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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생명공학 연구소가 최초로 인간 태아를 복제하여 테러사태로 상처받은 미국에 새로운 두려움을 더하고 있다. 물론, 3일만에 다 죽었고 체세포의 단계에 크게 밑도는 6개의 세포 태아로 막을 내렸지만, 복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물론, 지금 시도하는 것은 치료 복제로서, 인간의 어떤 피부나 기관도 만들 수 있는 체세포의 개발을 통해 다양한 질병을 치유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성공하면 신체 내부에 그치지 않고 외부에도 사용될 것이다. 얼굴을 젊은 피부로 입힐 수도 있고, 팔을 강한 근육으로 교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 있으면 못 바꿀 것이 없다. 지금의 성형술로도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데, 이를 허용할 경우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성형보다 더 심각한 복제 사회의 도래는 정체성의 혼란과 신체주의적 허무감으로 보다 더 불행한 미래를 초래할 것이다.

인간과 세계는 심오한 신의 지혜에 따라 통전적이고 유기적으로 디자인되어 있기 때문에,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은 무책임한 기술에 흥분하지 말고 신의 섭리에 따라 겸허한 자세로 주어진 바 자기를 수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고통없이 무한히 살고자 하는 욕망은 쉽사리 자본주의적 유혹에 휘둘리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생노병사는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성형이나 교체보다 부모 닮은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신체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향유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아름답다.

 

(중앙일보 미주판, 20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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