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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서론   |   신론   |   인간론   |   기독론   |   구원론   |   교회론   |   종말론   |

1. 구원론의 논제

 

(1) 구원론이란 무엇인가

(i) 학문적 분야로서의 구원론은 일차적으로 구원, 즉 구원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획득할 수 있고 그것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가능하다는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연구이기 때문에, 그것은 성경에 제시된 기독교의 구원을 다루며, 따라서 여러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다른 구원의 방법은 제외한다.

 

(ii) 조직신학의 순서에서 구원론이 기독론 다음에 오는 이유는 구원론이 그의 속죄와 화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객관적 구원의 주관적 적용을 다루기 때문이다. 기독론 없이는 구원론이 존재할 수 없다.

 

(iii) 일반적으로,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원의 적용자인 성령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그러나 일부 전통에서는 구원론과 분리하여 성령론으로 다루기도 한다.

 

(iv) 구원론은 주로 소위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이라고 부르는 구원의 순서 혹은 단계들을 다루는데, 그것은 소명, 중생, 회심, 칭의, 그리고 성화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시간적 순서로 보는 전통적 개념은 오늘날 성경적으로 실천적으로 비판을 받는다. 안토니 후크마가 지적한 대로, “구원의 서정에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은 전자가 후자를 대치하는 일련의 연속적 단계가 아니라, 그것이 시작된 후에 동시적으로 함께 진행되는 구원 과정의 다양한 측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2) 구원론의 중요성

(i)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성취된 구원의 은택을 받고 향유하는 개인적 방법을 제공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중요하다. 존 칼빈이 강조한 대로, “그리스도가 우리 밖에 머물러 있고 우리가 그와 분리되어 있는 한, 그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받은 고난과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구주가 되고 우리 안에 거해야 된다.”({기독교 강요}, III.i.1)

 

(ii) 구원론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학문으로서, 교육이나 심리학이나 철학 같은 인간적 학습에 의한 외적, 행동적, 보조적 변화와 달리, 성령의 초자연적 역사에 의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연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상적 소명에 의해 시작되며, 죄인을 성도로, 영적 사망을 영적 생명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지상적 존재를 천상적 존재로 변화시키는 초월적 영화로 종결된다. 구원론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며, 또한 우리 구원자 예수님의 고귀한 구원을 감사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준다.

 

(iii) 구원의 실제가 자기의 구원 이해에 의존하기 때문에, 구원론은 기독교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결정적이다. 특히, 구원의 본질과 과정과 목적에 대한 이해가 독특한 구원의 모델을 채택하는데, 이것은 구원을 완성하는 그의 방향성에 결정적이다. 그것은 자기의 인생관과 세계관뿐 아니라, 그의 교회관과 전도, 선교, 봉사 (diakonia< >), 나아가 미래와 소망에 관한 견해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그것은 윤리와 목표의식에도 기반적인 구조를 제공한다. 그것은 세계의 역사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데도 본질적이다.

 

 

2. 구원이란 무엇인가

 

(1) 구원의 필요성

(i)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타의에 의한 존재로서, 왜 내가 존재하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여기에 지금 존재하게 하였는가? 어떻게 내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무슨 목적을 위하여 내가 존재하는가? 와 같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풀어야 한다. 만일 그와 같은 존재의 근본적 질문들을 올바로 그리고 충족하게 답변하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의미 있고 성공적인 삶이 되는데 실패한다. 그러므로, 외부로부터(extra nos) 오는 절대적 대답과 지향, 그리고 자기 인생의 사명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의 부여가 필수적이다.

 

(ii) 로마서 7장에 잘 묘사된 대로,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고 자기를 조화시키려는 괴로운 노력이 끝없이 실패하는 자기 모순적 존재이다. 인간은 항상 불안과 위기의식으로부터 평화와 안전을 갈망한다. 자기 주위에서 발생하는 많은 고통과 사건들이 만족스럽게 해결되지도 않고 설명되지도 않는다.

 

(iii) 인간은 무한성이라는 개념을 전제하는 유한성을 인식하는 유한한 존재로서 많은 면에서 제한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반하여 죽을 운명에 있다. 그러므로, 제한됨과 무력함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은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이다.

 

(2) 자기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

(i) 종교, 즉 신이나 초자연적 능력의 도움으로 그와 같은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신이나 그와 같은 능력은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으며, 그와 같은 인간적 작업은 자연히 종교 지도자들의 조작을 결과하였다. 종교적 계율이나 규칙의 상대적 준수를 통하여 의로움을 느끼는 자의적 방법이 유대교나 이슬람교 같은 율법주의적 종교에서 인정된다.

 

(ii) 낙관적 인간주의는 그와 같은 문제들을 인간 능력의 점진적 개선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접근하였다. 니체의 초인(Supermensch)에 대한 신념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에 오염된 현대 포스트모던 세계에 풍미하고 있다.

 

(iii) 이 문제들을 부정하는 길도 그와 같은 난제를 회피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자연주의는 인간 존재의 특별한 의미나 목적을 부정하면서, 단순히 자연의 길을 따르라고 제안한다. 그들은 의미 없음, 무, 즉 허무주의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한편, 정신적 탈출이 불교나 플라톤주의와 같은 사상에서 시도된다.

 

(iv) 폴 틸리히는 자기 구원의 다섯 가지 노력으로, 종교적, 계율적, 금욕적, 신비적, 그리고 성례-교리-감성적 자기 구원방법을 열거하였다.

 

(3) 구원의 성경적 개념

(i) 어원적으로, 구원(σωτηρια)은 구조, 구출, 보존, 해방, 안전, 건강 또는 복지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그것은 위험과 질병으로부터의 구조와 보존의 행위 또는 결과를 의미하며, 안전과 건강과 번영을 함축한다.” 성경에서, 그것은 신체적, 도덕적, 영적 측면을 포함하며, 배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된다.

 

(ii) 구약에서, 구원은 일반적으로 적의 압제와 가난의 곤고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또는 신체적으로 구조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그 영적, 도덕적 측면이 그러한 구조의 근거임을 계속적으로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서 자기 백성을 위험과 압제로부터 구원하였다. 출애급 사건은 구약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구원 경험으로서, 유대의 구원 사상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인간 구원자는 불완전하여 이스라엘의 영원한 구원을 성취하는데 실패한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고난 받는 종으로서 직접 와서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을 부여한다고 약속하였다.

 

(iii) 신약에서, 구원은 중생(새로운 탄생), 새로운 피조물, 새롭고 영원한 생명(인생), 해방과 자유, 화해와 평화, 사랑과 믿음, 은혜의 선물, 진리의 지식, (아버지) 집으로 돌아옴, 입양과 상속, 치유와 회복, 죄의 씻음과 용서, 칭의와 성화 등 다양한 개념으로 서술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자로서,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며(행 4.12), 그의 구원은 성령에 의해 적용된다. 그것은 동시에 값없고 값비싸며, 신앙과 행위를 요구하고, 개인적이며 공동적이다. 구원받기 위하여, 세례가 요구된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iv) 구원은 일순간의 사건이라기보다 출애급과 같이 긴 과정을 거쳐서야 완성되는 것이다. 월터스에 의하면, 구원이 세 가지 시간적 측면, 즉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소유적, 진행적, 예기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자가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 지금 구원을 받고 있고, 또한 앞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엡 2.8, 고전 1.18, 마 10.22, 롬 5.9-10, 8.24)... 심지어 선택받은 자도 그들의 소명과 선택을 견고히 하며(벧후 1.10) 그들의 구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라(빌 2.13)는 경고를 받는다.”

 

(4) 기독교 구원의 다양한 모델

(i) 다음과 같은 구원의 모델들이 지금 통용되고 있다: 신적 존재와 갖는 신비적 교제로서의 구원, 신에 대한 정통적 지식으로서의 구원, 인간성의 도덕적 개선으로서의 구원, 종교적 집단의 문화적 참여로서의 구원,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정치적 참여로서의 구원, 영원한 삶의 미래적 참여로서의 구원, 그리고 현재적 삶의 행복과 번영으로서의 구원 등이다.

 

(ii) 도날드 블뢰쉬는 다섯 가지의 신학적 구원 모델을 열거한다: 기독교 신비주의 모델, 루터 모델, 칼빈 모델, 웨슬리 모델, 그리고 바르트 모델.

 

 

3. 구원 이해의 역사

 

(1) 초기의 구원론

(i)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구원을 받기 위한 두 가지의 자격 요건,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하나님을 향한 회개를 강조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은 죄의 용서가 세례시 부여된다는 “의식주의로의 초기 형태”를 보여준다.

 

(ii)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있다는 초대교회 이단 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하여, 어거스틴은 타락한 인간의 전적 부패와 그에 따라 구원을 위한 불가항력적 은총의 필요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세례에서 받는 시발적 은총이 중생과 사죄를 가능하게 만들지만, 견인의 두 번째 은총을 받지 못하면 그것이 상실될 수도 있다는 두 은혜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서 로마 카톨릭의 구원론 체계를 출범시켰다.

 

(iii) 로마의 구원론 체계는 다섯 가지의 독특한 요소로 개발되었다: 정통적 신조에 대한 지적 동의로서의 신앙, 신자의 죄에 대한 만족으로서 자비의 선행과 자기 수련, 추가적 순종에 대한 상급(supererogation), 잉여적 선행의 전가된 공로에 근거한 마리아와 성자 숭배, 그리고 세례에 의존하는 구원이다.

 

(2) 중세의 구원론

(i) 은혜 교리에 있어서, 스콜라주의가 충족한 은혜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데는 어거스틴의 구원론을 추종하였으나, 유효적 은혜의 필요성은 부인하였다. 피터 롬바르드는 단독적 은혜와 협동적 은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신앙과 하나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는 신앙, 비활성적 신앙과 활성적 신앙으로 구별하였다.

 

(ii)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로마교회의 구원 순서는 다음과 같다: 충족한 은혜가 주입될 때(gratia infusa), 그리고 그것이 저항되지 않고 협조적일 때, 그것은 일곱 가지의 행위적 요소, 즉 교회가 가르친 진리에의 찬동, 자기 죄악 상태에 대한 성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소망, 죄에 대한 혐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겠다는 결심, 그리고 셰례를 받으려는 소원을 통하여 칭의를 준비한다. 이 일곱 가지의 준비가 세례로 완성되면, 칭의가 발생한다. 그것은 계명의 순종과 선행을 통하여 보존되며, 결국 영원한 삶이 부여된다. 이러한 체계에서는 칭의와 성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iii) 여기서, 구원이 불신이나 치명적 범죄(대죄)로 인해 상실될 수 있으나, 참회의 성례, 즉 통회, 고백, 그리고 만족을 통한 면죄에 의해 회복될 수 있다. 죄책과 영원한 형벌은 면죄에 의해 제거될 수 있으나, 죄의 현재적 형벌은 만족의 행위를 통해 지불될 수 있는데, 그것은 성자나 마리아로부터의 공로 전이를 포함한 여러 방법의 사죄를 통하여 취득될 수 있다.

 

(3) 종교개혁기의 구원론

(i) 면죄부를 포함한 로마교회의 사죄 체제에 반대하여,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값없이 죄를 용서한다고 주장하고, 믿음에 의한 칭의 교리를 ‘교회가 서느냐 무너지느냐의 (결정적) 신앙’이라고 선언하였다. 오로지 믿음에 의한 sola fide 그리고 오로지 은혜에 의한 sola gratia 구원이 개신교 구원론의 표상이 되었다.

 

(ii) 루터파는 구원의 서정(ordo salutis)을 행 26.17-18에 기초하였다: “내가 너를...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한편, 칼빈파는 그것을 롬 8.30에 기초하고, 구원의 협약에서 확립된 영원한 선택과 신비적 연합에서 시작하였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iii) 그러므로, 칼빈파는 선택받은 자들의 무조건적 구원과 모든 중생자의 예외 없는 견인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루터파는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저항될 수 있으며 신앙도 언제나 상실할 수도 회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iv) 알미니우스주의가 보편적 은총과 인간의 신앙 능력을 강조하며 일어났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 은총을 베풀기 때문에, 누구든지 믿음으로 응답하면 믿음의 공로 때문에 의롭게 되며, 만일 끝까지 믿음을 잘 유지하면 영생의 참여자가 된다. 알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 사이의 첨예한 차이는 거대한 논쟁을 유발시켰다.

 

(4) 근대의 구원론

(i) 경건주의 전통을 따르는 존 웨슬리는 개신교회의 성화가 약해지자 이에 반동적으로 제2의 종교개혁을 시도하였다. 웨슬리가 창시한 감리교회의 부흥운동은 갑작스러운 회심과 즉각적인 구원의 확신을 결과하는 복음을 선포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전체적 성화를 위해서는 제2의 급격한 변화가 요구되었다. 그것은 두 번째 은총의 선물로 가능하다.

 

(ii) 자유주의는 구원의 초자연적 은혜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 특히 그의 탁월한 도덕성과 종교성을 본받는 심리적, 도덕적, 또는 문화적 구원을 제시하였다.

 

(iii) 20세기에, 세속화의 현대적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구원론들이 출현하였다. 실존주의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구속이 아니라 신 앞에서 내리는 자기의 실존적 결단에 기초하고 있다. 불트만에 의하면, 구원은 “모든 것이 신으로부터 오며 결코 우리 자신에게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신을 향하여 급격한 자기 헌신을 결단함”으로서 진정한 실존(authentic existence)이 되는 길이다. “그와 같은 삶은 모든 세속적이고 유형적인 대상으로부터의 구원을 결과하며,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와 그를 통한 자유로 인도한다.” “그것은 우리의 실존(Existenz), 즉 인생에 대한 우리의 모든 조망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폴 틸리히는 구원을 “자기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세속화 신학은 성화의 성숙한 형태는 세속화라고 주장한다: “자기의 능력을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함으로서 신에게서 독립적이 되는 것은 자기를 확립하며 세상에 파고드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진정한 의미이다.” 구원은 예수와 같이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존 로빈슨).

 

 

4. 구원론의 현대적 경향과 적용성

 

(i) 구원의 사회적 이해: 구원을 개인적이고 미래적으로 보는 전통적 구원 이해에 반발하여, 사회복음의 신학, 그리고 여성신학과 흑인신학을 포함하는 해방신학이 구원을 일차적으로 세상에서 억압받는 상태로부터의 해방으로 이해한다. 더욱이, 구원은 보다 통전적이고 우주적이며, 심지어 생태적으로 인식된다.

 

(ii) 구원의 객관적 이해: 자유주의와 실존주의가 추구한 구원의 주관적 이해가 구원의 객관적 실체에 대한 강조로 도전받고 있다.

 

(iii) 구원의 목적론적 이해: 개신교회에서 오로지 은총으로 받는 구원이라는 종교개혁의 강조가 약화되자, 그 극복 방안으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soli Deo gloria이라는 구원의 목적에의 강조가 시도되고 있다. 디트리히 본훼퍼는 값싼 은혜와 기계적 신관의 세속화된 자연 종교를 비판하고, 필연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결과하는 그리스도에의 참여(participatio Christi)에 우리의 구원을 재집중하였다.

 

(iv) 구원의 다원주의적 이해: 평화론적 다원주의라는 현대의 포스트 모던적 경향을 따라서,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이 타문화와 타종교에 존재하는 익명의 그리스도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부인되었다. 여기서, 구원은 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 화해라기보다, “실제적인 인간의 변화, 자연적 자의식으로부터 신을 중심으로 하며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방향성으로의 점진적 변형”으로 이해된다.

존 힉, 다원주의 세계에서 구원에 대한 네 가지의 견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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