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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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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역의 본질

 

(i) 교회의 활동을 흔히 "사역 (使役)"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윗 사람, 즉 교회의 머리이며 주인인 그리스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영어 단어인 ministry는 라틴 단어 ministerium에서 왔는데, 그것은 헬라어 단어 diakonia (διακονια)의 직역으로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수행하는 종의 일을 의미한다. 또한, 라틴어 minister는 헬라어 diakonos, 즉 종에 상응한다. 그 말은 교회의 활동이 우리 자신의 자의적인 결정이나 기호에 의해 수행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암시한다. 몰트만이 지적한 대로, 교회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역으로 교회의 사명이 이를 수행할 교회를 창조한다. 사명이 교회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명으로부터 오며, 사명의 빛에서 교회가 이해되어져야 한다(10). 그러므로, 그것은 주님의 명령과 위임에서 시작한다. 비록 죽기까지 전적으로 순종하면서 오로지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한 일만 수행한 그리스도의 모델을 따라 능동적으로 그리고 기꺼이 사랑이 동기가 된 순종을 가지고 수행되어야 하지만, 교회의 사역은 자원 제도가 아니다. 비록 우리는 사도와 달리 교회를 통한 소명과 위임의 형식으로 사역에 참여하지만, 교회의 모든 사역은 사역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ii) 교회의 사역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부탁하신 화해의 사역이다. 모든 개별적 사역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며, 그 안에서 사역의 통일성이 수립된다.

(iii)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그리고 교회의 일이 위임된 사역자들을 그의 종으로 하여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구조를 형성하여야 한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한 그의 기도는 통일된 구조와 조직적인 구성을 전제한다. 그러므로,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교회가 필수적이다. 새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동시에 동료 신자들과의 연합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들과 미래에 

연합된 신자들과 미래에 연합될 신자들을 포함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의 지체가 몸의 모든 다른 지체들과 유기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새로운 신자들이 추가되면서 계속 자라나고 확장되는 유기적이며 살아있는 거룩한 건물이다. 그러나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여러 개의 건물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이기 때문에, 모든 부분이 이 신비한 건물의 다른 모든 부분과 연결되고 통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조직과 활동은 교회 사역의 기반이다. 교회는 자신을 건설하고 개발하며, 인류 사회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존속하도록 요구되었다.

 

2. 사역의 다양한 기능

 

(i) 조직화된 교회는 교회에 부여된 주님의 위임을 시행할 책임을 가진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있고 활력적인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개혁자들은 교회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시행이라고 이해하였으며, 이 두 가지 기능이 참된 교회의 증표( notae verae ecclesiae)라고 주장하였다. 후에, 교회 권징의 시행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주님이 위임한 모든 사역이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본질적이고 기초적인 내적 기능이다.

(ii) 신약에서, 교회 사역은 수행해야 될 많은 일들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세 분야로 구별된다: leitourgia, diakonia(διακονια), 그리고 koinonia(κοινωνια). 말씀의 선포는 예배, 즉 레이투르기아로 확대되며, 거기에 기도와 찬양이 포함된다. 교회는 모여서(히 10:25, 고전 14:26) 찬양과 말씀의 선포와 기도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요 4:23, 시 29:2, 95:1, 96:2-3, 대상 16:9, 23, 히 13:15, 벧전 2:9, 딤전 4:13) 명령되었기 때문에, 교회는 일차적으로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디아코니아는 디아코노스, 즉 집사의 직책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섬김의 사역을 내포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고아나 과부와 같이 약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사랑으로 돕는 일이다. 초대교회에서, 연보(捐補)가 오로지 이 목적을 위해 시작되고 유지되었으나, 후에 다른 목적들로 전용되었는데, 주로 교회 조직의 유지를 위해 사용되었다. 산업혁명의 발생 이후 빈부격차의 문제가 막시즘과 사회주의를 야기하면서, 교회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다양한 대사회 사역을 전개하게 되었으며, 월터 라우쉔부쉬(Walter Rauschenbusch)의 사회 복음과 약자를 경제적으로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도와야 된다는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을 포함하는 사회운동들로 표출되었다.

(iii) 사도신경에서 교회는 communio sanctorum, 즉 성도의 교제로 정의되어 있다. 실로,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영원한 본질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도적인 교회를 유기적인 교회로 승화시키는데 필수 불가결하며, 심지어 교회의 대부분의 사역들이 종료된 후에도 천상의 영화된 교회에서 계속되기 때문이다. 예배와 섬김도 본질적으로 영적, 물질적 교제이기 때문에 코이노니아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 사역은 특히 개인주의와 군중속에서의 고독으로 소외된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교회의 교제는 삼위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 교제와도 구별된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또한, 우리의 교제는 삼위일체 하나님 세 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교제를 모방하는데, 그것은 perichoresis, 즉 평등, 구별, 그리고 통일을 근거로 한 상호 내주, 상호 존중, 그리고 상호 사랑이다. 코이노니아는 인간성의 성화와 신성과의 연합을 결과하며, 지상의 훈련이 이상적인 천상의 코이노니아로 발전된다. 그것은 성도 간에 서로 동정하고 돌보며 나누고 권면하며 가르치고 섬기며 중보하는 사역이다 (롬 12:15-16, 13, 갈 6:1-2, 히 10:24-25, 롬 14:1, 19, 엡 4:11-15, 요 13: 12-17, 약 5:16).

(iv) 19세기 선교의 재발견은 오랜 동안 교회의 본질적 사역에서 무시되어 왔던 선교적 교회론의 부흥을 야기하였다. 그리하여, 마르투리아(μαρτυρια)가 교회의 사역으로 추가되었다. 실로, 교회에 부여된 최대의 위임은 바로 선교였으며, 기쁜 소식의 전파는 반복적으로 명령되었다 (마 28:19-20, 막 16:15, 마 24:14, 롬 10:11-15, 고전 1:21-25, 고후 5:18-20, 딤전 2:1-3). 왜냐하면 복음이 바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과 행위가 결합될 때 이 사역이 더 효과적이고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몰트만은 선교를 missio Dei의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선교는 교회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포괄한다... 복음화는 선교이지만, 선교는 단지 복음화만이 아니다”(10).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정치적 강조는 선교를 마 11:5에서 예수님 자신이 서술한 구원의 개념에 근거한 해방으로 이해한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 4-5). 그는 예수님의 실존 전체가 그의 선포에 완전히 함몰되었다는 불트만의 이해를 오류라고 강력히 비판하였다(81). 블뢰쉬(Donald Bloesch)의 비판을 참고하라. 이와 같은 교회의 새로운 발견에 따라, 미국 장로교회는 1903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성령과 선교에 대한 두 장을 추가하였다.

(v) 20세기에 발생한 교회의 위기의식과 복음 운동은 교육과 교인 훈련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으며, didaskalia또는 matheteia를 교회의 본질적 사역으로 수용하였다. 실로, 예수님이 그것을 이미 명령하였으나, 교회가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깨닫고 순종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로서 어린이든지 장년이든지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성경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승천하기 전에 자기 교회의 본질적 구조와 사역을 준비하고 명령하였다: 성찬과 세례의 성례, 권징제도, 집회와 기도의 능력, 교육, 선교, 그리고 가르침의 실천 등 (마 18:15-20, 26:18-20, 28:18-20). 또한, 예수님이 사도들을 임명하고 훈련시켰으며, 사역을 위임하고, 물질적 구제를 포함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가르쳤으며, 참된 예배를 정의하고, 교회를 인도하고 능력을 부여하며 보호할 성령을 약속하였는데, 바로 그것들이 모두 교회를 위한 주님의 준비 활동이었다. 교회의 설립자와 머리로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조직과 활동에 관한 모든 원칙과 시스템을 수립하였다.

 (vi) 그리스도는 자기 교회가 수행해야 될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부여하셨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그가 새로 설립한 교회는 강력하게 보호될 것이며, 신이 부여한 권위와 능력으로 지상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교회의 권세는 교회에 부여된 모든 사역들을 수행하 수 있는 세 가지의 권세, 즉 교육, 통치, 그리고 봉사의 권세로 구별된다.

 

3. 사역의 균형

 

(i)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차별화를 위해 특정한 사역에 편향적으로 집중하는데, 이는 교회의 목적에 위배된다. 로버트 렉커(Robert Recker)는 현대교회의 다양한 유형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다: 사교 클럽, 학교, 중재단체, 선택받는 자들의 공동체, 병원, 구원의 방주, 봉사 기관, 방송국, 구호단체, 자원봉사 팀, 상담 기관, 입장권 판매소, 영성 카페, 또는 군대등 다양한 교회상을 묘사하였다. 에이버리 덜레스(Avery Dulles)가 교회의 모델(Models of the Church)( Doubleday, 1974)에서5가지 가장 유행하는 모형을 소개하였는데, 다니엘 밀리오리(Daniel Migliore)는 그 모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분석을 제공하였다: (1) 구원의 기관 모델은, 불가피하게 엄격한 상하 계급제도를 개발하며, 모든 지체와 은사의 역동적 참여를 위한 개혁과 갱신을 거부한다. (2) 친밀한 성령의 공동체 모델은, 영적인 체험을 나누는 기도와 치유의 인간적이고 다정한 공동체이지만, 이와 같이 느슨하게 조성된 영적 공동체는 자기 중심의 영적 만족을 추구하는 다른 영적 공동체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3) 구원의 성례 모델은, 주관성과 객관성의 종합이지만, 쉽사리 교회 중심주의나 의식주의로 발전하며, 사회적 관심이나 공동체 의식을 결여한다. (4) 복음의 반포자 모델은, 전도와 선교에 집중하지만, 세상에 대하여 오로지 말할 뿐 듣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강하며 사회적 관심이나 다른 사역이 결여한다. (5) 종이 되신 주님의 종 모델은, 타자를 위한 섬김의 공동체이며 흔히 치유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사회적 화해 사역을 추구하지만, 쉽사리 영적 경건을 무시하고 자기가 선호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한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사역에만 집중하는 모델들은 모두 승리주의적인 교회 중심주의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 실로,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사랑을 실현할 뿐 아니라, 영원한 천상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서로를 훈련하고 성화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비록 개인들은 자기 자신의 독특한 은사와 소명에 집중할지라도, 교회는 이 두 가지 목적을 함께 달성할 수 있도록 균형과 전체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ii) 교회가 totus Christus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의 몸을 사용하여 계속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삼중 사역의 연장이며, 결코 인간 집단의 독립적이고 자의적인 활동이 아니다. 선지자적 직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사역과 연관되며, 전도와 선교, 그리고 선지자적 선포를 위한 여러 가지 다양한 증거 사역들을 포함한다. 제사장적 직책은 성례와 디아코니아, 섬김과 희생의 사역을 포함한다. 그리고, 왕적 직책은 교회의 권징을 통한 교회를 다스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화해의 사역을 통하여 세상을 통치하는 다양한 사역과 연관된다.

 (iii) 교회는 그리스도 사역의 연장으로서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할 의무가 있지만,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조명하고 깨우쳐 교회로 하여금 구속사가 진행하고 그 완성을 향해 접근함에 따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명을 발견하게 한다. 시간과 공간적으로 다른 상황은 예수님이 요 14: 12에서 언급한 대로 새로운 사역을 위한 새로운 소명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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