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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 문답 Theology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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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론의 역사

 

1. 자기에 대한 이해는 모든 이해에 선행해야 되는 실존적 필요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계시를 통한 신의 인간이해에서만 그 완전하고 통전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신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한 연구영역으로 설정하고 인간론 연구를 계속 발전시켜 왔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말씀하시기 때문에 신학적 인간론이 가능하다.

2. 인간론은 초대교회에서 펠라기안 논쟁을 통하여 확립되었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타락한 인간에게도 유지되어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전개하였으나 어거스틴이 이를 반박하고 타락한 인간이 자유를 상실하였으며 따라서 은총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은총론을 제시하였다. 다시 종교개혁에서 sola gratia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경적 구원론을 회복하는 신학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아르미니우스가 다시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자 도르트회의가 소집되어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채택하였는데, 거기서 인간의 전적타락(total depravity)을 선언하였다.

 

3.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를 통하여 부흥한 인간주의(humanism)는 자유주의를 일으켜 인간을 신격화하고 낙관론적이고 이상론적인 인간관을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근본주의와 신정통주의는 죄라는 인간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현대에는 후크마를 중심으로 신의 형상과 죄라는 인간의 양면성을 균형 있게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인간의 문제

 

1. 인간은 “우주에 버려진 존재”(하이덱거)로서 투기성의 문제가 있으며, 타의에 의해 존재와 그 형태가 결정되었다는 타의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자기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투기자 혹은 타자를 찾고 그 이유와 목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우리의 존재를 결정한 타의 혹은 타자의 고려없는 모든 인간이해는 피상적이다.

2. 인간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인간”(Reinhold Niebuhr, The Nature and Destinity of Man, 제1권 제1장)으로서의 특성이 있다.  인간 이외의 어떤 존재도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3. 인간의 자기이해는 모순과 파라독스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이 선한가하면 악하고, 강한가하면 약하고, 제한되어 있는가하면 초월적인 존재이다.  자연주의적 이해와 이성주의적 이해로 대표되는데, 인간은 자기를 초월하고 우주의 끝을 지향하며 순간적 존재이지만 영원을 사모한다.  이러한 모순적이며 역설적인 인간을 가장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성경의 인간관뿐이다.  다른 인간이해는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풀지 못한다.

4. Martin Buber는 그의 Ich und Du에서, I-I관계는 객체가 없는 주체로서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며, I-It도 별개의 방관적 두 존재로서 자기이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반면, I-Thou는 직접적인 인간관계에서 자기를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나아가 하나님과의 만남에서는 절대적 평가가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자기 자신의 실상을 이해하였고, 겸허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힘입어 그의 종이 되었다(6장).

 

5.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 제1권 제1장에서,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자신에 대한 지식으로 구성되는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이 불가능함을 지적하였다.  하나님 앞에서만 우리는 우리의 사악함과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아는 절대적 지식이 가능하다.  물론 우리 자신에 대한 예비적 지식 없이 신지식이 가능한가는 의문이며, 이 문제는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가 전제되어야 한다.

 

6.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이해에 철학의 초점을 맞추었으나, 그가 진정으로 완전한 자기이해에 도달했는지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부정적이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인 인간학을 기초하였다.  근대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의 명제로 이성적 사고에서 그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그가 존재를 의심하는 자로서 불완전하여 존재를 부여한 대치자로서의 신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이성적 사유과정에서 발생한 철학자의 신은 비인격적 개념으로 결국 Feuerbach에 이르러 신과 인간이 동일시되고, 이러한 계몽주의적 인간주의(Human-ism)는 니체에서 신의 사망을 선언하고 그 자리에 “초인(Super-man)”을 대치시켰고, 이러한 전통에 수립된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을 인간학으로 전락시켰다.  철학자의 신은 결국 인간의 표상과 투사에 불과하여 진정한 신이해도 자기이해도 이룩하지 못한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파스칼은 이성적 방법을 부정하고 신앙을 통한 신이해와 인간이해를 추구하였다(Walter Schulz, <철학자의 신>, 이정복 역, 사랑의학교).

 

7. 로마서 7장 15-25는 ego가 23회나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자기이해를 위한 중심성구이다.  바울은 두 개의 내가 존재하며, 전체적인 내안에는 죄성이 존재하여 성령의 법과 죄악의 법을 따르는 두 개의 원리가 공존하는 사망의 몸이라고 말하며 그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한다.  성경에서 인간은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졌음을 말하고, 그 이유를 구속사적으로 설명한다.

 

현대의 다양한 인간관

 

1.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많은 학문이 있으며, 제각기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들은 인간의 일부 혹은 일면을 관찰하고 있을 뿐 종합적이고 본질적인 인간이해에 이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분야의 제한성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을 존재하게 만든 타자에의 이해가 없기 때문이다.

 

2. 에릭슨, <인간론>, 25-34: 기계로서의 인간, 동물로서의 인간, 성적 존재로서의 인간, 경제적 존재로서의 인간, 우주의 인질로서의 인간,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소개하였다.

 

3. 심리학과 신학의 연구대상은 psyche로서 영역분쟁이 일어나 상당한 대립양상을 보였다.  프로이드는 의식적인 Ego와 무의식적인 Id로 구성된 인간이해를 제시하며 각기 Superego와 Libido에 의해서 작용하는데 인간은 본질상 야욕을 추구하는 리비도가 주관한다고 보면서, 기독교의 도덕적 인간이해를 반대하였다.  융은 비교적 기독교의 의미를 인정하나, Modern Man in Search of a Soul에서 인간영혼의 치료는 정신의학이 주도해야 하며, 목사는 보조적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심리학의 인간관은 행동발달이나 상담원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죄적인 본성을 주종화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4. 한국의 인간관은 주로 불교와 유교에 의해 영향을 받았는데, 불교는 윤회에서의 해탈을 추구하며 멸정론적이고 고행주의적인 비관적 인간관을 가지고 있으며, 유교는 성악설이 주종을 이루며 인간의 본성은 억제의 훈련(習)을 통한 예의의 회복으로 仁에 도달해야 한다는 도덕주의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인간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와 지배가 연관되어 있으며, 왜 인간이 도덕적이 되어야 하는 질문에도 관련되어 있으나 천명개념을 도입한다.  노자는 이점에서 의견을 달리하여, 순리자연의 방식으로 인위적인 훈련을 반대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가 인간적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도교적인 원리는 포스트모던시대에 환영을 받는다.

 

5. 모든 인간이 자기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거나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자기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거기에 근거하여 인생을 영위한다.  이와 같이 검증되지 않은 자기이해는 그의 인생에 큰 불행과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인간관을 점검하고 확립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앙과 죄인의식에 따른 구원의 수용, 그리고 올바른 성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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