 들추어내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전투구의 더러운 싸움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최강의 권력인 대권을 차지하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총동원하는 대통령 선거전이야말로 인간타락의 전시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러 성도들께서는 대통령 선거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마음대로나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과연 주님께서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자세로 참여하기를 원하실까, 조용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가와 통치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교훈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이 어떤 마음으로 대통령선거를 맞이할 것인지, 겸손히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로, 대통령을 존경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바울사도는 이 말씀에서 정치 지도자를 두 번이나 "하나님의 사자"(롬13:4)라고 칭하고, 또 "하나님의 일군"(롬13:6)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호칭은 우리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침이며 경고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하나님의 사자"라면, 대통령을 함부로 욕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빈정거리는 행동은 그리스도인이 취할 자세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사자"인 목사님을 함부로 대하거나 성을 떼고 이름만을 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항상 경건을 추구해야 합니다. 과거에 사용하던 권위주의적인 각하 호칭은 사용하지 않더라고 대통령이라는 말은 붙여 드리는 것이 올바른 언행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말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통치자에게 "굴복"과 "존경"(롬13:1,7), 그리고 "순복"과 "공경"(벧전2:13,17)을 가르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정치권세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통령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세우심과 사용하심을 부정하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구조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의를 시행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 13장에서 가리키는 통치자도 불신자로서 교회를 핍박하는 네로와 같은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이나 빌라도 같은 통치자에게도 세금을 내라고 가르쳤습니다. 세금을 낸다는 것은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롬13:6-7). 실로, 덜 의로운 질서일지라도 무정부의 혼란보다는 나으며, 정치적 공동체의 질서를 상징하는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인류가 급격하게 혼란에 빠져 와해되고 몰락하지 않도록 이 세계를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은총적 도구요 사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대선 후보들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당하게 취임하면 그를 "하나님의 사자"로 존경할 마음의 준비가 요구됩니다.

둘째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인류는 오랜 세월동안 힘을 가진 강자가 스스로 왕을 선언하고 그후에는 왕위를 세습하는 제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국민은 아무런 결정권도 가지지 못하고 운명과 같이 왕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한 왕제도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습니까(삼상8.9-18).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대통령을 우리 스스로 선출할 수 있는 민주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거시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구속이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통치자는 하나님이 정하시지만, 우리 투표자들을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직분자이든 정치 지도자이든, 우리가 투표했을지라도 하나님이 택하셨다고 믿고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우리의 선택이기에 우리가 책임을 져야하며, 하나님의 선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잃었던 영적 자유를 찾아 주셨으므로, 우리는 다시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갈5.1). 자유인은 그 자유를 방종의 기회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대통령 선거권 한장이 적은 것같아도 왕권의 폐지와 민주정치의 실현이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었는지 생각할 때, 그것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인간의 투쟁으로 쟁취된 것이라고 이해하지만, 그 투쟁과 승리의 배경에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선거권을 무시한다든지 혹은 죄악의 유혹에 빠져 이 고귀한 자유를 오용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지역주의나 학벌주의, 또는 족벌주의와 같은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서 귀중하고 거룩한 한 표를 잘못 사용한다든지, 혹은 얼마되지 않는 재물에 현혹되어 죄에 종노릇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대통령 선출권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이 고귀한 자유와 권리를 올바로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대통령을 선택함에 있어서 올바로 분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대통령 후보들을 잘 알지도 못한채 매스컴의 보도나 여론, 소문 등으로 형성된 인상을 가지고 투표하게 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는 편견이나 모략, 또는 조작 등이 적지 않게 작용합니다. 사단은 속이는 영으로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분주히 활동합니다. 후보들 자신도 그에 현혹되어 거짓말을 쉽게 하고, 자신을 과장하거나 위장하면서 상대후보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비방을 일삼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적 기만과 권모술수의 아수라장에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올바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후보들의 진실과 실상을 알기 위해 믿을 만한 객관적 자료를 얻는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판단기준입니다. 성경은 좋은 통치자의 기본적인 자질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왕"으로서 이상적인 통치자상을 보여줍니다. 다윗도 그러하였으며, 사울도 초기에는 겸손하여 왕으로 택하였다가 후에 교만해지자 그를 버렸습니다. 통치자가 지나치게 교만해지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의 원칙에 따라 폐하게 됩니다(단5.25-28). 대통령 후보의 겸손이란 자기의 신적 전지전능을 주장하지 않는 인간답고 진실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형이나 안하무인형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가 모든 일에 관여하고 군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소유자도 배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본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기준은 국가와 정권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면 확연해집니다. 신구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정치권력을 주시는 이유는 한마디로 "상선징악"임을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선악을 구별하고 그들에게 공의로운 상벌을 내림으로서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대통령이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은 그가 선을 권장하고 포상함으로서 "선을 이루는 자"이며, 또한 악행을 징벌함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라는 말입니다(롬13:4). 그러한 일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일인데, 그가 통치자를 사용하여 그 일을 실행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의실현에는 무관심하고 집단적 이기주의나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경제성장이나 테크놀로지, 혹은 정치체제와 같은 문제에 대통령의 사명을 집중시키는 후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본말과 주종을 올바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문제들도 실생활에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정의실현이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사실은 경제를 논함에 있어서도 정의의 기준에서 정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통치자가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는 경제인들이 발전시키는 것이며 통치자는 경제가 정의롭게 발전되도록 조정하는 일만 하면 됩니다. 정부는 의로운 기업을 포상하고 악한 기업을 징벌하며, 경제적으로 소외된 국민들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경제정의의 실현에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의시행을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죄악은 뇌물입니다. 따라서, 뇌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의실현을 수행할 기본자격 자체가 없습니다. 문화정책에 있어서도 정의와 윤리보다는 경제적인 이익이나 정치적인 동기를 정책결정의 원리로 삼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습니다. 무슨 문제이든지 통치자는 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정권이란 정의실현을 위한 도구인데, 권력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대권장악을 위해서는 원칙도 없이 누구와도 무엇과도 타협하는 후보는 정권욕의 종으로서 타락이 자명합니다. 물론, 정치적 통솔력이 없는 사람을 국가의 지도자로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명을 주실 때는 은사도 주시고 준비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국가의 미래에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며 설득력을 가지고 국가를 영도하며 위기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아갈 수 있는 은사와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따지다 보면, 아무도 충분한 자질을 가진 후보가 없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물론, 완벽한 인간이란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이런 자격을 가장 많이 갖춘 후보를 선택해야 하고, 그럴 때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의 선택은 일치할 것입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입니다. 그는 새시대를 이끌어 나갈 "하나님의 사자"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누구를 선택하여 우리의 정치지도자로 삼으실지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합시다. 비록 혼탁한 선거전 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시며 미래의 한국을 정의롭게 이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기독교윤리 실천운동, 199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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