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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Beauty and the Beast가 리메이크되어 재개봉되었다. 이 감동적인 영화는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짐승의 모습을 갖게된 사람을 사랑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회복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한 사람의 희생적인 사랑이 추하고 비뚤어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물론 인간이 인간을 변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진실하고 끈질긴 사랑은 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인간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사실은 미녀와 야수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며, 인간의 두 모습이다. 선한 지킬박사와 악한 하이드씨는 결국 같은 사람이었다. 프로이드도 인간 안에 욕망을 추구하는 리비도와 이드, 그리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에고와 수퍼에고가 공존한다고 보았다.

일찍이 바울은 자기 속에 두 개의 내가 공존하며 대립하고 있다고 탄식하였다. 올바르게 살려는 나와 나를 거스리는 나의 존재가 내 속에서 투쟁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두 개의 나를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내가 계속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양면으로 열려있다. 자기 이익과 욕망의 종이 되어 야수성이 승리하면 짐승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진리와 윤리를 추구하면 신성에 참여하는 고귀한 존재가 된다. 실로 우리의 인생은 둘 사이의 끈질긴 내적 투쟁의 소명으로서, 투쟁을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면 인생을 실패하고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매일, 아니 매순간 선택을 요구받으며, 그 선택이 인생을 결정한다.

 

(중앙일보 미주판, 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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