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역사가 진행하면서 다양하게 변화하고 새롭게 개발되어 왔는데,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의 획기적인 변화는 인터넷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사실이다. 에버렛 로저스에 의하면, 인간은 문자시대와 인쇄시대를 거쳐 19세기 중엽 전신의 발명으로 전화, 라디오, 텔레비젼과 같은 텔리 커뮤니케이션 시대로 접어들었고, 20세기 중엽에는 새로운 미디어(new media)인 컴퓨터의 발명으로 상호작용적 커뮤니케이션(interactive communication) 시대가 출범하였다.1) 인터넷은 컴퓨터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대표적 방식으로서,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장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고속통신망의 확장과 함께 인터넷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직업상 인터넷을 항상 사용해야 되는 인구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으며, 일반인도 전자상거래, 금융, 제반 사무, 교육을 위해 인터넷의 사용이 불가피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으며, 새로운 네티즌 세대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적극적인 그리스도인과 교회들도 인터넷에 열광하고 있으나, 인터넷에 대한 무비판적 열광은 재고되어야 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테크놀로지의 문제점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한 프랑스의 문화비평가 작크 엘룰은 {테크놀로지의 허세}에서 교회가 테크놀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2) 갈릴레오 사건 이후로 교회가 과학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콤플렉스에 빠져 시대에 낙후되지 않으려고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서 오히려 세상보다 더 열광적이 되었다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의 현대화를 외치며 생존을 위해 심지어 전통적 교리까지도 바꾸어야 한다는 적응주의자들에게 기독교 영성이 남아있다면, "과연 그 영성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통탄한다.

이제 초기단계에 있는 인터넷은 현대 테크놀로지의 종합적 첨단으로서, 우리의 영성에 관한 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문제점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절제하며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시대라는 도전앞에서 우리는 진지한 신앙적, 신학적 성찰을 통하여 인터넷에게 정복당하기 보다 오히려 정복하여 우리의 영성과 하나님의 나라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영성의 문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 오늘날 개신교회가 심각한 영성신학의 빈곤으로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개신교 내에서 영성의 정의조차 일치하지 못하는 혼란으로 인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개신교 전통에서는 영성이 신앙과 삶의 전적 통합과 전인(totus homo)의 영적 형성, 특히 관계성의 배양에 있다고 제시하면서, 이러한 목적를 위해 방법은 변할 수 있고 현대의 사회적 변화에 따라 영성개발의 방법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신의 형상과 죄인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면을 개발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인간성을 소유하게 된다. 또한,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어서, 무엇을 주도적으로 개발하느냐에 따라 육적인 인간 혹은 영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영성은 영혼의 능력을 개발하고 훈련함으로서 강화되고 성장하는데, 그것은 뉴에이지적 영성이나 신비주의적 영성과 같이 개인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초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내적 작용을 통하여 개발되어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거룩한 사회적 능력, 즉 인격적 관계능력을 가리킨다. 성경은 인간이 죄악과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능력을 상실하고 관계가 단절되었지만, 성령의 작용으로 화해와 사랑의 관계능력이 회복된다고 가르친다. 현대는 외모에 지배되는 사회이며 육체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영성이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기 쉽다. 특히, 문자시대에서 영상시대로 진입한 현대에서 인간의 영성은 메마르고 뒤틀릴 수 있다. 현대인은 군중속에서 고독을 느끼며, 물질적 풍요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직면하고, 정보의 홍수속에서 영성의 고갈을 경험한다.

인터넷의 영성적 순기능

그러면, 인터넷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능력의 배양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방해가 되는가? 물론, 인터넷은 현대 문명의 이기로서 도구적 중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의 문제는 테크놀로지의 보편적인 문제에 기초하고 있어서 공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의 사용이 개인적인 문제와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영성과 연관하여 순기능과 역기능의 양면이 혼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기능에 관한 논의로서, 동일한 행위가 양면의 기능을 포함할 수도 있다. 먼저, 인터넷의 이용이 우리의 영성에 도움이 되는 측면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 인터넷은 인간관계를 보다 원할하고 긴밀하도록 도와준다. 그 대표적인 용도가 이메일이다. 고대에 인편으로 보내던 서신이 우편으로 빨라졌지만, 이메일은 전세계 어디나 즉시 무료로 전달된다. 이메일은 음성이나 음악, 심지어 동영상도 포함시킬 수 있어서 인격적 교제를 증진시킨다. 인터넷 전화는 시내요금으로 국제전화와 시외전화를 무제한으로 가능하게 하고, 채팅은 문자로 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성도간의 교제나 선교사들의 격려에도 유익한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인간관계의 증진은 관계능력을 본질로 하는 영성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로, 인터넷은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로서 검색방법만 익히면 간단히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우리 생활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기독교는 반지성주의가 아니며, 지식을 정죄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지식은 자연을 통제하고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며 하나님과 인간을 섬기는데 필요하다. 과거에 소수의 전문가나 대학이 정보를 독점하였으나, 이제 인터넷을 통하여 속속 제공되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교회와 선교정보, 한국교회와 지역복음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성경연구와 신학에 관한 지식도 풍요하게 접할 수 있으며, 목회자도 설교준비와 목회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다. 비록 지식과 정보는 차이가 있지만, 무지보다 지식이 영성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이 정보기능도 또 하나의 순기능이다.

셋째로, 인터넷은 선교와 전도, 그리고 목회를 도와준다. 인터넷 선교의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인터넷 선교단체들도 활발한 사역을 전개하고 있다. 과거에 선교가 어려운 지역에서 이용되었던 방송선교가 인터넷선교로 발전하고 있으며, 축호전도나 노방전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터넷전도는 안방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미 교회들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전도와 교육에 활용하고 있으며, 채팅그룹이나 게시판, 또는 토론광장을 통하여 청소년목회에도 공헌하고 있다. 앞으로, 목회에 이메일을 통하여 교인과의 부족한 교제를 보완하고 다양한 교육과 풍요한 교회소식 전달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넷째로, 인터넷은 신앙성장의 다양한 방편을 교류하도록 도와준다. 이미 설교나 성경공부를 카세트 테이프로 복사하여 사용하고 있으나, 인터넷에 동영상으로 또는 음성파일로 제공하면 불필요한 자원이나 재정낭비 없이도 더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한, 평신도들의 성경연구나 신학적 이해를 습득하는데도 인터넷은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책이나 강의와 달리, 인터넷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며 궁금한 부분은 계속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다양한 찬송들을 인터넷에서 접하고 다운 받아 이용할 수 있다.

다섯째로, 인터넷은 교회의 연합을 도와준다. 인터넷은 세계적 네트워크로서 전세계의 기독교인들과 교회 및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어서, 그들의 사이트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세계교회와 교제하게 되며 연합의식이 정착할 수 있다. 국내 혹은 국제적으로 특정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동아리를 결성하여 의견을 나누고 공동대응과 기독교운동을 전개하는 채널로 이용될 수 있다. 수많은 분열로 얼룩진 한국교회에서 인터넷을 통한 그리스도인들의 교류는 하나됨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 장애자 교육이나 정치적 참여 등에도 인터넷은 유용한 방편임에 틀림없으며, 앞으로 인터넷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순기능들이 추가될 것이다.

인터넷의 영성적 역기능

이제, 인터넷이 그리스도인의 영성 유지와 성장에 방해가 되는 측면을 살펴보자. 첫째로, 인터넷은 도덕적 타락을 조장한다. 인터넷은 세계적 네트워크로서 어떤 정부도 모두를 통제하지 못하며 어떤 경찰도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범죄의 온상으로서, 유혹의 마수가 여기저기 깔려있는 위험한 세계이다. 예를 들어, 이메일만을 단순히 사용하려해도, 그들에게 주소가 포착되면 하루에도 여러개의 부도덕한 정크메일이 들어와 있다. 윤리의식이 철저하지 못한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열어보게 되고, 그것과 연결된 끝없는 링크들로 인해 극도로 변태적이며 그것도 동영상으로 나타나는 포르노의 세계로 빠져들기 쉽다. 더구나, 아직 신앙과 윤리가 정립되지 못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넘쳐나는 음란 사이트에 접하기 시작하면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호기심으로 인해, 그리고 자기 방에서 혼자 늦은 밤에 사용하기 때문에 절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러한 포르노의 영향은 그의 영성 형성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또한, 채팅에서 익명성을 구실로 비윤리적인 교제를 은밀히 즐기는 죄악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능동적으로 불건전한 사이트를 찾아 다니는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그러지 않아도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다 보면 여기 저기서 연결되어 접하게 될 수 있다. 우리의 조용한 사생활이 인터넷을 통해 침해받고 공격받음으로서 영성이 손상될 수 있다.

둘째로, 인터넷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불필요한 정보로 가득 채운다. 우리 정신은 정보를 받아 축적되면서 그 정신 세계를 형성하게 되므로, 어떤 정보가 지배적으로 들어오느냐가 결정적이다. 우리의 영혼은 사실상 그처럼 많은 정보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현대인은 매스 미디어를 통하여 매일 과잉 정보를 유입한다. 더욱이, 인터넷의 생활화는 정보의 홍수를 결과한다. 그것은 우리 정신 세계를 쓰레기와 같은 정보로 가득 채워버림으로서 다 써버린 하드디스크와 같이 정신적 여유를 상실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불행한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부정적 정보들은 무의식에 숨어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상하여 우리의 영혼을 괴롭힐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그리고 인간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가난한 영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현대인은 텔레비젼과 라디오, 신문,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매일 우리의 정신 세계를 가득 채워버림으로서 영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지엽화된다.

셋째로, 인터넷은 우리의 내면 세계를 황폐화한다. 가끔 인터넷을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은 무관하지만, 매일 인터넷을 몇시간씩 습관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점차 중독에 빠지게 된다. 프랑스의 텔레라마가 20세대에게서 텔레비젼을 한달간 제거하는 실험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너무 많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할뿐 아니라 그 시간을 이용하려고 의도했던 가족간의 대화도 할 말이 없어 당황하는 '내적 공허(inner void)' 또는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oid)'의 실상을 발견하고 쇼크를 경험하였다.3) 그로 인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한달이 지난후 6개월 연장을 제의하였을 때 한 가정만 제외하고 19가정이 이에 찬성하였다. 텔레비젼이 습관을 통하여 우리의 내면세계에 차지하는 공간이 크며, 그 중독성을 치유하는데 5년이 걸린다는 보고가 있다.4) 인터넷 중독은 보다 더 심하다. 왜냐하면 인터넷에는 보다 저급한 정보가 범람하며 감각적이고 오락적인 형태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영성에 필수적인 고요함과 깊이는 인터넷의 경박함으로 황폐화되고, 후기자본주의의 포스트모던 문화는 '정서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5)

넷째로, 인터넷은 인격적 관계능력을 약화시킨다. 미디어는 현실과 우리 사이를 차단하고 그 속에서 안주하도록 만든다.6) 그래서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는 정보의 차단과 오도, 또는 역정보(disinformation)라는 역기능을 결과한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문제만 중요하고, 거기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젼에서는 뉴스의 현장이나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동정하지만, 그안으로 들어가 도와줄 수 없다. 따라서, 실천없는 동정자가 된다. 실제 현장에서 그런 상황을 직면하여도, 영상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무의식적으로 그 현장을 텔레비젼적 상황으로 인식하여 유사하게 반응하며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컴퓨터는 이러한 기능에 가상현실을 추가한다. 또한, 세계적 네트워크의 발생은 자기의 사회통제능력에 대한 포기와 함께 일종의 자기생존전략과 자기방어논리로서 외부와 단절하고 최소자아로의 자기퇴행 또는 자기도취에 안주하는 현실과의 단절을 초래한다.7) 텔레비젼이나 인터넷에는 부담이 없지만, 그것이 편해질수록 실제적인 대인관계능력은 약화되며 현실에서 겪는 어려움 때문에 모든 일을 인터넷 앞에서 처리하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기공간에 칩거하는 재택근무의 확산도 인격적 사회관계의 파괴와 공적공간의 죽음이라는 역기능을 결과한다. 영성의 본질이 관계능력이기 때문에, 이는 영성에 치명적이다. 성도들과의 교제도 점차 부담스러워지고 약화된다. 인터넷의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고 컴퓨터와 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인간화하여 보다 기계적 느낌을 중화시키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시청각뿐 아니라 촉각과 후각도 느끼게 하는 컴퓨터가 개발된다고 하지만,8) 그것은 허위와 기만의 세계일 뿐이다.

다섯째로, 인터넷은 교회관에 혼란을 야기한다. 이미 사이버교회가 출현하였으며, 이러한 인터넷교회가 21세기에 번창하리라는 전망도 있다.9) 아직은 별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으나, 인터넷기술의 발전과 함께 삼차원의 가상현실 기재를 사용하면 실제로 교회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느낌을 연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이버교회는 본래 교회의 머리인 예수께서 의도한 성도의 공동체가 아니며, 인격적인 교제와 사랑, 성례와 봉사도 없는 머리속의 교회에 불과한 것으로, 그릇된 교회관에 근거한 것이다. 더욱이, 교회에 비판적이고 실천에 인색한 지식중심의 기독교인에게는 사이버교회가 편리하겠지만, 이러한 사이버신앙의 형태는 유형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진정한 실제적 성도의 교제(communio sanctorum)를 거부함으로서 관계적 영성은 고갈될 것이다.

기술결정론과 도전적 영성

앤소니 기든스는 {현대성과 자아정체성}에서 현대사회는 오로지 "현대성 그 자체의 동학에 의해" 발전한다고 진단하였다.10) 이 말은 현대의 모든 체계와 발전방향이 도덕이나 종교같은 '외부적 기준'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자본주의의 확대명령에 의해 진행된다는 뜻이다. 매스 미디어를 장악한 자본은 행복한 생활의 목표를 설정해주고 그에 상응하는 상품을 소비하도록 만들며, 자아실현의 욕구도 마찬가지로 조작된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숭배자들은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세계의 통치자는 하나님이며, 역사는 테크놀로지가 주도하지 않는다. 임성빈교수가 지적하는 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미래에 대한 운명론적이며 체념적인 태도"로 기술결정론에 굴복하지 말고,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인터넷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11) 오히려, 인터넷은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개발이라는 일반은총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태연교수는 인터넷의 성패가 "그것이 구속사의 목적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한다.12) 인터넷이 역기능만 가진 부정적 매체가 아니라 순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지혜롭고 절제된 선택적 사용은 영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연구결과 실제로는 미디어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소효과이론, 혹은 제한적 효과이론도 제시되었다.13)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 그리고 선택적 기억(selective retention)이라는 신비한 메커니즘을 통해 문화선택을 수행한 결과이다.14) 그러므로, 인터넷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도전적 영성으로 정복하고 이용해야 한다.

실로, 인터넷은 새로운 세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인터넷선교가 요청된다. 흑암의 세력이 인터넷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건전한 사이트가 많이 개설되어야 하며, 사랑의 봉사를 제공해야 한다. 인터넷의 순기능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선교적 이용을 확장하며, 인류를 오도하는 타종교나 사교들이 판치지 못하도록 교회가 상대적으로 더 고질의 유익한 사이트를 더 많이 증대하여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의 음란사이트나 비윤리적인 정보를 제거하는 정보윤리운동을 전개하며, 인터넷의 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Everett M. Rogers, {현대사회와 뉴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 김영석 역 (나남, 1994), 47-57.

2. Jacques Ellul, The Technological Bluff, tr. Geoffrey W. Bromiley (Eerdmans, 1990), 396-400.

3. Ibid., 338-9.

4. Ibid., 339.

5. 양건열, {비판적 대중문화론} (현대미학사, 1997), 228-9.

6. Ellul, The Technological Bluff, 334-6.

7. Anthony Giddens,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후기 현대의 자아와 사회}, 권기돈 역 (새물결, 1997), 275-82.

8. Nicholas Negroponte, {디지털이다}, 백욱인 역 (커뮤니케이션북스, 1996), 85-8.

9. 오해석, "인터넷시대의 미래교회", {현대문화의 한계를 넘어서}, 임성빈 편 (예영, 1997), 284.

10. Giddens, {현대성과 자아정체성}, 47.

11. 임성빈, "정보사회와 윤리", {21세기의 도전과 기독교문화}, 통합윤리학회 편 (예영, 1998), 275.

12. 최태연, "정보화사회, 사이버문화, 기독교신앙", {대중문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기독교인을 위한 대중문화 매뉴얼}, 기윤실 문화전략위원회 편 (예영, 1998), 298-9.

13. Rogers, {현대사회와 뉴미디어}, 194-202.

14. Herbert Hyman와 Paul Sheatsley의 연구결과.

 

(2000년 4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