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인간은 자기 존재의 신비를 하나씩 밝혀가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지원한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유전자지도를 완성하고 그 적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전공학은 인간의 유전인자를 치유함으로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류를 고통과 범죄로부터 해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그동안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죄성에 있으며, 죄의 문제가 그리스도의 대속과 성령의 치유를 통해 해결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죄성이 해결되고 신과 같이 완전한 성품을 회복한다는 성화는 답보상태에 있고 인간성은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한편, 현대의 유전공학은 죄성을 결함있는 유전인자로 규정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과학적으로 범죄성향을 제거하며 언젠가는 완전무결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나, 만일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기독교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진화론과 우생학

 

기독교는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본질이 불변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원은 인간의 본질이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본래 미생물에서부터 반복적인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현재의 인간이 되었으며, 현재의 인간도 여전히 진화의 과정 속에 있어서 보다 고도의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낙관론은 철학자 헤겔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는 인간의 정신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여 결국 완전한 인간의 상태에 도달하리라고 믿고 유토피아를 기대하였다. 물론, 헤겔의 이상주의는 세계대전과 같은 야만적인 인류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근거 없는 환상임이 밝혀졌고, 다윈의 진화론도 실증적 과학의 선을 넘어선 상상의 산물로 나타났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기를 믿는 현대인들은 과학적 발전을 통하여 인간의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신앙과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신부였던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발견한 이후 유전학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완전한 인간을 꿈꾸는 인간의 환상을 실현하려는 우생학이 발생하였다. 우생학(優生學, eugenics)이란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제거하고 우월한 유전자를 확장시켜 인류를 개량하려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다윈의 사촌인 프란시스 갤톤(Francis Galton)에 의해 19세기말 시작되었다. 특히, 독일의 나치정권은 우생학에 따라 순수한 게르만족을 회복하여 세계를 지배하고자 독일인 중에서도 열등한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임신을 금지시키고 안락사를 강요하는가 하면 죄없는 어린이들을 수없이 희생하였고, 급기야 악한 유전인자를 가졌다고 생각한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는 범죄를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도 1923년 우생학협회를 창설하고 카네기의 지원 하에 우생학 기록 조사소를 운영하며 가계의 유전정보를 수집하였고 캘리포니아를 선두로 우생입법을 추진하였으나, 전후 문제가 되면서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서는 1976년까지도 열등한 유전인자를 가진 여성들에게 강제로 임신을 금지하는 법이 유지되었으며, 이 단종법으로 약 10만명의 여성이 자녀출산의 권리를 거부당하였다.

 

현대 유전공학의 도전

 

유대인 6백만을 학살한 나치의 우생학적 범죄는 인류에게 심각한 충격을 주었으며, 그 결과 우생학은 전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을 꿈꾸는 환상은 죽지 않았으며, 현대 유전공학으로 다시 재기하고 있다. 1973년에 인간의 유전자 조작이 시작되었으며, 보다 완벽한 유전자 개입을 위해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유전자들의 특성을 연구하는 등 철저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1997년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이후 인간 복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작년 말에는 최초로 인간복제가 부분적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다.

 

물론, 모든 유전공학이 죄악적이 아니며, 제한적인 유전자 치료(somatic theraphy)는 의학의 발전으로서 불치병을 치료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고 배아단계의 유전자에 개입(germ-line intervention)하여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막지 못할 것이다. 배아유전자 조작은 그 사람뿐 아니라 그의 모든 후손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려는 무책임한 행위로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환원불가능성(irrevocability)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인간 개량론적 시도는 기독교의 구원론에 중대한 도전과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인간 죄악의 문제를 표방하면서도 외부에서 볼 때 가시적 성과가 미흡하였지만, 유전공학이 과학적으로 그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죄악의 문제는 원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범하는 자범죄도 사실은 원죄로 인한 죄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범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한 조상이 범한 타인의 죄를 아무 동의 없이 부과하고, 또 그 죄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원죄(original sin)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공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 인간의 마음속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기 원한다.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의 두 측면, 즉 죄책과 오염에 대하여, 죄책감(guilt)은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억압상태에서 살던 종교적 시대를 탈피한 현대인은 신에 대한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이유 없는 죄책감이나 강박관념은 심층심리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인간성의 오염(corruption)은 해당 유전인자의 결함에서 유발된다고 판단하고,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개인과 인류 전체의 그릇된 성격과 행동을 교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나 성령의 치료라는 신의 도움이 필요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잘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결정론의 오류

 

동물심리학자인 스키너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넘어서』라는 책에서, 인간은 하나의 동물로서 본능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하며, 따라서 인간에게 자유나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유전자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은 인간의 행동이나 성향이 모두 유전자의 필연적 작용이어서, 어떤 유전인자를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심지어 종교적인 성향도 유전인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유전인자를 고치면 행동이나 성격도 달라지며, 반대로 유전인자와 무관한 인간 행동이나 성격의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유전인자는 그의 행동과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나 결정권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은 대다수의 유전공학자들 자신도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전인자는 가능성일 뿐 결정의 모든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억압과 표현의 방식을 통해 외부의 영향에 반응하며, 양자의 상호관계에 의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유전자는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알코홀에 약한 유전적 요인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교육과 결단에 의해 중독자가 되지 않고 어떤 사람은 무지와 의지 박약으로 중독자가 된다.

 

무엇보다도 신비한 것은 유전자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유전자 변이(變異, gene mutation)는 선천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이 있는데, 부모에게서 시작된 변화가 자녀에게서 완성되기도 하고 본인에서 시작한 변화도 있다. 변이의 동인은 신비에 감추어져 있으나, 이와 같은 유전자의 변화를 통하여 모든 인간은 자기의 독특성과 개성을 가지게 되며,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도 서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되고, 모든 인류가 동일한 조상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지만 60억 인류가 하나도 정확히 동일한 유전자 집합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전자 결정론은 잘못된 생각이며, 유전자 조작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도 얼마나 단순한 발상인지 모른다.

 

인간의 영혼과 자유

 

그러면, 인간의 주체는 무엇인가? 무엇이 그의 행동과 삶을 결정하며 유전인자와 외부적 영향을 종합하여 최종적인 판단과 지시를 내리는가? 유전자는 분명히 하나의 요인이며 기능이지만, 인격적 판단과 결정의 주체는 아니다. 인간의 주체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불리는 영적이며 초월적인 실체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imago Dei)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영이듯이 인간의 주체도 영이라는 진리를 가르쳐 준다. 물론 인간은 신과 달리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영육이 결합된 존재이지만, 영혼이 죽음에서 육체와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영혼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입증한다. 육체는 영혼의 옷이며 도구이며 기반인데, 유전자는 육체의 구성요인이다. 영혼은 육체를 아무리 해부해도 찾을 수 없는 초월성을 가지며, 인간이 죽으면 유전인자는 남아 썩지만 영혼은 육체를 떠난다. 영혼은 유전인자로 구성되지 않는 단순성을 가지며, 한 사람의 인격과 정체성은 영혼에 속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선하고 진실한 마음과 정의감, 심미성, 거룩한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을 받았다는 뜻인데, 이는 모두 영혼의 덕성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육체가 없으며 모두 영적 속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덕성의 유전인자는 존재할 수 없다. 더욱이, 인간의 자유는 신의 자유에서 유래한 영혼의 본질로서, 모든 육체적, 물질적, 환경적 영향들을 통제하고 그것들을 고려하되 기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인격적 판단을 가능하게 만든다. 자유로운 영혼이 주관하는 영육결합체로서의 인간은 유기적이며 종합적이고 전인적인 존재로서, 인간을 분해하고 유전인자라는 물질적 요소로 분석하면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이다. 따라서, 마치 기계와 같이 부속품을 교체하여 개선하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을 개선할 수 없다.

 

하나님의 개별적 섭리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침팬지와 98% 동일하다고 하지만, 인간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에 있어서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인격적 존재로서, 신체는 부모의 유전에 의해 부여되지만 영혼은 개별적으로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다. 그러나 유전공학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두뇌세포의 유전인자로 오해하고 인간의 개성이나 다양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유전자 조작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답변되어야할 질문, 즉 이상적인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잘못된 철학적 혹은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임한다.

 

유전공학은 하나님의 개별적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무조건 모든 사람이 키가 크고 지능이 높으며 피부가 희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순하고 획일적이며, 결국 동일한 제품을 찍어내듯이 완전한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을 가상하고 완전한 인간을 복제하려는 인간공장식 사고를 하는 것이다. 물론 유전공학이 모두 나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인간관은 유사하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키가 적고 지능이 낮으며 피부가 희지 못한 사람은 모두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인간이어서, 생존이나 생식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나 고난의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비인격적 발상으로서, 인종주의나 민족주의, 또는 신체주의를 결과할 뿐 아니라 신의 창조와 섭리를 비난하고 인생의 깊은 의미를 부정하게 만든다.

 

모든 인간은 똑같이 창조되지 않았으며, 소명과 섭리는 개별적으로 다르다. 각자의 개성과 은사가 다르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이 다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고귀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질병이나 고통을 원하지 않지만, 인간은 고난과 연단을 통하여 정금과 같이 성숙하고 깊어지며 교만이 치유되고 약자를 동정하게 된다. 따라서,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다. 심지어 예수님은 장애자에게도 놀라운 섭리가 주어져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현세의 고난은 내세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며, 현세에서도 고난을 통하여 영혼의 역량이 확장됨으로서 더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죄성과 유전

 

인간의 개성과 유전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방식, 심지어 질병이나 약점도 닮는다. 이러한 유전적 유사성은 유전공학의 개입을 초래하는 근거가 된다. 인간의 문제 가운데에는 수술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신체적 결함도 있으며, 이 면에서는 유전공학이 긍정적인 공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문제들은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해결해야 된다. 영혼은 수술할 수 없기 때문에, 영혼과 관련된 문제들은 영적인 방식으로 치유되고 극복되어야 한다.

 

부모의 습관적 범죄는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는 유전적 변이와 행동의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는 자녀의 이러한 문제를 수술로 해결할 수 없다. 신체에 상해를 가하고 수술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도 잘못이지만, 마음에 상처를 가하고 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더욱더 잘못된 것이다. 유전자 치료를 통하여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죄성은 신체와도 관련이 있지만, 보다 인간의 주체인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원과 성화

 

진정한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죄책은 아담으로 대표되는 인류 공동체에게 모두 부과된 법적 형벌이기 때문에 유전자나 육체와 무관하며 오로지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이러한 사죄가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믿고 수용할 때 죄책과 정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의로움과 영적 평화가 주어진다.

 

한편, 인간성의 오염은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해결되는데, 먼저 성령의 신비로운 치유를 통하여 인간 저변에 도사리고 있는 영혼의 저항심과 반항심을 제거하며, 자유의 능력을 부여하여 영혼이 주체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행동을 교정하고 신성을 회복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성화의 과정은 일생동안 계속되는데,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관계 회복이다. 인간의 죄악은 본질적으로 창조자 하나님과의 단절이며, 이러한 단절은 마치 나무에서 잘라진 가지가 뒤틀리고 메마르는 것같이 인간 영혼의 왜곡과 쇠약, 그리고 반항성을 결과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인간과의 관계능력도 심각하게 왜곡되고 약화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문제는 유전자 조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연결하는데 있다. 하나님과의 화해와 교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며, 성령의 치유로 점차 회복되어진다. 십자가는 성화에 있어서도 결정적이다. 그의 고난을 수용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십자가의 사랑을 배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의 죄성을 치유하여 신을 닮은 인간이 되는 비결이다. 유전공학은 일반은총인 과학의 한 분야로서 인류에게 공헌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으나, 과학의 선을 넘어서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폴 램지가 지적한 대로, “인간은 신노릇을 하려고 들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기를 배워야 한다. 인간이 되기를 배운 다음에는 신노릇을 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2002.5.25)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